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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의 수사 결과가 12일 발표되었다.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검찰의 발표가 어떻게 날 것인지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수사 결과 발표는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도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검 이인규 중수부장은, "수사 도중 노 전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하게 된 점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애통하게 생각한다"고 전제한 후 "검찰은 이번 수사 과정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했음을 말씀 드린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사안의 중대성과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내용 일부를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한 사건이고 참고인들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등을 이유로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덧붙이기를, "박연차 전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 640만 달러의 포괄적 뇌물을 공여했다는 피의사실은 박 전 회장의 자백과 관련자 진술 등에 비춰 인정된다"고 했다. 그러나 "공여자만 기소했을 때 공정한 재판이 어렵다고 판단해 이 부분도 내사종결했다"고 말했다.

 

공개하지 않는다면서 공개하는 검찰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수사 때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일단 서거에 유감을 표하고 나서 동시에 자기들의 수사는 법과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고 강변하는 것이 그렇다.

 

더 중요한 것은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640만 달러 포괄적 뇌물 혐의가 인정된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검찰이 마지막까지 노 전 대통령의 피의 사실을 흘리기로 작심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사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이 바로 이 '피의사실 공표'였다. 물론 이것은 실정법에도 어긋나는 행위로서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모는 데에 작용된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더욱이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수사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하면서 기실은 일방적으로  '피의사실을 공개하는 수법'을 썼다는 점이다. 이것은 검찰이 스스로 말한 '빨대'임을 자처하는 짓밖에는 되지 못한다. 또한 이것은 당사자인 검찰에게는 심각한 자가당착이자 국민을 또 한 차례 우롱하는 행태며 결국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포괄적 뇌물 혐의가 입증되려면 그가 임기 중 돈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그것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진술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소환 이후에도 3주간이나 수사를 지연한 것은 이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찾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때 만약 검찰이 증거를 찾았더라면 노 전 대통령을 바로 기소하든지 아니면 재소환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기소하거나 재소환하지 못하고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딸 정연씨의 미국 주택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노무현을 죽음으로 내 몬 실체를 본다

 

이인규 중수부장이 액수를 640만 달러라고 한 것도 피의 사실을 침소봉대하여 말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100만 달러만 부인이 받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고 했을 뿐이다. 요컨대 노 전 대통령이 인정한 액수는 100만 달러였다.

 

노 전 대통령 측은, '나머지 500만 달러는 법적 하자가 없는 투자금이었고 정연씨의 주택자금 구입용 40만 달러는 100만 달러에 포함된다'고 주장했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자의적으로 540만 달러를 더 얹어서 말한 것이다. 생전의 노 전 대통령을 막다른 벼랑으로 몰았던 검찰이 설마 죽은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여전히 비열한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니기를 바랄 따름이다.    

 

마침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수사 결과 발표 내용을 교묘히 왜곡하여 '노 전 대통령 뇌물 수수 증거는 비밀'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내놓았다. 뇌물 수수 증거는 비밀이라고? 이것은 뇌물 수수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전형적으로 악의를 담은 기사이다. 또한 '그것은 비밀'이라고 함으로써 증거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피해갈 수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을 벼랑으로 내 몬 실체를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그것은 검찰과 보수언론의 합작이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노무현 전 대통령 변호인단이 "이미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두 번 욕보이는 행태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변호인단은 이날 홈페이지에 띄운 글에서 검찰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측에 640만 달러의 포괄적 뇌물을 공여한 피의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힌 부분과 관련,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혐의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변호인단은 "검찰은 단 한마디 사과도 없이 책임회피와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진실은 검찰이 누구의 지시로, 어떤 목적으로 왜 `정치적 기획수사', '짜맞추기 표적수사'를 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전 실장은, "수사내용을 미공개하는 것으로 외형을 갖추면서 박 전 회장의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된다고 했는데, 혐의가 진짜 인정된다면 박 전 회장을 기소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며 "이는 진실규명이 안됐다는 반증으로, 검찰의 주장이 궁색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상당수 국민들은 '한국 검찰은 권력의 개'라는 풍문을 자주 접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이번 노 전 대통령의 수사 과정과 수사 결과 발표는 이런 풍문을 풍문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 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수사가 정당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으면 노 전 대통령의 진술조서를 공개하면 된다. 그런데도 검찰은 실증적인 것은 하나도 내 놓지 않은 채 입으로만 피의사실을 흘렸다. 그것도 아주 교묘한 방법을 사용하면서.

 

한번 입장을 바꿔서 말해보기로 하자. 누군가가 "'검찰이 권력의 개'라는 비밀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식석상에서 발표했다고 치자. 그러면 검찰은 권력의 개인가 아닌가? 그리고 '검찰이 권력의 개'라는 사실을 세상에 밝힌 것인가 아닌가?


태그:#검찰, #노무현, #피의사실공표, #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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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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