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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대법원장은 5일 촛불재판 개입 논란으로 대법원으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은 바 있는 신영철 대법관에 대해 "명예와 도덕성을 생명으로 알고 살아온 법관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한 나라의 법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를 최종적으로 선언하는 대법관에게는 (경고 조치가) 더없이 무거운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법원의 관료화, 사법행정권의 집중화 현상이 법관 독립 침해 원인"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일선 판사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지난 5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이용훈 대법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출근하고 있다.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일선 판사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지난 5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이용훈 대법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출근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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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용훈 대법원장은 "우리 법원은 근래,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신영철 대법관 신변 처리를 둘러싸고 열린 각급 판사회의를 언급한 뒤, "많은 법관이 신영철 대법관의 법원장 재직시 문제된 처신이 적절하지 못하고 대법원의 조치도 미흡하였다는 의견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사표현 방법이 반드시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 과정에서 사법권 독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스스로 확보하겠다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는 현명함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법원 진상조사단 조사 결과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재직시 행한 일부 언행이 재판개입으로 볼 소지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윤리위원회는 다소 관대한 의견을 냈지만, 저는 신 대법관의 처신이 재판의 진행이나 내용에 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엄중경고 조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 경고는 다른 모든 대법관의 의견을 경청한 후에 내려진 것으로서,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한민국 최고법원 법관들의 뜻이 담긴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법원장은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일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 침해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하는 일과, 우리 법관들 스스로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다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확보하는 것이 전국 법관들의 총의라는 것이 확인된 이상, 이를 저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겠다"며 "사법행정권 행사의 한계를 더욱 분명하게 하고, 현행 제도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어떠한 부분이라도 과감하게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평정제도를 포함하여 법관의 독립을 훼손할 수 있는 모든 제도를 근본적으로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이 대법원장은 "법원의 관료화, 사법행정권의 집중화 현상이 그(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해치는) 원인 중의 하나라는 목소리를 가슴 깊이 새기며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며 "사법부 구성원 모두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자세가 부족하였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자성했다.

그는 또 "이번 사건의 발단과 그 이후 이루어진 법관들의 의견 표명이 법원 내부의 이념적 대립이나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인 것처럼 보는 시각은 곤란하다"고 우려했다.

이날 회의에는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을 포함해 고등법원장과 지방법원장 등 32명이 참석했다.

법원장들은 재판권 독립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 재판권 침해 구제 기구 설치, 법원구조 개편과 사건 배당 관련 예규의 개정 등의 현안을 듣고 바람직한 사법행정권 행사 방향과 재판 독립에 관한 법률 규정 신설 방안, 재판사무감사제도와 근무평정제도 개선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이용훈 대법원장 전국법원장회의 모두발언 전문이다.

"법원,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어려운 상황"

전국 법원장 여러분!

최근 법원 안팎에서 법관의 재판상 독립과 관련하여 뜨거운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도 개선을 비롯한 사법행정 전반을 재점검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법원장 간담회로 진행하려던 오늘 모임을 임시 전국법원장회의로 진행하게 된 것은 그 까닭입니다.

우리 법원은 근래,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신영철 대법관의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재직 당시의 처신과 그에 대한 대법원의 조치와 관련하여 각급 법원에서 단독·배석 판사회의가 연이어 열렸습니다. 이러한 판사회의를 통하여 많은 법관이 신영철 대법관의 법원장 재직시 문제된 처신이 적절하지 못하고 대법원의 조치도 미흡하였다는 의견을 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법관들은 그 의사표현 방법이 반드시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 과정에서 사법권 독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스스로 확보하겠다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는 현명함을 보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특정 법관의 거취에 대한 의견 표명은 사법권 독립에 불가결한 하나의 축인 법관의 신분 보장을 침해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스스로 절제된 결론을 도출하는 성숙함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법관들의 의견이 무엇인 지는 법원 내외부에 충분히 드러났다고 하겠습니다.

법원장 여러분!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하여 이번 일이 진행된 경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처음 이 문제가 제기된 당시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하였고, 법원행정처장을 단장으로 한 진상조사단은 사실관계를 철저히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재직시 행한 일부 언행이 재판개입으로 볼 소지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은 대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의에 회부되었고, 다양한 인사로 구성된 윤리위원회는 일반 위원들의 감각이 반영되어 다소 관대한 의견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 대법관의 처신이 재판의 진행이나 내용에 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엄중경고 조치를 하였습니다. 이 경고는 다른 모든 대법관의 의견을 경청한 후에 내려진 것으로서,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한민국 최고법원 법관들의 뜻이 담긴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한 나라의 법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를 최종적으로 선언하는 대법관에게는 더없이 무거운 것입니다.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명예와 도덕성을 생명으로 여기면서 평생 재판업무에 종사해온 사람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친애하는 법원장 여러분!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일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 침해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하는 일과, 우리 법관들 스스로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다지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대법원은 이미 법관 워크숍을 통하여 이번 일의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에 관하여 전국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를 이미 개정하였고, 또 일선 법관들이 참여하는 제도개선 연구모임이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확보하는 것이 전국 법관들의 총의라는 것이 확인된 이상, 이를 저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특히 사법행정권 행사의 한계를 더욱 분명하게 하고, 현행 제도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어떠한 부분이라도 과감하게 개선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평정제도를 포함하여 법관의 독립을 훼손할 수 있는 모든 제도를 근본적으로 다시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이러한 제도 개선에 관하여 깊이 있는 논의를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지혜가 바탕이 되어 개선방안이 마련되면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도 개선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곤란합니다. 재판의 독립은 법관을 대신하여 다른 누군가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관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체적 사건을 처리하면서 스스로 재판상 독립을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가지지 않는다면 어떠한 제도를 가지고서도 이를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당시 사건담당 판사들이 상당한 부담을 가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법관으로서의 양심에 따라 재판한 점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사법부는 결코 내부 또는 외부의 지시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 아니라 모든 법관이 각자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곳임을 국민에게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법원장 여러분!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도모하기 위하여 적절한 사법행정권의 행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해치거나 해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방법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대법원장으로 취임한 이래 이 점을 누누이 강조하여 왔습니다. 사법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저나 여러분으로서는 이번 일을, 법관들이 어떠한 외압이나 간섭 없이 소신껏 재판에 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사법행정권 행사의 최우선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이번 사건은 법원장의 사법행정권 행사의 범위와 관련하여 일어난 일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법원의 관료화, 사법행정권의 집중화 현상이 그 원인 중의 하나라는 목소리를 가슴 깊이 새기며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국민을 섬기는 법원, 그리고 법정 중심의 재판이 우리 사법부가 지향하여야 할 올바른 목표라는 점에 관하여는 추호의 의심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법부 구성원 모두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자세가 부족하였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민과 법원 내부의 목소리에 좀더 귀 기울이고 잘못된 업무 관행을 지속적으로 바로잡아 나가는 등, 더욱 나은 재판을 하기 위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위기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을 국민의 신뢰회복을 위한 기회로 삼읍시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의 발단과 그 이후 이루어진 법관들의 의견 표명이 법원 내부의 이념적 대립이나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인 것처럼 보는 시각은 곤란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번 사건은 어디까지나 모든 법관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법관의 재판상 독립의 보장'에 관한 문제였을 뿐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법부는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할 뿐 아니라 일반 국민이 보기에도 그러한 외관을 가져야 합니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의구심을 갖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한 오해를 받게 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없애고 오해를 풀게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일이 우리 모두에게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라는 헌법적 책무를 가슴 속에 다시 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2009. 6. 5.


태그:#신영철 대법관, #이용훈 대법원장, #전국법원장회의, #법관 독립, #촉불집회 재판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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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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