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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단이 16일 오후 경기도와 서울의 경계선인 남태령 고개를 넘고 있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단이 16일 오후 경기도와 서울의 경계선인 남태령 고개를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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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오체투지 순례단을 맞은 1천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 남태령 고개를 넘고 있다
 16일 오후 오체투지 순례단을 맞은 1천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 남태령 고개를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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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 오체투지 순례단 이제 출발합니다."

16일 오후 3시.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경계선인 남태령 고개 정상에서 오체투지 순례단 명호 진행팀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징소리가 이어지고 103일간 '자벌레'와 같이 꿈틀꿈틀 기어온 수경 스님·문규현 신부·전종훈 신부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길바닥에 엎드린 후 두 손을 모으고 일어섰을 땐 까맣게 그을린 얼굴 위로 빗물이 떨어졌다.

성직자들 뒤로는 경기도 과천시 관문체육공원 어귀부터 따라온 1천여 명이 같이 숨을 내쉬며 움직였다. 수녀·승려 등 종교인, 용산참사 철거민, 정치인과 언론인,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시민까지 모두가 함께 걷고 함께 기도했다.

인도의 사람들도 함께 했다. 수경 스님 등이 엎드릴 때마다 옆에 따라다니던 신자들이 고개를 숙이며 합장했다. 쉬는 시간이면 곁에 다가가 "스님, 신부님 힘내십시오"라고 격려하는 이들이 있었고, 300미터 가까이 이어지는 순례 행렬에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계룡산, 그리고 계룡산에서 서울까지 '자벌레'가 되어 기어왔던 300km. 드디어 오체투지 순례단이 서울로 들어왔다.

법륜 스님, "순례단은 어진 부모처럼 자신의 종아리를 때리고 있다"

오체투지 순례단 서울맞이 행사가 16일 오전 경기도 과천 관문체육공원에서 열렸다. 종교인, 정치인, 시민사회단체 인사들과 시민 1천여 명이 모였다.
 오체투지 순례단 서울맞이 행사가 16일 오전 경기도 과천 관문체육공원에서 열렸다. 종교인, 정치인, 시민사회단체 인사들과 시민 1천여 명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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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 서울맞이행사는 이보다 앞서 오전 11시 경기도 과천 관문체육공원에서 열렸다.

순례단을 환영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남윤인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진보신당 심상정 전 의원, 민주당 김상희 의원,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 등의 얼굴도 보였다.

다들 먼 길을 기도하며 온 순례단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했다. 먼저 하승창 운영준비위원장이 "우리 사회가 가고 있는 길과 완전히 반대로 100일이 넘게 가고 있는 이들이 왔다"며 환영인사를 건넸다.

하 위원장은 "용산철거민 참사, 4대강 정비사업, 개성공단 폐쇄 등 현재 사람의 길·생명의 길·평화의 길 모두가 위협을 받고 있다"며 "지난해 촛불집회 때 청와대 뒷산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고 밝힌 이명박 대통령의 성찰은 거짓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러나 순례단은 이 모든 것을 둘로 나누어 싸우기보다 이 상황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진정한 성찰을 하며 이곳으로 왔다"며 "우리 사회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가야 할지 순례단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함께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법륜 스님은 "부모는 아이가 잘못하면 야단을 치고 매를 들어 돌아오게 하지만 어진 부모는 자신의 종아리를 때려 아이가 뉘우치게 한다"며 "순례단은 어진 부모와 같이 그들의 잘못을 대신 짊어지고 스스로 자기의 종아리를 때리고 있는 중"이라고 격려했다.

법륜 스님은 또 "이제 눈·귀가 없는 이라도 이때쯤이면 잘못을 뉘우쳐야 할 것"이라며 "우리도 순례단을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게 모르게 우리도 소수의 사람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 지금 시대의 가해자 입장이 아닌지 참회해야 한다. 참회하면서 비판하는 것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4대강 정비사업·용산 참사... 모두의 '기원'을 안고 남태령 고개를 넘다

문정현 신부가 16일 오후 용산 참사 유족들과 함께 오체투지 순례에 참가하고 있다
 문정현 신부가 16일 오후 용산 참사 유족들과 함께 오체투지 순례에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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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체투지 순례가 오직 참회만을 의미하진 않았다. 순례에 참가하는 이들의 마음에는 각각의 소중한 기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종남 운하백지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남태령 고개는 예로부터 억울한 일·잘못된 일을 상소하기 위해 사람들이 넘던 고개"라며 "지금 우리는 삽질도 녹색이라 말하는 대통령에게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러 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순례에 참가한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도 "순례단과 함께 잠시 오체투지를 하다 보니 제 존재가 하찮다는 것을,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겸손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뼈저리게 했다"며 "이번 오체투지를 통해 민주노총과 저를 돌아보고 낮은 자세로 거듭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용산 철거민 유족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문정현 신부는 "용산 현장을 오고 갈 때마다 분향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문 신부는 "지난 삼보일배 때와 같이 오체투지 순례를 함께하려 했지만 용산 참사 현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며 "용산 참사는 정치와 권력, 돈이 합동으로 저지른 학살"이라고 비판했다.

문 신부는 "여기에 있는 유족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들이닥치는 경찰들 때문에 실신한다"며 "진실을 밝혀 이들이 남편을 되찾을 순 없어도 명예는 회복해야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너무 졸렬하다. 분향소와 병원만 솥뚜껑처럼 덮어놓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왜 1만여 쪽의 수사기록 중 3천 쪽을 은닉하나? 자신이 없어서다. 매일 용산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여러분도 와서 분향해달라. 아니 지나갈 때마다 분향을 올려달라."

"우리들의 기도는 서울을 지나 묘향산의 상악단까지 계속 이어질 것"

오체투지 순례단의 수경 스님, 전종훈 신부, 문규현 신부가 16일 남태령 고개를 순례하고 있다
 오체투지 순례단의 수경 스님, 전종훈 신부, 문규현 신부가 16일 남태령 고개를 순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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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은 이들의 마음을 모두 받아 안았다.

순례단은 이날 발원문을 통해 "생명과 평화, 사람의 길을 위한 우리들의 눈물겨운 기도는 서울을 지나 임진각 망배단, 그리고 묘향산의 상악단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계속될 '기도'를 약속했다.

또 "생의 의욕을 잃고 신음 없는 사람들, 힘없어 상처받는 생명과 평화를 바라는 모든 이웃에게 경배하며 그동안 함께 해주고 끝까지 함께 해줄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큰절을 올린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순례는 이날 방배동 정각사에서 마무리됐다. 순례단은 다음날(17일) 오전 출발해 용산구 서빙고동 이촌지하도까지 순례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태그:#오체투지,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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