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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화가 노은님(盧恩任 Eun Nim Ro)의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전이 5월 24일까지 갤러리현대(강남) 지하1층에서 열린다. 그의 작품은 이제 프랑스 중학교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갤러리현대는 이 작가의 역량을 내다보고 20년 전부터 소개해왔다.

 

이 작가는 간호보조사출신으로, 1946년 전주에서 2남 7녀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14살 때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한다. 그런데 20살 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사업에 실패하자 생업에 뛰어든다. 9개월간 간호보조교육을 받고 포천보건소에 지원한다. 그러던 중 24살이 되던 1970년에 신문에 난 파독간호사광고를 보고 독일로 떠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독일병원에서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근무가 끝나면 '할 게 없어' 그는 혼자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1972년 독감으로 결근하게 돼 간호장이 병문안 왔다가 그의 방에 쌓인 그림을 보고 감동받아, 병원회의실에서 그에게 첫 전시회를 열어준다.

 

간호사에서 미대교수로, 독일은 고마운 나라

 

 

그 지방소식지에서 이를 본 함부르크 국립미대 한스 티만 교수의 추천과 병원 측의 권유로 그 대학에 입학한다. 그래서 6년간 밤에는 간호사로 일하고 낮에는 미대생이 된다. 그리고 1980년에는 전업 작가로 독립하고 1990년에는 그 대학의 교수가 된다. 그리고 2002년에는 독일 동료교수 게르하르트 바르치(Gerhard Bartsch)와 결혼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은 마치 기적의 드라마 같다. 독일에서는 외모나 학력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역량을 우선시하기에 가능했으리라. 그에게 독일은 어떤 나라냐고 물으니 '고마운 나라'라고 잘라 말한다. 사실 그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렇게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을까 싶다. 우리가 동남아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에게 이런 기회를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남에게 인정받기 보다 나 스스로 인정하기

 


그런데 이런 혜택을 받은 그는 독일교육의 틀 속에서도 위에서 보듯 독일인들이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한국인의 자유분방한 기질과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예술가적 고집을 견지한다. 그는 그런 생각을 자신의 수필집 <내 짐은 나의 날개>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예술을 하다보면 마티스처럼 고집스러운 면이 나오게 마련이다. 상대방을 이해시키거나 감동시키기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버린다면 그것은 진정한 예술가의 길이 아니다. -중략- 나는 남에게 인정을 받으려 노력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인정하고 용기 있게 살아가는 예술가를 더 사랑한다."

 

나이 들면 작가라도 감성이 둔해질 수 있는데 그는 세월이 갈수록 색채가 더 밝고 화사하고 눈부시다. 그 이유가 혹시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서 온 거냐고 물으니 그의 대답은 예상 밖이다. 독일은 햇빛이 워낙 모자라서 끝까지 가 본다는 심정으로 색채를 더욱 밝고 환하게 칠한단다. 그리고 빛을 찾아 아프리카 등 두루 여러 곳을 여행한단다.

 

어린 시절의 천국경험 재현

 

 

그의 그림에는 물고기가 유난히 많다. 왜 물고기냐고 물으니 어려서 집(전주시 교동) 앞에 냇가가 있었는데 밥 먹듯 그렇게 물고기를 잡았단다. 개울물에 둔 고무신짝에 고기가 몇 마리씩 잡힌 추억이 눈앞에 선한 모양이다. 이런 어린 시절에 맛본 천국의 경험을 작품에 담아보려고 하지 않는 작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물 흐르듯 바람 불듯 그렇게 자연스럽다. 인위적인 요소가 없어 마음이 마냥 편하다. 우주와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그런 생각 속에서 그는 장난치듯 붓질을 쓱쓱 해나간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너무 잘 하려는 마음도 버리고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그리기 때문이리라.

 

그림으로 한독문화의 가교역할

 

그는 독일에 수출된(?) 이주노동자로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불가(佛家)에서 '고통이 다하면 도를 깨닫는다'는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가르침처럼 삶의 외로움이나 어려움을 이겨낸다. '깊은 바다'는 그런 기복 많은 삶을 극복하는 와중에 그가 발견한 행복과 풍요를 상징적으로 변형시킨 것이 아닌가싶다. 

 

그에게 한국적인 것이 독일에서도 통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말한다. 두 나라의 입장은 달라도 분단경험은 같다. 독일은 경제 강국임에도 1-2차 대전을 일으킨 가해자로 불안과 트라우마(심적 상처)가 있고 우린 4대강국의 틈바구니 속에 한(恨)과 서러움이 있다. 그러면서도 뭔가 통해 보인다.

 

하여간 독일인은 자신의 그런 고뇌를 (신)표현주의미술을 통해 극복했다. 그래서 G. 리히터(1932~) 같은 세계적 거장도 배출했다. 독일의 유명작가 중 서독보다 동독이 더 많은 것도 또한 아이러니다. 하여간 노은님은 독일에 40년 살면서 한독문화의 가교도 놓았다.

 

그의 그림은 천진한 동심의 세계

 

그의 그림은 '즐거운 바보들'이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를 추구한다. 천진(天眞)이란 말 그대로 '하늘의 진리'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그런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이 지금까지 이 작가를 버티게 한 힘이 아닌가싶다.

 

붓 가는대로 바람 부는 대로 그림을 그리다보면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자유로워져 봄의 햇살처럼 가을의 바람처럼 영혼이 맑아지나 보다. 그의 그림에 활기와 에너지가 넘치는 것은 바로 이유인지 모른다. 작가는 그런 심정을 다음 시에 담았다.

 

살아남기 위해 / 전쟁터의 군인처럼 / 싸울 필요는 없다.

살아남기 위해 / 풀밭 위의 아이들처럼 / 뛰어 놀아야 한다.

 

"여기 선 하나 긋고, 저기 점 하나 찍으면 예술"

 

 

작가는 "여기에 선 하나 긋고, 저기에 점 하나 찍다 보면 예술이 된다"고 했지만 그의 단순함은 그냥 단순한 것이 아니다. 오랜 진통과 각고의 노력 끝에 온 것이다. 다음 글을 읽어 보면 그런 점을 더 잘 알 수 있다.

 

"나는 많은 시간을 깊은 고독과 수없는 방황 속에서 큰 벌을 받는 사람처럼 지냈다. 외로워서 괴로웠고, 괴로워서 외로웠다. 그 덕에 나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나는 그 속에서 세상의 많은 걸 깨달고 내가 대자연 앞에서 작은 모래알 같은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5월에'처럼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도 많지만 공공미술이나 환경미술 분야에도 열성을 보인다. 1997년에는 함부르크에게 유서 깊은 알토나 성 요한니스교회 색유리작업을 한다. 국내에서도 1998년 농심재단, 1999년 GS강남타워벽화(봄나들이), 2001년 경기도 문막 오크밸리교회 색유리작업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즐거움 주는 그림 그릴 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노은님의 '지구의 어느 구석 아래서'는 25년 전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면 그가 이미 그때부터 미술의 대가로서 그 면모를 능히 발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독일인들이 그에게 그렇게 열광하고 그를 피카소처럼 봐주는지 이해가 된다.

 

인생의 완숙기를 맞은 그는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한 감회를 이렇게 밝혔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있는 것, 없는 것, 사는 것, 죽는 것 다 마찬가지다. 어떤 자연의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 걸 느낀다. 나는 이 모든 걸 받아들이는 것이 숙제다. […] 역마살이 잔뜩 낀 덕에 지구를 한 바퀴 반이나 돌았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고 사랑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현대 서울 강남구 신사동 640-6 아트타워 전화 02)519-0800
홈페이지 www.galleryhyundai.com 월요일 휴관. 입장무료 
박경리1주년 김덕용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5월24일까지 1-2층에서 열림


태그:#노은님, #리히터, #알토나 성요한니스 교회, #내 짐은 나의 날개, #게르하르트 바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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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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