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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쫑포에 위치한 하멜등대 뒤로 노을이 저물고 있다.
▲ 하멜등대이야기 여수 쫑포에 위치한 하멜등대 뒤로 노을이 저물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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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저 바다위에
      가득한 허공뿐이나

한 시절 이 땅에
      네델란드 젊은이 들이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살다가

하늬바람 일던 그날 밤
       귀향의 돛을 높이 올려
       저 수평선을 넘어 갔다오

이땅에 한도 두고  
       정 또한 두고....

그 겨울 유난히 바람이 잦고
       오동도 동백꽃은 더더욱 붉었다 하더이다.
           
                                                              쫑포 하멜등대 주춧돌에서...

풍차의 고장 네델란드 출신 핸드릭 하멜은 동인도회사 소속으로 스페르웨르호(Sperwer)를 타고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사사키로 가던중 제주 앞바다에서 폭풍을 맞아 좌초되어 13년동안 조선에서 억류생활을 하게된다.

네델란드 조각가 '옙 하트만'이 보르큼시에 세운 하멜동상이 인연이 되어 강진과 여수에 똑같은 하멜동상이 세워져 있다.
▲ 핸드릭 하멜과 연인 네델란드 조각가 '옙 하트만'이 보르큼시에 세운 하멜동상이 인연이 되어 강진과 여수에 똑같은 하멜동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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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제주 표류에서 나가사키 탈출까지

하멜은 당시 어떻게 이곳 조선까지 오게 되었을까?

하멜표류기를 살펴보면 출항부터 귀향에 이르기까지 조선에서 겪었던 13년간의 체류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하멜이 기록한 사실에 근거하여 당시 하멜의 심정으로 나름대로 '표류일기'로 의역해 보았다.

1653년 8월 제주에서 표류!
폭풍을 만난 우리 일행 64명중 28명은 익사하고 36명만이 구조되었다.

1654년 6월 한양으로 압송!
제주목사 이원진의 심문을 받고 우리 일행은 포승줄에 묶여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1656년 3월 다시 강진으로!
우리 일행은 강진 전라병영으로 압송되었다.

하멜외 12명은 1663년 2월부터 탈출까지 3년간 당시 전라좌수영이었던 여수 진남관에 배치되어 3년간 문지기 생활을 하였다.
▲ 하멜이 지킨 전라좌수영 진남관! 하멜외 12명은 1663년 2월부터 탈출까지 3년간 당시 전라좌수영이었던 여수 진남관에 배치되어 3년간 문지기 생활을 하였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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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3년 2월 전라좌수영 문지기로 기용!
살아남은 22명은 여수에 12명,순천에 5명,남원에 5명이 분산 수용되었다.나를 포함 여수에 배치된 12명은 전라좌수영에서 문지기 생활을 하였다. 이듬해 이도빈 좌수사가 새로왔는데 이수사는 인자하여 일행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양모장사로 돈을 벌어 탈출할 배를 장만하는데 성공했다.

1666년 9월4일 여수탈출 나가사키로!
마지막 남은 8명은 달이지자 전라좌수영의 담을 넘어 약속해 두었던 부두가로 갔다. 탈출을 위해 미리 준비한 식수를 싣고 썰물이 시작될 무렵 멀리 부산끝을 마지막으로 조선영역을 완전히 벗어났고 이제 나가사키(일본)를 거쳐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귀국이 시작되었다. 그간 억눌렀던 세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은 우리 일행은 만세를 불렀다. 조선이여 안녕! 

음력 9월4일 하멜이 자유를 찾아 배를 탓던 포구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나 하멜등대가 세워져 있는 여수 쫑포 앞바다 선착장에서 소형범선을 타고 탈출에 성공해 10일후 나가사키에 도착한다.

그시절 외국인에 대한 조선의 정책은 '한번 들어온 서양인은 절대 다시 안돌려 보낸다'는 정책이었던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서양과의 해상무역이 성행하여 일찍 선진문물을 받아 들였던 것과 비교된다.

그로부터 약 2년후 1668년 7월에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 귀향한 하멜은 체류생활 동안 겪었던 조선의 지리.풍속.정치.군사.교육.교역 등 하멜표류기를 통해 유럽에 알려진다.

이곳 쫑포에 위치한 하멜공원에서 한가로이 자전거를 즐기고 있는 가족 뒤로낚시대와 하멜등대가 보이고 있다.
▲ 하멜공원과 가족! 이곳 쫑포에 위치한 하멜공원에서 한가로이 자전거를 즐기고 있는 가족 뒤로낚시대와 하멜등대가 보이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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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불법체류자 하멜선생!

핸드릭 하멜은 어찌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감금 및 외국인 불법체류자 생활을 직접 겪은 인물이다.

전세계적인 네트웍이 공존하는 현재에도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겪는 인간적인 모멸감과 고통은 이미 뉴스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동서양의 문물이 교류되지 않았던 시절 말이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양으로 끌러온 하멜일행은 모진고초와 파란눈을 가진 괴물과 동물원 원숭이 쯤으로 취급 받았을 하멜 일행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던시절 인권은 지금보다 낳았을까? 아니면 못했을까? 돌아갈 길 없는 하멜이 13년간 조선에서 험난한 생활을 보냈을 터이나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의 기록에서 보듯 전라좌수사와 이곳 주민들에 대한 고마움이 풋풋이 묻어나 있다.

하멜이후 3세기가 지난 지금 히딩크같은 지도자가 우리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각종 범선축제에 참가하여 여수의 이미지를 높이고 있는 전장41m 총톤수 135t급의 B class급 범선인 코리아나호
▲ 범선 코리아나호! 각종 범선축제에 참가하여 여수의 이미지를 높이고 있는 전장41m 총톤수 135t급의 B class급 범선인 코리아나호
ⓒ 범선추진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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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포 하멜등대와 범선축제

그후 300여년이 지나 네델란드 조각가 '옙 하트만'이 보르큼시에 세운 하멜동상이 그 인연이 되어 지자체에 의해 대한민국의 강진과 여수에도 그의 조각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곳 쫑포에 위치한 하멜공원은 낚시터로도 유명하지만 주말이면 가족들과 연인들이 즐비하여 하멜의 미지에 대한 도전정신을 기리고 있다. 또한 바닷가 방파제에 위치한 하멜등대는 칠흙 같은밤 배들이 지나가는 길잡이 역할과 해양도시의 이국적인 낭만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때마침 요즘 '엔드릭 하멜' 기념해 한국과 일본에서 범선축제가 개최된다. 하멜 일행이 조선에서 구한 범선을 타고 여수를 탈출해 나가사키에 도착한 것을 기념해서 만든 범선축제가 격년 주기로 한국과 일본에서 진행되어 왔다. '2009 나가사키 범선축제'가 바로 그것인데 300여년전 하멜일행이 범선으로 조선을 탈출하여 자유와 희망을 찾아 환희를 맛본 하멜항로를 기리는 행사다.

하멜일행이 범선으로 조선을 탈출하여 자유와 희망을 찾아 환희를 맛본 하멜항로 이곳에서 2009 국토해양부장관배 Tallship Race가 펼쳐진다.
▲ 하멜이 항해했던 여수와 나가사키간 하멜항로! 하멜일행이 범선으로 조선을 탈출하여 자유와 희망을 찾아 환희를 맛본 하멜항로 이곳에서 2009 국토해양부장관배 Tallship Race가 펼쳐진다.
ⓒ 범선추진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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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0년째를 맞고 있는 '2009 나가사키범선축제'는 10주년을 기념하여 다른해 보다 큰 행사로 치러진다고 한다.

추진위에 따르면 범선축제행사 관련 ▲ 4/22~27일 2009 나가사키 범선축제 ▲ 4/27~30일 2009 국토해양부장관배 Tallship Race ▲ 5/1~3일 2009 Expo 크루즈의 요트경기대회 ▲ 5/4 범선 및 크루저 요트퍼레이드가 열린다.

범선축제 행사 참여에 관한 자세한 행사문의는 2009 나가사키범선축제2009 여수국제범선축제 홈페이지로 문의 하면된다.


태그:#하멜등대, #우리나라 최초 불법체류자, #범선, #진남관 문지기 하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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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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