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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 4집 'MIROTIC'
 <동방신기> 4집 'MIROTIC'
ⓒ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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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got you under my skin."

이 영어 문장이 청소년의 성윤리를 그르칠만큼 음란한 표현일까.

그룹 <동방신기>의 노래 '주문'에 들어간 이 문장의 해석을 둘러싼 '음란성' 공방이 법원에서 일단락됐다.

정부는 작년 11월 "'주문'의 노랫말이 청소년에게 성행위를 조장하고 성욕을 자극하는 등 성윤리를 왜곡했다"며 <동방신기>의 4집 음반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노래 제작자와 가수·팬들은 "사랑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을 놓고 정부가 확대 해석한 것이며, 가요의 문화 예술적인 측면을 무시한 채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반발해왔다.

결국 법원이 정부의 처분에 제동을 걸었다. 행정법원 6부(재판장 김홍도)는 1일 <동방신기>의 소속사인 에스엠엔터테인먼트가 보건복지가족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주문'에 대해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I got you under my skin'은 음란?

이 소송의 쟁점과 법원의 결론을 살펴보자.

청소년을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청소년 보호법이 있다. 이 법은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에게 해롭다고 판단되는 영화․게임․음반․방송 등을 가려내어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도록 되어 있다. 유해매체물로 결정되면 청소년에게 판매하거나 상영할 수 없게 된다.

이 규정에 따라 청소년보호위원회는 노래 '주문'이 포함된 <동방신기>의 4집 음반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하였다. 위원회는 '주문'의 선정성을 문제삼았다.

위원회는 '주문'의 가사가 유해매체물 심의기준 중에서 ▲성행위를 지나치게 묘사한 것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행위를 조장하거나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기술하는 등 성윤리를 왜곡시키는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가사 중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 '넌 나를 원해. 넌 내게 빠져. 넌 내게 미쳐. 헤어날 수 없어.' ▲ '한 번의 키스 … 두 번의 키스 뜨겁게 터져버릴 것 같은 네 심장을 yeah 너를 가졌어 You know you got it.' ▲'I got you under my skin.' 등이다.

이 결정이 나자 <동방신기>의 소속사는 작년 12월 '주문'의 가사중 'under my skin'을 'under my sky'로, '너를 가졌어'를 '너를 택했어'로 수정하여 발표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원고인 제작사 쪽은 노래가사가 "첫눈에 반한 이성에게 사랑을 달라는 주문을 거는 듯한 말투이며, 상대방에게 고백받고자 하는 소극적인 마음을 표현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I got you under my skin'은 완전히 너에게 반해버렸다는 뜻"이라며 청소년보호위원회의 결정을 반박했다.

또한 원고는 가사에 선정적인 표현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음악이 갖는 문화 예술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엄격히 심의를 해야 하는데도 피고쪽이 이를 무시한 채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법원 "청소년 유해 판단은 건전한 사회통념 따라야"

<동방신기> 아시아 투어 콘서트 북 표지
 <동방신기> 아시아 투어 콘서트 북 표지
ⓒ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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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매체물이 선정적이거나 성윤리를 왜곡시키는 이유로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평균적인 입장에서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따라 청소년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객관적으로 규범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이와 함께 대중음악일 경우에는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점을 충분히 고려한 가운데 가사, 리듬, 멜로디, 표현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곡이 주는 전반적인 느낌과 분위기 등을 입체적으로 살펴서 유해 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은 문제가 된 가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선 "'I got you under my skin'은 영어권에서도 일상생활에서 흔치 않은 표현으로, 나는 당신에게 완전히 빠졌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이 가사가 포함된 곡이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서 출시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원뜻대로라면 별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남녀간의 육체적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이 노래의 다른 부분과 결합하여 보면 남녀간의 성행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성적 암시 있다고 성행위 조장한다고 단정해선 안돼"

법원은 그러나 "성적인 암시만으로 (성윤리를 왜곡시키는 등) 심의기준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개별적 표현이나 노래 전체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행위를 조장하거나 성윤리를 왜곡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법원은 또한 "청소년은 성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성적 자극에 예민하고 성충동을 억제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결국, "노래 '주문'이 선정적이기 때문에 청소년에게 해롭다"는 보건복지가족부의 결정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개인적인 생각을 밝힌다면, 최신 가요의 대부분이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만을 노래하는 게  내겐 불편하다. 게다가 대중가요의 가사가 영어로 도배되는 최근의 현상에도 반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중의 취향을 반영하는 가요에 섣불리 잣대를 들이대거나 가위질을 하는 것에는 더더욱 반대한다. 대중문화의 큰 흐름을 한두 사람의 생각으로 바꿀 수도 없으며 바꿔서도 안 된다. 대중문화 자체가 명백한 범법행위가 아니라면 대중의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정부는 청소년을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대중문화에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가수 비의 노래 '레이니즘'에 대해서 'magic stick' 등의 표현을 문제삼아 유해매체물로 결정한 당국은 작년 12월에도 은지원·박진영·휘성·바나나걸 등의 노래도 '선정성' 등을 내세워 청소년의 접근을 막았다. 이런 과도한 규제는 시대착오적이다

청소년들은 'I got you under my skin'이라는 표현보다 수십배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포르노물을 아주 쉽게 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 당국자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제안하고 싶다. 대중가요 가사에 밑줄을 그으면서 혹시 음란한 뜻이 숨어 있지 않은지 찾아낼 시간에 차라리 청소년에게 무차별로 유포되는 불법 포르노물을 규제하라. 거기에는 '성행위를 조장하거나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기술하는 등 성윤리를 왜곡시키는 것'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심의권을 갖고 있는 행정 당국의 상상력이 빚어낸 하나의 해프닝이었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이번 판결이 정부가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동방신기의 '주문' 논란을 보면서 표현의 자유를 떠올리는 건 지나친 상상력일까.


태그:#동방신기, #주문, #표현의 자유,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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