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와! 갈매기가 내 손끝에서 새우깡을 채갔어요."

"제주 갈매기들은 별난 데가 있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서귀포항에서 탄 유람선이 바다 가운데로 나아가자 갈매기 떼가 뒤를 따랐다. 그런데 이 갈매기 떼들은 일행의 말처럼 사람들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인천시 강화 석모도 해협의 그 유명한 갈매기들은 던져주는 먹이만 받아먹거나 물위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데 제주 갈매기들은 달랐다. 갑판에 나와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던져주다가 손끝에 들고 서있으면 갈매기들이 날아와 그 먹이를 낚아채갔기 때문이다.

 

기다림에 지쳐 돌기둥이 되어 버린 슬픈 할망의 전설이 깃든 외돌개

 

"다음은 외돌개로 가겠습니다. 참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이 펼쳐진 곳입니다. 기대하셔도 될 것입니다."

 

동양최대의 사찰이라는 약천사를 출발한 우리 일행들이 다음에 찾은 곳은 바닷가 절벽 아래 외롭게 솟아 있는 기둥바위 외돌개였다.

 

주차장에 버스를 세우고 바닷가로 나서자 절벽 아래 바닷물에 기둥처럼 서있는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이 바닷가가 바로 서귀포 70리로 유명한 절경지대였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절벽지대는 기암괴석들이 많지만, 아주 특별한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바위가 바로 물속에서 불쑥 솟아나와 20여 미터 높이로 기둥처럼 우뚝 서있는 외돌개다.

 

바닷물 속에 외롭게 서있다 하여 외돌개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 바위에는 애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아주 먼 옛날 이 곳에 살던 어느 할망(할머니)이 고기잡이 나간 할방(할아버지)이 돌아오지 않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그대로 굳어버려 바위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돌개를 또 다른 이름 '할망바위'라고도 부른단다. 외돌개 바위 꼭대기에는 사람의 머리처럼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또 그 왼편으로 할망의 이마와 깊고 슬픈 눈망울과 콧등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더구나 크게 벌린 입모양은 할망이 할방을 큰 소리로 부르던 입모양이라고 한다.

 

또 외돌개 바로 밑에는 물위에 떠있는 듯한 바위가 있는데 이는 할망이 돌로 변한 후 할방의 시신이 떠올라 똑같이 돌로 변한 것이라 했다. 앞쪽의 선녀바위라는 기암절벽은 돌이 되어버린 할망과 할방을 안쓰러운 듯 병풍처럼 펼쳐서 감싸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 소나무 좀 보세요, 움푹 파인 곳에서 조그만 새싹이 올라왔네요."

일행이 가리키는 곳에는 굵고 키가 큰 소나무의 움푹 파인 공이 자국 속에서 파란 새싹이 돋아 나와 있었는데 이건 소나무가 아니라 잎이 넓은 활엽수여서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외돌개를 돌아보고 다음에 찾아간 곳은 천지연 폭포였다. 폭포 입구 주차장엔 많은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여느 명승지와 다름없는 풍경이다. 폭포로 들어가는 입구 물가의 산벼랑에는 때맞춰 피어난 새하얀 벚꽃들이 화사하다.

 

천지연 폭포는 자연폭포일까? 인공폭포일까?

 

폭포 아래 맑은 호수엔 커다란 오리들이 유유히 물위를 헤엄치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 한가롭다. 그런데 오리들이 떠있는 물속에는 어른 팔뚝만큼씩이나 커다란 비단잉어들이 오리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역시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이 이채롭다. 잉어들이 너무 커서 오리들도 감히 어쩌지 못하고 함께 물놀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산벼랑 사이의 맑은 호수와 벼랑 곳곳에 피어난 벚꽃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다. 천지연 폭포는 안쪽 깊숙한 곳에 있었다. 역시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이다. 폭포는 넓었지만 물이 흘러 떨어지는 곳은 일부분이다. 수량이 적어서 그런 것 같았다.

 

"엊그제 내린 비 때문에 저만큼이라도 물이 흐르지 가물 때는 폭포도 마르겠네요?"

일행들 중에서 누군가 가이드에게 묻는다.

 

"아닙니다. 물론 비가 많이 내리면 폭포면적도 넓어지고 더욱 웅장한 모습이지만 항상 저만큼의 물은 떨어져 내립니다."

 

"그럼 한라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항상 저만큼은 된다는 말이네요?"

"한라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라고요?"

순간 가이드가 빙긋 웃는다.

 

"그럼 제가 문제를 반 번 내볼까요? 저 폭포 자연폭포일까요? 인공폭포일까요?"

"아니, 그럼 저 폭포가 자연폭포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일행들이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일행들은 모두 당연히 자연폭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폭포입니다. 비가 많이 내렸을 때는 자연폭포지요. 그러나 평상시에는 이 호수의 물을 끌어올려 폭포위에서 흘러내리는 인공폭포이기도 하지요. 지금의 저 상태는 인공폭포입니다"

 

모두들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표정들이다. 남한 땅에서 제일 높은 한라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라면 어지간한 가뭄에서도 물줄기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흘러내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문은 다음날 한라산 등산을 할 때 쉽게 풀렸다. 화산 섬 제주도의 육지와 전혀 다른 특이한 지질 때문이었다.

 

자연폭포이면서 인공폭포인 천지연 폭포를 둘러보고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관광 유람선을 타기 위해서였다. 선착장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자 방파제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하고 있는 해녀 두 사람이 눈길을 잡아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나이가 50대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다. 해녀들은 검은색 잠수복을 입고 있었지만 제법 세차게 몰아치는 바닷바람에 추워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해녀들은 추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물속을 잠수하여 잡아 올린 전복이며 소라, 그리고 문어와 다른 조개들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그거 몇 개 여기서 살 수 있습니까?"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관광객 한 사람이 금방 잡아 올린 문어와 조개들을 바라보며 몇 개 살 수 없느냐고 묻는다.

 

"여겡 팔 수 없수 당!"

그러나 해녀 아주머니는 진한 제주도 방언으로 팔 수 없노라고 거절한 다음 주섬주섬 챙겨 짊어지고 걸어 나간다. 유람선 선착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모습이었다. 그들의 뒤를 따라 우리일행들이 배에 오르자 곧 유람선이 출항했다.

 

"거기 아주머니 왜 뭘 놓고 오셨습니까? 왜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서성입니까? 내리고 싶으세요? 그럼 내리세요."

 

유람선이 출항하자 곧 DJ의 멘트가 시작 되었다. 유람선의 선상 가이드라고 하지 않고 DJ 라고 호칭하는 이유는 그가 단순한 안내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머 넘치는 재치 있는 말솜씨로 관광객들을 마음껏 웃기며 완전히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손끝의 먹이까지 새우깡만 받아먹는 갈매기들과 어울리는 관광객들

 

유람선 DJ는 배가 출항할 때부터 다시 항구로 돌아와 관광객들이 모두 내릴 때까지 거침없는 말투로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는 뛰어난 말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유람선은 서귀포 앞바다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다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아오며 해안선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치와 바다가운데 외롭게 떠있는 문섬과 범섬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람선이 출항하자 수많은 갈매기 떼들이 뒤따라 날아올랐다. 갈매기들이 날아오르자 일부 승객들이 갑판 위로 모여들었다. 갑판 꼭대기에 있는 매점에서는 갈매기 먹이로 쓰이는 새우깡을 팔고 있었다. 곧 승객들과 갈매기들의 놀이가 시작되었다.

 

승객들은 처음에는 뒤따라오는 갈매기들을 향해 새우깡을 바다에 던졌다. 그러자 바람에 날리는 새우깡을 잽싸게 날아온 갈매기가 입으로 낚아챈다. 그러나 미처 입으로 낚아채지 못한 새우깡이 바닷물에 떨어지면 갈매기들의 쟁탈전이 벌어지곤 했다.

 

그러나 조금 더 나아가자 승객들이 그냥 던져 주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새우깡을 집어 들고 머리 위로 치켜 올렸다. 그러자 갈매기들은 망설이다가 한 마리 두 마리 사람들이 손끝에 치켜든 새우깡을 잽싸게 입으로 물어 낚아채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이 재미있어 계속 새우깡을 집어 머리 위로 치켜들고,

 

"손님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그 갈매기들 그거 보통 갈매들이 아닙니다. 그 갈매기들에게 다른 먹이 줘 보세요, 받아먹을까요? 절대 안 받아먹습니다. 꼭 새우깡만 먹어요. 그 갈매기들 롯데의 홍보갈매기들입니다. 조심하세요?"

 

때맞춰 유람선 DJ의 멘트가 울려 나왔다. 정말 그런가 싶어 옆자리 일행이 술안주로 먹고 있는 쥐포와 오징어포를 찢어 갈매기들에게 던져보았다. 그런데 정말이었다. 맹랑한 갈매기들은 쥐포와 오징어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손에 들고 머리 위로 치켜들어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른편 앞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세요, 싫다고요? 싫으면 관두고요, 억지로 보라하진 않습니다. 멀리 섬이 하나 보이죠? 무슨 섬일까요? 문섬입니다. 문섬이 무슨 섬일까요? 겨울에도 모기가 있는 섬입니다."

 

DJ 멘트는 이런 식이었다. 아주 재미있는 말솜씨에 억양까지 아주 일품이었다. 왼편 해안선에 바라보이는 폭포는 정방폭포였다. 유람선은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른쪽 앞쪽 언덕에 커다란 건물이 바라보였다.

 

"저 건물이 무슨 건물일까요? 퍼시픽 호텔입니다. 호텔 잘 될까요? 망했습니다. 왜 망했을까요? 신혼여행객 관광객들이 모두 동남아로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냐고요? 그건 나도 모르죠"

 

선상 DJ의 재미있는 멘트가 이어졌다.

 

"저 호텔 아래쪽에 절벽이 조금 무너진 모습이 보이죠? 왜 무너졌을까요? 전에 신혼여행객들이 많이 투숙했을 때 새벽 두세 시만 되면 호텔 아래쪽 언덕에 작은 지진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왜 지진이 발생했을까요? 그건 나도 모르죠."

 

승객들이 우하하!!! 웃음보를 터뜨렸다. DJ는 이렇게 엉뚱한 질문과 말씨로 사람들의 관심과 웃음보를 자극하고 있었다.

 

재치 있는 말솜씨로 승객들을 웃기는 선상 DJ와 문섬, 범섬

 

"이번에는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보세요? 싫으면 관두고요. 여행의 추억은 관광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에 돌아가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가서 생각나는 것 하나도 없으면 그게 무슨 여행입니까? 지금 추억 많이 만들어 돌아가세요? 싫으면 관두고요?"

 

"저기 왼편 앞쪽에 섬이 하나 나타났지요? 저 섬이 무슨 섬이냐? 범섬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저 섬 모양이 정말 호랑이처럼 생겼습니까? 그렇다고요? 거참 대단하네요. 나는 날마다 이렇게 쳐다보지만 한 번도 호랑이 같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거든요"

 

사람들이 또 다시 웃음보를 터뜨린다.

 

"저 섬 옛날에는 사람이 살았는데 지금은 무인돕니다. 그런데 저 섬 값이 얼마나 나갈까요?  1억, 10억, 놀라지 마세요, 27억이랍니다. 그런데 값만 올려놓고 아직 팔리진 않았어요. 그럼 주인이 누구냐? 혼자 사는 남잡니다."

 

"혹시 뜻 있는 여자 분 한 번 찜해보세요, 27억 대단하잖아요? 그런데 그 주인 남자 나이가 몇 살이냐? 올해 94세입니다. 놀랐다고요? 눈 딱 감고 몇 년 만 기다리면 호박이 넝쿨 째 굴러들어 오는 것 아닙니까? 싫다고요? 그럼 관두고요."

 

바위섬인 범섬에는 몇 개의 커다란 동굴도 있었다. 왼편으로 돌아가는 쪽에서 바라보이는 두 개의 동굴은 호랑이의 콧구멍이란다. 뒤쪽에도 커다란 동굴은 또 있었다. 범섬을 돌아 되돌아오는 길에서는 2층 객실 무대에서 웃기는 각설이 공연이 또 다시 사람들을 즐겁게 웃겨주고 있었다. 제주여행 첫날은 이 유람선이 마지막 코스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순간포착, #손끝, #이승철, #낚아채가는, #갈매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