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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는 도서관에서 책꽂이 자리를 바꾸고 책 갈무리를 하면서 사진 몇 장 담아 보곤 합니다. 실내에서 따로 불을 터뜨리지 않고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만으로 담습니다.
 제가 일하는 도서관에서 책꽂이 자리를 바꾸고 책 갈무리를 하면서 사진 몇 장 담아 보곤 합니다. 실내에서 따로 불을 터뜨리지 않고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만으로 담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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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오줌을 누러 뒷간에 갈 때에는 사진기를 어깨에 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리술 한 병 사러 구멍가게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에는 반드시 어깨에 사진기를 걸칩니다. 집에서 밥을 해서 먹을 때에도 사진기는 손 닿는 자리에 놓입니다. 잠들 녘에는 머리맡에 사진기가 놓입니다. 글을 쓰면서도 사진기는 옆에 놓아 둡니다. 동무나 선후배가 집을 옮긴다고 하여 거들어 주러 갈 때에도 앞가슴이나 등판으로 사진기를 걸치고 짐을 나릅니다. 자전거를 탈 때에는 사진기가 목걸이 노릇을 합니다. 전철과 버스에서도 사진기는 늘 한쪽 어깨에 걸쳐 있고, 전철이나 버스에서 자리를 얻어 앉게 될 때에는 꾸벅꾸벅 졸면서도 한손에 사진기끈을 매 놓고 무릎에 얹은 다음 눈을 감습니다.

아침에는 아침 햇살이 좋아 사진기를 듭니다. 낮에는 눈부신 낮 햇살이 좋아 사진기를 쥡니다. 저녁에는 가물가물 지는 햇살이 좋아 사진기를 붙잡습니다. 새벽에는 새벽대로, 밤에는 밤대로 사진기를 들게 됩니다.

비오는 날은 비 느낌이 좋아 사진기를 찾고, 눈오는 날은 눈 느낌이 반가와서 사진기를 잡습니다. 안개 낀 날은 안개를, 스모그 낀 날은 스모그를, 구름 낀 날은 구름을 사진기로 들여다봅니다.

비구름 걷힌 하늘은 맑기만 하던 하늘과 다릅니다. 매지구름 몰려올 때에는 양털구름 가득한 하늘과 다릅니다. 소나기 퍼붓는 하늘과 가랑비 흩뿌리는 하늘은 다릅니다. 눈송이 펑펑 쏟아붓는 하늘과 싸락눈 흩날리는 하늘은 다릅니다.

저한테는 서른다섯째로 새로 찾아온 봄이 서른넷째 봄하고 사뭇 달라 사진기를 챙깁니다. 다가올 이듬해 서른여섯째 봄은 올봄하고 또 다를 테니 그때에도 사진기를 챙길 테지요. 저한테는 서른넷째로 찾아왔던 지난여름이 서른셋째로 찾아왔던 지지난여름하고 많이 달라 사진기를 챙겼습니다. 그에 앞선 지지지난 서른둘째 여름은 지지난여름하고도 많이 달라서 사진기를 챙겼어요.

외할머니 등에 업혀서 외할머니가 무얼 하는지 알아보고 싶어 몸을 비틀어 쳐다보려는 아기.
 외할머니 등에 업혀서 외할머니가 무얼 하는지 알아보고 싶어 몸을 비틀어 쳐다보려는 아기.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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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자라는 아이는 왼손으로 방바닥을 탁탁탁 친 다음 엉덩이를 잡아당겨 옹크린 다음 발가락 끝에 힘을 주며 무릎을 모두다가는 앞으로 쪽 뻗으며 깁니다. 나비가 팔랑거리듯, 아니 개구리가 살몃살몃 기듯, 물속에서 헤엄치듯 깁니다. 그러나 엊그제까지는 이와 같이 기지 못했습니다. 아주 엉금엉금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데굴데굴 구르면서 다녔습니다. 더 앞서는 엎치락뒤치락을 즐겼습니다. 오늘 저녁과 이튿날과 다음날과 글피는 또 다른 모습으로 길 테지요.

날마다 끝없이 빨고 널고 개는 기저귀이지만, 날마다 해지는 천이 달라 이제 더 못 쓰게 되는구나 느끼고, 이제 몇 번만 더 써야지 하면서 또 더 쓰고 하면서 차마 손에서 떼어내지 못합니다. 아주 너덜너덜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동안 고마웠어. 이제 푹 쉬렴' 하고는 따로 갈무리해 놓습니다.

갓난쟁이일 때 손톱과 한 달째 손톱과 석 달째 손톱과 여섯 달째 손톱과 일곱 달째 손톱이 모두 다릅니다. 어느 한날 똑같았던 손톱이 아닙니다. 아기 손톱을 깎다가 제 손톱을 물끄러미 들여다봅니다. 길고 곱던 손톱이 어느새 몽톡해지고 반달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내 몸이 많이 야위었는가 싶고, 내 몸이 크게 나빠졌는가 싶습니다. 몸무게는 더 빠지거나 다시 늘지는 않으나, 하루하루 몸이 말라간다고는 느낍니다. 힘살도 줄고 머리숱도 많이 줄었어요. 이렇게 나이를 들어간다고 느끼면서, 가끔가끔 옆지기가 찍어 주는 '아기와 애 아빠' 사진에 담긴 모습이 꼭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시나브로 흐르는 삶이요, 고즈넉이 달라지는 몸피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골목길이든 헌책방이든 늘 보여지는 그 모습 그대로를 먼저 느끼고 나서 사진기를 듭니다. (서울 낙성대 헌책방 〈흙서점〉)
 골목길이든 헌책방이든 늘 보여지는 그 모습 그대로를 먼저 느끼고 나서 사진기를 듭니다. (서울 낙성대 헌책방 〈흙서점〉)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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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꼭 열여덟 해를 다닌 헌책방이고, 헌책방에서 사진을 찍은 지는 열두 해째입니다. 이동안 찍은 사진은 십만 장이 넘을 텐데, 이토록 찍었어도 아직 모자라다고 느낍니다. '배고프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아직 어수룩하거나 어설프다고 느낄 뿐입니다. 아직 채우지 못한 고리가 있음을 느낍니다. 이 고리는 하루아침에 채울 수 없는 한편, 섣불리 채워서 안 됨을 함께 느낍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헌책방을 찾아가서 새로 들어온 좋은 헌책을 만나고, 새로 맛보게 되는 책방 느낌과 책방 일꾼 매무새와 책손들 몸짓을 사진으로 차근차근 담습니다. 천천히 모이면서 이루어지는 사진임을 느끼고, 가만가만 엮이는 사진임을 느낍니다. 숨이 가쁘게 뛴다고 나올 수 없는 사진이라고 느끼며, 한잠 푹 자고 나서 다시 찍는다고 나올 수 없는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지난 2007년부터 차곡차곡 담는 골목길 사진 또한 벌써 여러 만 장에 이르는 숫자가 됩니다. 그렇지만 헌책방을 담던 사진과 마찬가지로 아직 모자라다고 느낍니다. 아직 어설프고 어수룩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이 느낌이 좋아서 사진기를 더 다부지게 움켜쥡니다. 이 모자람이 기뻐 사진기를 더 즐겁게 감싸쥡니다. 이 어설픔이 반가워 사진기를 더 신나게 쓰다듬습니다. 이 어수룩함이 고마워 사진기를 더 애틋하게 어루만집니다.

사진기를 들어 사진 한 장 이루어내는 일이란, 빨래 한 점을 마치는 일과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집으로 돌아와 스캐너로 필름을 긁거나 셈틀 풀그림으로 디지털파일을 다루어 '어떻게 찍혔는가' 돌아보는 일이란, 다 한 빨래를 탁탁 펼쳐 널어 햇볕에 잘 말리고 나서 거둔 다음 콧노래 부르며 개어 차곡차곡 간수하는 일과 같다고 느낍니다. 아기와 옆지기와 제 몸을 생각하고, 또 빨래하는 제 손을 걱정하면서 허튼 빨래비누를 함부로 쓰지 않는 한편, 빨래틀을 돌리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대상(헌책방, 골목길, 자전거, 책)을 생각하고, 또 사진을 찍는 저를 근심하면서 아무 사진기나 멋대로 쓰지 않는 한편, 더 나은 장비를 꿈꾸기는 해도 지금 다루는 이 장비로도 흐뭇하다고 웃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그냥 모르는 사진입니다만, 아는 사람은 아는 사진입니다. 머잖아 이 앙상한 가지에 잎이 돋고 열매가 맺히면, 그때에 가서야, ‘아하, 앵두나무로군요!’ 하고 이야기를 하리라 생각합니다. 마땅한 소리이지만, 열매가 맺혀도 앵두나무인 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그냥 모르는 사진입니다만, 아는 사람은 아는 사진입니다. 머잖아 이 앙상한 가지에 잎이 돋고 열매가 맺히면, 그때에 가서야, ‘아하, 앵두나무로군요!’ 하고 이야기를 하리라 생각합니다. 마땅한 소리이지만, 열매가 맺혀도 앵두나무인 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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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만 원짜리 사진책을 사고, 몇 천 원짜리 사진책을 사며, 십만 원이 넘는 사진책을 삽니다. 제 마음을 뭉클하고 움직이는 사진이 담기거나 엮인 책이라면, 그 사진책 값이 얼마인가는 그리 따질 만하지 않습니다. 제 마음을 조금도 건드리지 못하는 사진이 담겼으나 우리 사진밭에서 높이 사고 있으면서 떠받들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자료 삼아 장만해야 하는 책이라면, 그 사진책 값이 아무리 싸더라도 내키지 않습니다. 사진책을 따로 모은 지 벌써 열다섯 해째이고, 이제까지 모아 놓은 사진책은 아직 만 권에 이르지 못했으나 오천 권에 가까워집니다. 오천 권이라는 사진책은 살 때에 여러 번 훑고, 사고 나서 수없이 되읽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사기 어려운 사진책이 많고, 다시 살 수 없는 사진책도 곧잘 있는데, 어떤 사진책이라 하든 제 눈길을 거쳐 제 마음길을 이루고 제 생각길을 다스리다가는 손길로 이어갑니다.

집이나 도서관에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감도 200이나 400으로 맞춘 다음, 셔터빠르기는 으레 1/20초나 1/25초쯤 되도록 가눕니다. 1/15초가 되어도 괜찮습니다. 멈추어 있는 모습만 찍는다면 1/4초나 1/8초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움직이는 아기를 찍어야 한다면 감도를 800이나 1600까지도 높여 셔터빠르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합니다. 감도가 높아지는 만큼 질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질감까지 훌륭하게 찍을 수 있으면 더없이 즐겁기는 하나, 저한테 더 애틋하고 크게 돌아볼 대목은 '찍을 모습을 제대로 제때 붙잡아 내었느냐'에 있습니다. 찍을 모습을 제대로 제때 붙잡아 내고자 셔터빠르기가 1/1초나 1/2초가 되어도, 때로는 2초나 4초 동안 꼼짝 않고 찍어야 할 때에도 제 몸뚱이가 세발이 노릇을 하면서 찍습니다. 웬만하면 감도 1600으로 안 찍고 싶지만, 흔들리는 전철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찍어야 할 때에는 거침없이 감도 1600으로 맞춥니다.

제 엄마가 피리를 불어 주니 소리에 귀가 쫑긋하면서 웃는 아기.
 제 엄마가 피리를 불어 주니 소리에 귀가 쫑긋하면서 웃는 아기.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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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안고 집을 나서며 골목길을 거닐 때에는 파일을 raw로 맞춥니다. 하늘과 햇볕을 몸으로 느끼면서 감도를 100으로 할지 200으로 할지 가눕니다. 해질녘이나 매지구름으로 어두운 날에는 감도 400이나 800까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되도록 골목길 뒤쪽까지 또렷하게 나오기를 바라면서 셔터값을 1/10초나 1/8초로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아기를 안고 찍기에는 흔들리지 않기 어려워, 조리개값이 4.0이나 5.6이 되어도(제 렌즈는 아주 값싼 녀석이라 4.0 밑으로는 내리지 못합니다), 요즈음은 셔터값을 1/20초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감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높은 감도로 찍어서 종이에까지 뽑아 놓고 보면, 이제는 디지털장비가 한껏 나아져서 그러한지 몰라도, 감도 1600으로 찍은 사진이라고 해서 감도 100으로 찍은 사진보다 '아주 못 봐주도록' 질감이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퍽 괜찮습니다. 그리고 남다른 맛과 멋을 풍기곤 합니다. 감도 100은 100대로 좋고, 감도 1600은 1600대로 좋습니다.

골목길에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햇볕 한 줄기도 아주 꼼꼼하게 살피고 느껴야 합니다. 빛줄기를 붙잡으면 사진이 살고, 빛줄기를 놓치면 사진이 죽습니다. 어느 골목집이든 빛살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지어졌고, 빛살 하나 받으려고 빨래줄 자리며 창문 자리며 달라집니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사진으로 담으려고 하는 대상이 어떤 삶자락으로 이어왔느냐를 느끼지 않는다면, '수없이 쏟아지는 사진'은 되지만, '가슴을 적시는 사진'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골목길에서 사진찍기를 할 때에 가장 알맞거나 좋은 때는 언제일까요? 막 동이 튼 새벽? 동이 트고 살짝 빛살이 흩뿌려지는 아침? 햇살이 살며시 잠드는 해거름? 잔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한낮? 해가 머리 꼭대기 위에서 내리쬐는 때? 눈발이 보송보송 깔리는 아침나절?

저는 이 모든 때에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걸쳐 찍어 보았습니다. 이리하여 골목길 한켠 모습만 하여도 수십 가지 모습이 담기고, 머잖아 수백 가지 모습으로 담기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찍는 동안, 김영갑 님이 제주 오름을 사진으로 담는 길이 무엇이었는가를 깨달았는데, 틀림없이 '사진찍기 좋은 가장 알맞는 때'는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찍기 좋은 가장 알맞는 때'에 찍은 사진이 '우리 가슴을 가장 뭉클하게 하는 훌륭한 사진'으로까지 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사진을 찍는 내 가슴을 촉촉히 적시며 내 사진을 내가 보면서 눈물이 주르르 흐르게 되'지도 않아요.

혼자서 뒤집기 놀이를 하고 기기 놀이를 하는 아기를, 늘 그 모습 그대로 한 장 두 장 담아내고 있습니다.
 혼자서 뒤집기 놀이를 하고 기기 놀이를 하는 아기를, 늘 그 모습 그대로 한 장 두 장 담아내고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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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때는 언제나 있고, 좋은 자리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이를테면 첫 해가 뜨는 새벽나절 정동진에서 찍는 사진은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그런데 첫 해는 정동진에서만 아름답게 담을 수 있을까요? 첫 해를 담는 사진은 정동진 아니면 참맛과 참멋을 선사하지 못할까요? 그러면 그 기막히게 좋은 때에는 어떤 사진장비를 갖추어야 할까요? 어느 회사 장비를 써야 할까요? 어느 회사 필름을 써야 할까요? 필름이어야 할는지 디지털이어야 할는지, 그리고 35밀리 필름이어야 할는지 중형이나 대형 필름이어야 할는지, 또는 손전화 디지털도 괜찮은지 중형 디지털쯤은 되어야 할는지요? 파노라마는 어떻습니까? 로모는 어떻습니까? 토이카메라는 어떠하지요? 미녹스는 어떠한가요?

사진기를 들어야 할 알맞는 때는 사진찍는 우리 스스로 찾습니다. 왜냐하면, 사진감에 따라 사진기를 들어야 할 때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갈래에 따라 '좋은 때' 또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에 따라,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세상에 따라 '좋다고 느끼는 때'가 달라집니다.

아는 만큼 보이거나 아는 만큼 찍지는 않습니다. 알려고 하는 만큼 보입니다. 알려고 하는 만큼 찍을 수 있습니다. 다가서는 만큼 알게 되고, 다가서는 만큼 찍을 수 있습니다. 느끼려는 가슴만큼 알게 되고, 느끼려는 가슴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찍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사진, #사진말, #사진찍기, #사진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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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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