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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제목을 보면 바로 떠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치매 부모를 모시고 살거나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쉬이 상상이 될 것이니까요. 기억이 조각나서 앞뒤가 안 맞고 방금 했던 일을 까맣게 잊고 자꾸 고집 부리는 것이 상상되지요? 없던 일을 꾸며서 기를 쓰고 관철 시키려는 모습도 떠오를 것입니다.

저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새벽에 잠을 깬 어머니가 난데없이 저한테 존댓말을 한다든가 어서 저녁 해 먹자고 하셔도 저는 놀라지 않습니다. '아 우리 어머니가 나 웃겨 보시려고 농담 하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겨울인데 두릅 꺾으러 가자고 막 조르실 때도 저는 대뜸 그러자고 합니다. 올해 여든 여덟이나 되신 어머니는 능구렁이가 따로 없을 정도로 농담도 진짜처럼 잘 둘러대지만 저는 안 속아 넘어 갑니다.

몇 겹씩 옷을 껴입혀 드리고 양말도 두 개씩이나 신겨서는 두릅 꺾어 담을 큰 바구니까지 챙겨 휠체어에 어머니를 앉히고 마당에 자욱한 눈길을 헤쳐 몇 바퀴 밀고가지 않아서 '헤헤 속았지롱~ 내가 농담 한 걸 가지고 뭔 난리냐'라는 듯이 어머니는 방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합니다.

"눈도 안 녹았는데 두릅 아직 안 폈다"고 하시는 겁니다. 저는 또 어머니한테 눈밭에 두릅 꺾으러 가는 철도 모르는 놈이라고 한참 야단을 맞지만 처음부터 "한겨울에 무슨 두릅이냐?"고 어머니를 설득하는데 드는 시간보다 몇 백배 짧은 순간에 상황은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모두 다 어머니가 심심하시니까 '놀려먹기 놀이' 하시는 것들입니다.

제가 이렇게 확신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돌확(경상도 사투리로 우리 어머니가 '호박돌'이라 부릅니다)에 마늘을 찧어 김치를 담을 때입니다. 마늘을 까서 어머니께 드리면서 조그마한 손절구를 드렸더니 "뒷집 디딜방아에 가서 찧어야지 어느 세월에 요기다 마늘을 다 찧냐?"고 저를 나무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오 엄니. 요즘 세상에 디딜방아가 오딧어요? 여따 찧어요."
"디딜방아 없으면 재작년에 사람들 몰려와서 인절미 해 먹던 그 호박돌 가져 와라."

어머니 입에서 호박돌 얘기가 나오자 저는 머리가 쭈뼛했습니다. 2년여 전에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오십 여분 집으로 모시고 이틀에 걸쳐 '어머니의 건강과 존엄을 위한 기도잔치'라는 걸 열었었는데, 그때 농사지은 쌀과 콩고물로 어머니 보는 데서 "어이싸~ 어이싸~" 해 가며 떡메를 번갈아 치면서 인절미를 해 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사용한 돌확을 마당 구석에 덮개로 덮어 두고는 저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걸 어머니가 가져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일은 몇 번 더 있었습니다.

동네 할아버지가 산에서 고로쇠 물을 한 병 받아 주신 적이 있는데 다음 해 봄이 되자 "올해는 고로쇠 물 안 주나?" 하셨을 때도 그렇고, 아내가 생협에서 '녹차과자'라는 것을 두 봉지 사다 줬는데 반쯤 먹다 남겨 둔 것을 제가 어머니 몰래 야금야금 다 먹고는 나중에 온 봉지를 꺼내 놓자 "접때 내가 먹던 거는 어따 두고 새 걸 내 놓냐?"고 해서 당황했던 적도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 했었습니다.

어머니랑 살면서 꾸준히 사진과 캠코더를 찍어서 틈만 나면 보여 드렸고 그렇게 해서 최근 기억을 되살리는 훈련을 시도 했던 것이 효과가 나타났다고 말입니다.

근데 지금은 달리 생각합니다. 그동안 있었던 어머니의 엉뚱한 말씀들은 다 어머니가 농담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농담 단수가 점점 높아져 내가 깜빡 깜빡 속았던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동시가 있습니다.

척척박사.
우리 할머니 별명이었다구.
식구 생일, 친척 생일, 제삿날까지 척척
구수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솔솔.

어느 날부턴가
그런 할머니가 이상해졌어.
나하고 형을 헷갈리더니
할아버지 제삿날까지 오락가락

금방 밥 먹은 것도 잊고 또 달래.
자꾸자꾸 할머니 머리에 도둑이 드나 봐.
머릿속을 야금야금 훔쳐가는 것 같아. (뒤 줄임) - 오은영 동시-

맞습니다. 농담하시는 게 아니면 도둑놈 때문입니다. 그러니 치매 어르신 말씀을 무시하거나 교정하려고 하지 말고 재미 진 농담이라고 여기고 같이 놀아 보세요. 농담이라는 걸 들킨 어르신이 '에이... 안 속네' 하시면서 농담을 그칠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행복한 노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치매,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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