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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옥 뒤란의 매화꽃가지에는 그윽한 기품이 서려있다.
 초옥 뒤란의 매화꽃가지에는 그윽한 기품이 서려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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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간에 꽃입니다.
눈 가고 마음 가고
발길 닿는 곳마다 꽃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지금 꽃이 피고, 못 견디겠어요.
눈을 감습니다.
아, 눈감은 데까지 따라오며
꽃은 핍니다.
피할 수 없는 이 화사한 아픔,
잡히지 않는 이 아련한 그리움,
참을 수 없이 떨리는
이 까닭 없는 분노
아 아, 생살에 떨어지는
이 뜨거운 꽃잎들.

섬진강에서 나고 자란 섬진강 시인 김 용택님의 시 '이 꽃잎들'이다. 청매실농원의 매화 꽃구름동산에 가면 이같이 주옥같은 시들을 만날 수 있다.

삼국시대 복식을 한 사내가 시비 앞에서 시를 감상하고 있다. 서울에서 왔다는 천리향(67) 선생이다. 그는 우리 옷을 입어야 되는데 한복은 도포입고 갓 쓰고 격식을 갖춰야 하므로 나들이 때는 이 옷이 편해 즐겨 입는다고 한다.

시 구절을 읊조리다보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서울에서 왔다는 천리향선생, 권소정여사 부부다. 선생의 독특한 복식이 시선을 끈다.
 서울에서 왔다는 천리향선생, 권소정여사 부부다. 선생의 독특한 복식이 시선을 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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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진 글은 섬진강 시인 김 용택님의 시 '이 꽃잎들'이다.
 새겨진 글은 섬진강 시인 김 용택님의 시 '이 꽃잎들'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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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애모' 시비 앞에 서있던 선생은 시 구절을 읊조리다 이 시는 "그리움이 묻어있으며 마음속에 담겨있는 마음을 표출한내용"이라고 말한다. "매화동산 초입에 사군자가 어우러졌으면 좋을 텐데"라며 아쉬워하던 선생은 매실을 바라보며 갈증을 해소한다는 뜻의 '망매지갈'이라는 고사성어에 대해서 얘기했다. 어려울 때 희망을 가지고 위안을 얻기 위해 마음에 새겨봄직 하다며.

동행하라. 혼자보다 둘이 좋고 둘보다 셋이 좋다. 함께하는 여행은 그 기쁨이 배가 되는 것 같다. 가족이나 연인이면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길에서 만난 나그네와의 동행 길도 뜻이 맞으면 즐겁다. 선생과 동행하는 산책길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것 같다. 삼국시대를 여행하는 느낌이다. 거기에다 매화꽃까지 흐드러졌으니 그 기쁨이 배가된다.

매화꽃가지 너머 수많은 장독에는 숙성되어가는 매실과 함께 세월이 담겨있다. 장독너머로 섬진강이 흐른다. 매화꽃동산에 올랐다. 꽃이 환하게 핀 매화나무 밭에는 초롱꽃 이파리가 초롱초롱 올라온다. 이따금씩 만나는 시비에서 시한구절씩 마음에 새기면서 더디 가는 발걸음이지만 가볍다.

매화동산 산책길에서 만난 마산에서 온 최인효씨와 천리향선생이 매화동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매화동산 산책길에서 만난 마산에서 온 최인효씨와 천리향선생이 매화동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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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이분도 과거에서 왔나"싶은 백발수염이 덥수룩한 분을 매화동산 산책길에서 또 만났다. 마산에서 온 최인효(57)씨다. 그저 편해서 4년여 동안 수염을 기르고 있다고 한다. 이 두 분들과 매화동산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들은 긴 수염으로 인한 일화도 많다고 한다. "성탄절엔 산타할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아이들이 진짜야 가짜야 만져보며 좋아하기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모두들 자리를 양보해준다"며 수염이 여러모로 도움 되는 일이 많다며 환하게 웃는다.

"너무 아름답습니다, 매화향이 좋습니다!"

매화꽃가지 아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유별난 꽃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매화꽃은 1품, 란은 2품… 진달래는 5품이지만, 개나리는 날만 따뜻하면 아무 때나 피어 품계가 없단다. 담양에서 왔다는 박경복(55)씨는 이분들을 보며 옛 시대로 거슬러 오른 것 같다고 말한다.

"아주 좋네요. 혼자 온 것이 안타깝네요."
"야~ 너무 좋다. 저 산이 너무 좋은데…."
"여기 안 올라왔으면 후회할 뻔 했어."

꽃동산에서 아가 무등을 태우며 좋아하는 가족들
 꽃동산에서 아가 무등을 태우며 좋아하는 가족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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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구름 동산 매화농원에 오른 여행객들의 소감이다. 이렇게 좋은 데를 안보고 갔으면 어쩔 뻔 했겠느냐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한 중년부부는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마치 어린아이 마냥 즐거움에 들떠있었다.

"각시도 예뻐요, 신랑은 더 예뻐요."
"예! 꽃보다 각시예요."
"너무 아름답습니다, 매화향이 좋습니다."
"향도 좋고, 꽃도 좋고… 산도 강도 너무너무 아름답습니다."

가는 곳마다 탄성이다.

매화꽃가지 너머 수많은 장독에는 숙성되어가는 매실과 함께 세월이 담겨있다. 장독너머로 섬진강이 흐른다.
 매화꽃가지 너머 수많은 장독에는 숙성되어가는 매실과 함께 세월이 담겨있다. 장독너머로 섬진강이 흐른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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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죽취일(음력 5월13일)에 대를 옮겨 심으면 잘 자란다.
 선생은 죽취일(음력 5월13일)에 대를 옮겨 심으면 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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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닿는 곳마다 매화꽃 천지다.
 눈길 닿는 곳마다 매화꽃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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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 함께 동행 한 권소정(66)여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나간 대나무를 보고 놀란다.

"세상에 대나무가 이렇게 크네!"

선생은 죽취일(음력 5월13일)에 대를 옮겨 심으면 잘 자란다고 한다.

섬진강이 발아래다. 이곳에서 시야에 잡힌 섬진강은 여기가 '속세인가?, 선계인가?' 의아할 정도로 아름답다. 매화꽃구름 속에서 섬진강을 본다. 동산의 오른편은 옛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S라인 흙길이다. S라인 흙길에 선 사람들도 하나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매화동산에서 흩날리는 매화꽃잎이 되다

옛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S라인 흙길이다. S라인 흙길에 선 사람들도 하나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옛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S라인 흙길이다. S라인 흙길에 선 사람들도 하나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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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오를수록 시야가 넓어진다. 섬진강의 물결이 꽃동산을 따라 흐르며 굽이친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수록 세상은 그만큼 더 아름다워진다. 눈길 닿는 곳마다 매화꽃 천지다. 빛바랜 갈대이엉을 이고 있는 초옥의 매화꽃가지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정말 아름답다.

하얀 눈부심이 좋다. 다가갈수록 선명한 매화꽃잎은 마음마저 맑게 해준다. 매화농원의 오솔길에는 야옹이 녀석이 어슬렁댄다.

매화고목이다. 고매의 꽃은 느낌이 다르다. 뭐랄까. 깊고 그윽한 기품이 서려있다고나 해야 할까. 아무튼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선암사의 고매를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다 스승이다. 그들과 동행하면서 그들의 머리와 마음속으로 로그인하라. 그리고 필요시마다 '클릭! 클릭!'해서 여러분의 지식으로 만들어라. 함께하는 여행은 가슴이 상쾌하고 마음마저 풍요롭다.

매화동산에 오르면 마음은 어느새 흩날리는 매화꽃잎이 된다. 꽃잎에 근심을 실어 다 날려 버리자. 기세 좋게 흘러내리는 섬진강물에 띄워 보내자. 이따금씩 봄바람에 한 잎 한 잎 흩날리는 매화꽃잎은 나풀대는 흰나비를 닮았다. 내 마음 어느새 흰나비 되어 꽃구름 속으로 숨어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매화, #섬진강, #청매실농원, #봄바람,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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