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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나물, 맛이 달고 씹히는 맛이 참 좋다.
 시금치나물, 맛이 달고 씹히는 맛이 참 좋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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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된장국, 부드럽게 넘어가고 구수한 맛이 난다.
 시금치된장국, 부드럽게 넘어가고 구수한 맛이 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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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라서 그런가? 좀 나른하다. 입맛도 깔깔하다. 계절을 타는 듯싶다. 입맛을 돌게 할 맛난 것은 없을까?

오후 들어 창을 타고 들어온 햇살이 따사롭다. 책을 보는 아내 표정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한참을 지나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편다. 이 틈을 타 슬쩍 말을 걸었다.

"여보, 오늘 장날 아냐?"
"장날 맞네요. 왜요? 장 구경 가게요."
"시장에 봄나물이 나왔을 텐데…."
"웬 나물 타령이실까. 사 먹을 생각 말고, 직접 캐보시지?"

"이 사람, 우리 동네 나물이 어디 있다고! 냉이, 달래 같은 것은 아직 일러!"
"그런 것만 봄나물인가? 우리 밭에도 시금치 있잖아요!"
"시금치?"
"된장국도 끓이고, 나물 무치면 그만일 건데!"

그러고 보니 우리 텃밭에 시금치가 있지 않은가!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시금치도 훌륭한 봄나물이지 싶다. 품들이지 않고 봄맛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아내 말에 귀가 솔깃하다.

새봄... 밭에는 시금치가 자라고 있었다

밖으로 나왔다. 코끝에 머무는 바람이 봄을 느끼게 한다. 발에 밟히는 흙이 보드랍다. 하기야 우수 경칩이 지났으니 언 땅이 풀린 게 분명하다. 밭에 나와 일감을 찾으니 마음이 넉넉해진다. 머리도 맑아진다. 시골에 살면서 뭔가를 가꾸고, 가꾼 것으로 맛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참새가 가까이서 "짹짹!"거리며 친구를 하잔다. 봄날이 참 좋다. 밭둑에 불을 놓고 있는 이웃집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농사철에는 만날 뵙는 분이지만 추운 겨울에는 뜸하였다.

아저씨가 나를 보자 반갑게 말을 건넨다.

겨울을 이겨낸 시금치이다. 볼품은 없어도 귀하게 여기면 좋은 나물이 된다.
 겨울을 이겨낸 시금치이다. 볼품은 없어도 귀하게 여기면 좋은 나물이 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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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도 밭에 돼지 똥 받아놨어! 부지런도 해! 지금은 뭐하려고?"
"뭐하긴요. 시금치나 캐 보려고요."
"요새 시금치국 끓여먹으면 그 맛이 달큼하지! 애 엄마는 도통 볼 수가 없네!"
"늘 바빠서요. 오늘은 집에 있는 걸요."

아내가 우리 이야기를 엿듣기라도 한 듯 밭에 나왔다. 손엔 나물바구니와 칼이 들려 있다. 책은 다 읽었나? 아내도 아저씨를 보니까 반가운 모양이다.

"아저씨, 이제 날이 풀려 덜 심심하겠어요?"
"밭에 나오니 좋지! 방에 죽치고 있자니 죽을 맛이었어. 사람은 일이 있어야 해!"

그렇다. 아저씨는 농사일이 없는 겨울, 방안에 갇혀 사는 게 여간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은 일감이 있고, 돈벌이를 할 수 있을 때 힘이 난다며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몸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남기고 발길을 돌리신다. 당신네 밭에도 있는 시금치를 캐실 모양이다.

시금치는 겨울철 나물

작년 늦가을에 뿌려놓은 시금치가 봄기운을 맡아 파릇파릇하다. 옆으로 퍼져 땅바닥에 붙은 채로 찬 바람을 이겨냈다. 추운 겨울에도 푸른색을 유지한 게 신비롭다. 그러고 보면 시금치는 겨울이 제철이다. 겨울을 이겨낸 시금치는 이파리가 단단하다. 맛과 향기에서 가늘고 기다랗게 자란 여름 시금치에 비할 수 없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서일까? 우리 밭에 있는 시금치는 볼품이 없다. 잎도 자잘하고, 겉잎이 마른 게 많다.

그래도 아내는 밑동에 칼을 넣고 쓱싹 벤다. 빨간색의 뿌리는 실해 보인다. 겨울을 이겨낸 비결은 튼실한 뿌리이지 싶다. 꽁꽁 언 땅에서 썩지 않은 뿌리로 새봄을 기다린 자연의 참을성은 무엇일까?

어느새 한 소쿠리이다. 나물 캐는 맛이 쏠쏠하다. 아내가 반쯤 남겨놓는다. 그리고 속내를 드러낸다.

"한 차례 봄비를 맞고, 날이 더 푹해지면 많이 자랄 거예요. 시금치 삶아 당면 잡채를 해먹으면 일품이죠. 그 때 이웃집 아저씨랑 막걸리 한 잔하세요."

이른 봄에 먹는 시금치 맛 괜찮네!

다듬어 깨끗이 씻어놓은 시금치가 훌륭한 먹을거리가 되었다.
 다듬어 깨끗이 씻어놓은 시금치가 훌륭한 먹을거리가 되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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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를 다듬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다듬어 놓고 보니 하찮아 보이는 시금치가 귀하게 여겨진다.

찬물에 시금치를 깨끗이 씻어내자 더 파릇파릇하다. 팔을 걷어붙인 아내가 말을 꺼낸다.

"여보, 시금치는 영양덩어리라는데 봄 시금치도 뿌리지?"
"그거야 힘 드는 일인가! 당신이 맛나게만 해준다면…."

시금치는 봄과 가을에 노지재배가 가능하다. 병충해가 많이 끼지 않아 저절로 크다시피한다. 각종 비타민과 철, 칼슘 등이 풍부한 알칼리성 채소로 여성미용에도 좋다고 한다.

아내가 요리 솜씨를 발휘한다. 많지 않은 양이지만 나물도 무치고, 된장국도 끓일 셈인 모양이다.

"당신, 뭐부터 할 거야?"
"남자가 관심도 많네요.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잡수셔!"
"나도 배우면 좋잖아!"
"그럼, 이 다음엔 당신이 하는 거예요!"

내가 손사래를 치자 아내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도 재미있다.

 간단하게 끓인 시금치된장국이다.
 간단하게 끓인 시금치된장국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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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된장국부터 끓인다. 된장국은 간단하다. 다시마, 멸치를 넣어 육수를 만든다. 천연조미료로 맛을 낼 샘이다. 건더기를 건져내고 된장을 풀어 적당히 간을 맞춘다. 국이 끓어오르자 손질한 시금치를 넣어 한소끔 푹 끓이니까 된장국이 완성된다.

갖은 양념으로 시금치나물이 무쳐졌다.
 갖은 양념으로 시금치나물이 무쳐졌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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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나물을 무칠 차례다. 냄비에 물을 팔팔 끓인다.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집어넣는다. 아내는 소금을 넣어 데치면 영양분 유출도 막고, 색상도 선명해진다고 한다. 데친 후 찬물에 헹궈내는 손놀림이 빠르다. 마지막으로 물기를 꼭 짠다. 이제 다진 파, 마늘, 깨소금, 들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맛난 나물이 뚝딱 만들어진다.

시금치나물에 시금치된장국으로 밥상이 차려졌다. 시금치나물이 달디 달다. 씹히는 맛도 좋다. 된장국도 구수한 맛이 제법이다. 새봄에 먹는 시금치 반찬으로 입이 즐겁다. 봄향기와 봄맛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태그:#시금치, #시금치된장국, #시금치나물, #봄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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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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