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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건강보험지출 약제비가 총 진료비의 30%에 이르는 10조3천억원을 기록했다. OECD국가의 17%대와 비교하면 2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증가율도 12% 이상으로 이들 국가 평균의 2배다. 이렇듯 약제비가 기형적으로 높은 이유는 '엄청난 거품' 때문이다. 불필요한 의료비 상승의 진원지인 이 거품이 보험재정마저도 위태롭게 한다. 그래서 마침내 정부가 거품 제거를 위한 칼을 빼들었다.

 

대표적 거품은 '제약사 리베이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7년에 제약사 리베이트 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액을 2조원으로 추산했다. 제약회사의 2007~2008년 불법 의약품 리베이트와 관련해 지난 1월, 병원과 의사들에게 4천억원대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대형 제약사 17곳을 적발해 40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제약사들의 영업 리베이트 관련 비용은 약 30%로 알려졌다. 이것은 약값에 포함되어 고스란히 소비자가 뒤집어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의사가 특정 의약품을 사용해 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는 '의약품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해 적발된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또 하나의 큰 거품은 '고평가된 약값'이다. 복지부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2006년 12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시행했다. 핵심 내용은 비용대비 효과를 따져 1만6천여개의 약품가격을 5년에 거쳐 재평가한다는 것이다. 2006년 복제약 가격의 경우, 오리지널약(신약) 가격을 1로 했을 때 미국이 0.16, 독일이 0,33인 반면, 한국은 0.86에 이른다. 복제약가 비중은 총 약가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긴 당국

 

그런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본 사업의 실무주체인 심사평가원의 약값평가위원회(약제급여평가위원회) 위원들에 대한 추천권의 대부분이 의사협회·약사회 등 의약계에 할당되었다. 의약계와 제약사는 성격상 불가분의 이해관계를 가진다.

 

의약품 리베이트도 그중 하나이다. 또한, 거대한 비용으로 대학병원이나 약대 교수에게 연구용역·임상실험 등을 발주함으로써 유착관계를 맺는다. 의약계 일변도의 추천권은 이러한 사슬관계에 있을 수 있는 의약계 교수들이 약값평가위원으로 포진할 길을 터주었다.

 

애초에 복지부는 1만6천개의 보험급여 약품 중 2007년에 295개의 시범평가를 마치고 2008년에는 3748개를 정비하는 일정을 발표했다. 하지만 295개 약품 시범평가는 1년이 지연된 2008년 말에야 완료되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결과"라고 지적했다.   

 

평가위원들과 제약사와의 유착 관계에 대한 의혹을 밝히라는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였다. 국민들은 덜 내도 되는 약값을 왜 고가로 지불해야 하는지 모른다. 거품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이중·삼중의 장막을 쳐놓음으로써 거품과 보험료 인상과의 관계를 체감할 수 없도록 했다.

 

제약사들은 평가가 늦어질수록 수익이 커진다. 295개 시범평가에서만 약값 거품이 453억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복지부가 약값 재평가로 약제비를 24% 이하로 낮추겠다고 했으니 1년 지연시키면 5천억원 이상이 남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재평가사업이 기약 없이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범평가가 끝난 295개 약품의 가격조정도 향후 3년 동안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고 하는 마당에 나머지 1만5700여 개의 가격조정을 기대할 수는 없다.

 

기업운영이 힘든 때에 제약업체에 충격을 줄 수 없다는 것이 약값재평가사업 축소·유보의 표면적 이유이다. 뒤집어 말하면, 경제가 어려우니 제약사의 수익보존을 위해 수조원의 약값 거품을 국민들이 계속 뒤집어쓰라는 말이다. 경제가 어려워 서민들은 고가의 약값 때문에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모르쇠다.

 

국민들은 약제비가 왜 10조원을 넘었는지 알지 못한다. 10조원 속의 약제비 거품은 의약계와 제약사 그리고 정부의 견고한 카르텔로 깨지지 않는 강철 거품이 되어가고 있다. 무지갯빛 약값 거품 속에서 '그들'만의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국민들은 영문도 모르고 얇아진 주머니를 털리고 있다. 기약도 없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송상호 기자는 공공서비스노조 사회보험지부 정책위원입니다.


태그:#약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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