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현재 일본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러브셔플> 주인공의 대사이다. 「 <러브셔플>은 각각 사연을 가진 네 쌍의 커플이 서로 짝을 바꿔가며 데이트를 하며 자신의 짝을 찾아간다는 다소 파격적인 내용의 드라마이다. 언뜻 한때 문제로 떠올랐던 '스와핑'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러브코미디의 형식을 띤 이 드라마는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무리 없이 시청이 가능하다.

 

<노다메 칸다빌레>에서 치아키 선배로 우리나라에도 익히 알려진 타마키 히로시(우사미 케이 역)가 경찰에 잡혀가며 위의 대사를 사람들에게 내던진다. 부자인 약혼녀 덕분에 예비 장인어른의 IT 회사 과장으로 취직했지만 돌연 헤어지자는 약혼녀를 잡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타마키 히로시 앞에 현실은 냉혹하지 그지없다. 아무리 일자리를 찾으려고 발버둥 쳐도 변변한 자격증조차 가지지 못한 그에게 꿈이 있는 직업을 찾기란 멀게만 느껴진다. 그런 그가 아무리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항변을 하더라도 포장마차 주인은 믿어주지 않는다. 한순간에 범죄자로 몰린 타마키 히로시는 세상을 향해 소리친다.

 

"실컷 벌어먹은 임원들은 또 많은 돈을 받아먹는다는데 젊은이한테 일이 없다니 어떻게 된 거야? 불경기다 뭐다 관계없어. 뭐가 정리해고고 임금삭감이야. 경영자가 무능하니까 밑에 있는 사람들이 손해 보는 거 아니야. 계약파기다 파견이다 언제쯤 정사원이 될 수 있단 거야? 자기만 좋으면 그걸로 된 거야?

 

일을 줘. 안정감을 줘. 꿈을 줘. 미래를 줘."

 

 드라마를 보다보면 지금의 경제위기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드라마에서 언뜻언뜻 묻어나는 일본의 상황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다. 공원에는 노숙자들이 멍하니 앉아있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동분서주한다. 러브코미디에서 경제 한파에 떠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의외일지도 모르지만 지독한 현실에 버둥대는 주인공을 보며 공감하게 된다.

 

 그럼 이제는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현재 우리나라 드라마의 한 경향으로 떠오른 것은 이른바 '막장'이다. 그야말로 갈 때까지 가버린 '막장' 드라마는 시청자의 욕을 먹으며 자라나듯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대세로 자리 잡았다. 출생의 비밀, 납치, 겁탈, 불륜, 비상식적인 행동의 연속 등등 자극적인 내용들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웬만한 자극에는 무덤덤해진 시청자들을 위해 점점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드라마는 그게 욕이든 열광이든 어떻게 해서든지 반응을 얻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핵심은 '막장'이 아니다. '막장'이든 뭐든 새로운 경향인 듯 보이지만 결국 바닥에 드러나는 것은 콘텐츠의 한계이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몇 가지 단어로 간단히 정리가 된다. 재벌, 사랑, 재벌의 사랑. 이 안에 웬만한 드라마는 얼추 어떻게든 한 쪽 다리를 걸쳐 놓고 있다. 물론 사극과 같이 형식의 틀이 정해진 경우는 논외로 치고 대부분의 현대극은 쉽게 그 정체를 드러낸다. 굳이 청진기 대어보지 않아도 단 몇 장면만으로도 선악 구분부터 그간의 줄거리, 향후의 전개까지 쉽게 진단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금방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간 너무 비슷한 이야기에 노출된 시청자들이 그만큼 단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끊임없이 자기복제만 해 온 드라마는 한 발 자국 옆으로 옮겨 다양성을 확보하기 보다는 기존의 영역에서 더욱 강력한 자극을 주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다.

 

재벌은 더욱 업그레이드 된 재벌로, 꼬장꼬장한 시어머니는 병적인 히스테리를 부리는 막강 시어머니로 변신을 할 뿐 바탕은 그대로다. 어떻게 보면 콘텐츠의 한계를 가지고도 지금까지 버텨온 우리나라 드라마를 대단하다고 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대장금(MBC)>이나<겨울연가(KBS)>같은 '한류'를 이끌었던 우리 드라마는 그 뒤를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다.

 

동어반복을 해 온 우리와는 반대로 일본은 다양한 콘텐츠로 무장하고 있다. 만화를 든든한 바탕으로 드라마, 영화에까지 영역을 넘나들며 상승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드라마는 의학, 추리물, 학원물, 로맨스 등 장르의 변화 말고도 다소 충격적인(집단 따돌림, 청소년 임신 등)내용까지 아우르고 있다.

 

일례로 작년 여름에 방영되었던 <정의의 아군(正義の味方)>은 악마 같은 언니에게 노예처럼 혹사당하는 여동생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언니의 로맨스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무서운 언니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동생의 일상을 코믹하게 그려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나라였다면 방영은커녕 기획단계에서부터 사라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았을 평범한 내용의 드라마이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일본의 콘텐츠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앤티크:서양골동양과자점>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여름> <백야행(제작 예정)>(이상 일본 드라마→한국 영화) <봄날(SBS)><햐얀거탑(MBC)><꽃보다 남자(KBS)>등 일본원작 드라마들의 한국행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우리나라 원작의 일본드라마도 간혹 눈에 띈다. 영화 <두사부일체>를 원작으로 일본에서는 <마이 보스 히어로>라는 드라마로, <마라톤> <마왕(KBS)>이 제작되었지만 콘텐츠 공급자로서의 일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콘텐츠 개발은 뒷전이고 쉽게 빌려다 쓸 생각만 하고 있다.

 

 작년에 이변을 일으키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등장은 주목할 만하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자된 경쟁작들에 비해 클래식이라는 낯선 소재를 다룬 <베토벤 바이러스>에 사람들은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예측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낯선 소재는 위험 부담을 안고 있지만 잘 다듬어 차려놓으면 상승효과는 배가 되고 시청자들은 새로운 맛에 금방이라도 성원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현실에 동떨어진 재벌의 사랑 놀음도 한 두 번이면 즐겁게 봐 줄 수 있지만 매일 보는 게 곤욕인 시청자들도 존재한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정규직을 꿈꾸는 20대,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 사교육에 찌들대로 찌는 고등학생들을 우리 드라마에서는 만날 수는 없는 건지 묻고 싶다.  드라마를 심히 사랑하는 우리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좀 골라 보는 재미를 주는데 분발을 촉구하는 것은 과연 욕심인 걸까?


태그:#러브셔플, #정의의 아군, #베토벤 바이러스, #다양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