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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마산제일여자중학교에서는 달마다 시 두 편을 뽑아 전교생이 암송을 하게 한다. 연말엔 '시 경시대회'를 통해 학년별로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 겨울방학 때 하루 코스로 문학 답사를 한다. 이번 문학 답사는 이육사문학관이 있는 안동으로 떠나게 됐는데, 퇴계 이황 선생의 높은 학덕을 기리는 도산서원과 풍산 류씨가 대대로 산 하회마을도 들렀다.

지난 15일 오전 8시에 마산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이육사문학관(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10분께였다. 이육사문학관은 <광야> <꽃> <교목> <청포도> <절정> 등 강인하면서도 목가적인 필치로 민족 의지를 노래한 이육사 시인의 시 정신과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04년에 문을 열었다.

앎과 행동이 일치한 시인 이육사의 삶

 
▲ 이육사 시인의 친필 (시 '바다의 마음' 전부).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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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민족의 양심을 끝까지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 이육사(李陸史). 시인이기 이전에 조국과 민족을 뜨겁게 사랑한 독립 운동가였던 그는 경북 안동 사람으로 본이름은 원록(源祿)이다. 아호인 육사(陸史)는 1927년에 조선은행 대구지점으로 신문지에 쌓인 폭탄을 배달 시킨 장진홍 의사 의거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서 1년 7개월 동안 첫 옥고를 치렀을 때 수인 번호 264에서 따온 것이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이육사의 '절정' 전부

폐결핵에 걸려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으로 매서운 감방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1944년 1월 16일에 북경 주재 일본영사관 감옥서 마흔 나이로 순국하기까지 그는 열일곱 차례나 투옥되었다. 그러나 인생의 많은 세월을 모진 고문과 수형 생활에 시달리면서도 조국 광복에 대한 신념을 그는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한마디로 앎과 삶이 일치했던 시인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이다. 정말이지, 그 시기에 일제에 꺾여 변절한 친일파 문인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 경북 안동시 이육사문학관 내부.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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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육사 시인의 따님, 이옥비 여사.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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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바라던 조국 광복을 못 보고 가야만 하는 울분 때문인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그는 눈을 감지 못했다고 한다. 어쩌면 헌병대에 체포되어 북경으로 압송될 때 포승에 묶인 채 어렵사리 만져 본, 세 살밖에 안 된 어린 딸의 고사리 같은 손도 눈앞에 아른거렸는지 모른다. 어렴풋이 아이보리 양복을 입은 멋쟁이로 아버지를 기억하는 이옥비(68) 여사가 그때 그 세 살 먹은 어린 딸로 현재 이육사문학관의 상임이사로 근무하고 있다.

 
▲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이육사문학관에서.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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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육사는 그녀의 백일에 남을 배려하면서 욕심 버리고 살라는 뜻을 담아 기름질 옥(沃)에 아닐 비(非)라는 이름을 손수 지어 주었다 한다. 어린 딸에게 선사한 그 이름에서도 이육사의 곧은 삶이 드러나는 것 같다. 온몸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던 이육사 시인. 그는 진정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의 모습으로 우리 마음속에 오래도록 살아 있으리라.

은은한 선비 정신이 배어 있는 도산서원으로

 
▲ 도산서원으로 걸어가는 마산제일여자중학교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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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육사문학관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산서원(사적 제170호,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으로 향했다. 퇴계 이황 선생이 조선 명종 16년(1561)에 도산서당을 지어 유생을 가르치며 학문을 쌓던 곳에 그가 죽은 지 4년이 지난 조선 선조 7년(1574)에 그의 학덕을 기리는 문인(門人)과 유림이 중심이 되어 세운 서원이 도산서원이다. 이듬해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면서 영남 유림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고, 대원군 서원 철폐 당시에도 철폐를 면했다.

퇴계 선생이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도산서당은 그가 4년에 걸쳐 지은 건물로 거처하던 방을 완락재라 하고 마루는 암서헌이라 불렀다. 도산서원의 건축물은 전체적으로 검소하고 간결하게 꾸며져 있는데, 특히 도산서당은 엄동설한에도 은은한 향기를 뿜으며 피어나는 매화를 몹시 사랑했던 그의 선비 정신이 느껴지는 곳이다.

 
▲ (사진 왼쪽) 명필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 현판. (오른쪽) 퇴계 이황이 쓴 광명실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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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해를 방지하기 위해 누각식으로 지어진 광명실은 동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광명(光明)은 '많은 책이 서광을 비추어 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
▲ 도산서원을 둘러보는 학생들. 책을 보관하던 서고인 광명실(光明室)이 보인다. 습해를 방지하기 위해 누각식으로 지어진 광명실은 동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광명(光明)은 '많은 책이 서광을 비추어 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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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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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가 함께 모여 학문을 강론하던 강당(講堂)인 전교당(보물 제210호) 또한 매우 간소한 구조였다. 그곳에서 선조 임금이 이름을 내린 '도산서원' 현판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내 어릴 적에 전설적 인물로 여겼던 명필 한석봉의 글씨를 직접 보게 되어 신기했다. 글 공부를 하고 돌아온 한석봉에게 그의 어머니가 불을 끄고 "난 떡을 썰테니 넌 글을 쓰거라" 했던 유명한 일화가 떠올라 즐거웠다.

퇴계 선생의 친필 현판이 걸린 곳도 있다. 책을 보관하던 서고인 광명실로 습해를 막기 위해 누각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그가 과거에 급제했을 때 그의 뜻이 높고 깨끗하여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일찍이 안 어머니가 "너의 벼슬은 한 고을 현감직이 마땅하니 높은 관리가 되지 마라. 세상이 너를 용납하지 아니할까 두렵다"고 했던 말을 늙어서까지 잊지 않고 따르고자 했다는 이야기에서도 그가 존경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마을 이름이 하회(河回)인 이유는?

산수가 좋은 곳에 위치한 도산서원을 뒤로하고 우리는 안동 간고등어를 맛볼 수 있는 음식점에 들러 맛있는 점심을 했다. 그런데 그것도 세대 차이인지 모를 일이지만 학생들이 간고등어를 많이 남겨 아까웠다.

 
▲ 서애 류성룡의 덕을 기리어 지었다는 충효당(보물 제414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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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에서 나와 우리는 풍산 류씨가 600여 년 동안 대대로 살아온 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제122호,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을 이름이 왜 하회(河回)일까. 낙동강이 소위 'S' 자 모양으로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은 양진당(보물 제306호), 충효당(보물 제414호), 북촌댁(중요민속자료 제84호), 남촌댁(중요민속자료 제90호) 등 많은 건축물이 조선 시대 사대부 집안의 생활상과 집 구조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강이 마을을 휘감고 흐르는 형태가 더욱 매력적으로 와 닿았다.

정남향이나 동남향을 선호하는 일반적인 집들과 달리 하회마을 집들은 마을 정중앙에 위치한, 수령이 600여 년 된 느티나무인 삼신당 신목을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어 집터 방향이 일정하지 않는 것도 재미있었다. 양진당은 공사중이라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서애 류성룡의 후손과 문하생들이 그의 덕을 기리며 지은 가옥으로 알려진 충효당에 들러 구경했다.

조선 선조 6년(1573), 부친상을 당한 류성룡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와 '원지정사'를 지었다.
▲ '원지정사'에서 나오는 길에. 만송정 숲(천연기념물 제473호)도 보인다. 조선 선조 6년(1573), 부친상을 당한 류성룡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와 '원지정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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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전쟁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힘썼던 서애 류성룡 선생도 퇴계 선생의 문하생이지 않나. 그가 쓴 <징비록(국보 제132호)> 또한 임진왜란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우리 학생들은 이번 안동 여행에서 과연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웠을까. 톡톡 튀는 그들의 일상에서 적잖은 변화가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서울→중부고속도로→호법 I.C→영동고속도로→만종 I.C →중앙고속도로→서안동 I.C →안동시내 →(봉화 방면) 35번 국도→도산면 사무소 앞 우회전→이육사문학관 ☎(054)840-6593
*안동 시내→(봉화 방면) 35번 국도→(약 27km)도산서원 ☎(054)856-1073
*안동 시내→(예천 방면) 34번 국도 약 20km(풍산)→(풍천 구담 방면) 지방도로 916번 4km→풍천중리삼거리→하회마을 ☎(054)854-3669



태그:#이육사문학관, #도산서원, #하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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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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