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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신인 케피소스와 님프인 리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나르키소스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 의해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졌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면 오래 살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파멸을 면치 못 할 것이로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이 말을 누구도 알아듣지 못했다.

 

세월은 흘렀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란 나르키소스는 수많은 여인들과 님프들, 때로는 남자들과 신들에게까지도 사랑의 구원을 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그는 이 모든 사랑을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그를 연모한 님프 중에 숲과 언덕을 넘나들며 사냥을 즐기던 아름다운 님프 에코도 있었다. 그녀는 수다 떨기를 좋아하여 누구든 붙잡고 끝까지 지껄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 날, 신들의 아버지인 제우스가 바람을 피우다 도망가게 되었고 그는 에코에게 헤라를 만나거든 얼마간 시간을 벌어주기를 부탁했다.

 

그가 부탁을 하고 달아나기 무섭게 과연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헤라가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제우스의 행방을 물었고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만 한 참을 지껄이게 되었다. 그녀의 수다를 얼마간 듣고 있던 헤라는 그녀 때문에 제우스를 놓친 것을 깨닫고는 더욱 화가 솟구치게 되었다.

 

"이런 괘씸한 것을 보았는가, 내가 너의 수다나 듣자고 했느냐? 앞으로 너는 먼저 말을 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상대가 한 말을 되받아 마지막 말만을 되풀이 할 지어다."

 

 순간 그녀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누군가 먼저 말을 해야만 그 말을 받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헤라로부터 이런 벌을 받은 그녀는 나르키소스를 보는 순간 그만 단 번에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한 마디도 건넬 수가 없었다.

 

 나르키소스가 친구들과 사냥을 갔을 때, 그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그는 두려움에 소리를 질렀고 에코는 그에 답하며 그의 앞으로 뛰쳐나갔다. 깜짝 놀란 나르키소스는 더욱 두려움에 휩싸여 그녀에게서 도망치고 말았다.

 

 그녀는 사랑을 전할 수 없었고 실의와 절망에 빠져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실의와 절망은 분노로 바뀌고 말았다. 자신의 사랑을 무시하는 나르키소스에 대한 복수를 염원한 것이다. 그녀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간절히 기원했다.

 

 “저 무정한 인간에게 나와 똑 같은 고통을 던져 주소서. 사랑이 무엇인지, 또 애정의 보답을 받지 못한 자의 고통이 무엇인지 처절하게 깨닫게 해주소서.”

 

 그녀는 이렇게 기원했고 절망과 비탄에 휩싸인 채 서서히 여위어갔다. 그리고는 급기야 형체마저 사라지고 메아리만 남게 되었다. 

 

 그녀의 간절한 염원은 네메시스의 가슴을 울렸고 그녀의 원을 들어주기에 이르렀다.

 

 헬리콘 산으로 사냥을 나갔던 나르키소스는 타오르는 갈증을 달래기 위해 몸을 구부려 맑은 샘물에 얼굴을 디밀었다. 순간 맑은 샘물 속에서 바라보고 있는 샘물의 님프를 보게 되었다. 그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황홀한 상대의 얼굴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한참을 바라보던 그는 입을 열어 말했다.

 

 “오! 아름다운 님프여, 그대의 거처에서 나와 그만 나의 애타는 마음을 달래주오.”

 

 나르키소스는 손을 들어 그를 잡으려 했다. 순간 맑은 물은 파문으로 일그러지고 님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럴 수가.......”

 

 안타까움에 나르키소스는 어쩔 줄을 몰랐다. 허탈한 눈으로 멍하니 흔들리는 샘물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렇게 멍한 시선으로 얼마간 샘물을 바라보고 있자 다시금 흔들리던 샘물이 고요해지며 아름다운 님프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자 나르키소스는 놓치지 않으려는 듯 세심히 그를 살폈다.

 

 그는 빛나는 두 눈과 아폴론의 머리카락과 같은 곱슬머리, 둥글면서도 갸름한 얼굴에 상아빛으로 빛나는 목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붉게 갈라진 입술은 그의 가슴을 더욱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그만 고개를 숙여 그의 붉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금 사라졌고 흔들리는 물결만이 요란하게 남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다시 나타났다.

 

 애가 탄 나르키소스는 모든 것을 잊은 채 물 속의 님프만을 생각했다. 먹고 마시는 것은 물론 집으로 돌아갈 일마저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샘 곁을 떠날 수 없었고 서성이며 자신의 그림자만을 바라보았다.

 

 물 속의 아름다운 님프에게 아무리 말을 걸어도 그는 어떠한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초췌해진 채 야위어 갔으며 아름다운 모습도 점차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가슴을 태우다 죽고 말았다.

 

카론의 배를 타고 저승의 강물인 스틱스의 강을 건널 때조차도 그는 자신의 모습만을 바라보았다.

 

 님프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시신을 찾으려 애썼으나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흰 꽃잎에 자줏빛이 들어가 있는 꽃 한 송이를 찾아냈는데 그들은 그 꽃을 나르키소스라 불렀다. 자기애(自己愛)를 뜻하는 수선화였다.

 

 자신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결국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었던 것이다. 나르키소스가 타인에 대한 약간의 배려와 아량을 베풀 수 있었다면 그렇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이미 그렇게 결정되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테이레시아스가 예언을 던졌던 것처럼.......        

 

 


태그:#표윤명, #욕망, #신화, #나르키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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