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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표지. 대부분 일본소설이 한국판으로 발간될때 표지가 새롭게 디자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내남자>는 일본판과 한국판 표지가 똑같다. 작가역시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판을 소개하면서 일본판과 표지가 똑같은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내 남자>의 표지. 대부분 일본소설이 한국판으로 발간될때 표지가 새롭게 디자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내남자>는 일본판과 한국판 표지가 똑같다. 작가역시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판을 소개하면서 일본판과 표지가 똑같은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도서출판 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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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사쿠라바 가즈키는 이 작품 <내 남자>를 집필하는 동안 '며칠째 밥을 먹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며칠째 밥을 먹지 못할 정도야 아닐테지만 독자 역시 편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제138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내 남자>. 의붓아버지와 딸의 금기된 사랑을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 수상 당시부터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은 작품이다.

이에 대해 작가 사쿠라바 가즈키는 국내 어느 일간지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누구나 칭찬하거나 모두가 싫어하는 소설은 문학적으로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평과 찬사를 함께 들으며 상을 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우선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한다.

훗카이도 몸베쓰 지방 해양경찰 '준고'는 지진으로 인해 고아가 된 먼 친척뻘 되는 소녀 '하나'를 거둔다. 열여섯살 차이가 나는 그들은 부녀라기보다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오누이지간 같지만 서로를 처음 보는 그 순간부터 묘하게 자석처럼 끌려 친 가족 이상으로 친밀함과 유대감을 나누며 살게 된다.

그 둘을 탯줄처럼 엮어놓고 있는 고독과 외로움, 극단적인 허무함은 상대방을 향한 처절한 욕망으로 변하게 되고 이 두사람은 집 밖에서는 엄연한 부녀관계를 유지하지만 집안에서는 세상에서 절대 하나밖에 없는 연인이자 욕망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사건은 둘 사이의 관계를 알아버린 동네의 한 노인을 '하나'가 죽이게 된 후부터 시작한다. 그 후 이 두사람은 그들 삶의 태반(胎盤)이랄 수 있는 훗카이도의 몸베쓰를 떠나 도쿄로 야반도주를 한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이 비밀을 알고  있는 또 한명의 입을 막기 위해 준고는 또 다시 살인을 저지르고 둘은 철저한 공범이 되어버린다.

'짐승'같은 소설... 싫을 순 있지만 과연 나쁠까?  

이제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고, 돌이킬래야 돌이킬 수도 없는 두 사람. 치명적인 죄를 범함으로써 공범이 되어버린 두 사람은 세상과 담을 쌓은 채 둘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고독하고 허무할수록 그만큼 더욱 지독하고 끈끈한 욕망으로 서로를 옭아맨다. 그러는 동안 준고는 망가져가고 하나는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사랑을 동경하게 된다.

의붓아버지와 딸의 끈적끈적하고 말랑말랑한 소설을 기대했던 독자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럽다. 책읽는 것이 고통스럽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감추어진 인간의 동물적인 본능과 이기심, 잔인함이 이 안에는 꿈틀거리고 있다. 한 마디로 '짐승같은' 이야기다.

'짐승'이라 하면 대부분 패륜적인 존재를 떠올리겠지만 한편으로는 온갖 인위적인 윤리와 도덕, 규범, 기준, 체면을 다 벗어던지고 순수한 알몸 그대로 만나는 야성적인 존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짧은 한줄 촌평 '짐승같은 이야기'라는 표현은 당연히 후자를 가리킨다. 

작품성 있다 vs 질 나쁘다 .... 당신은 어느 쪽?

실제로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이 책의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물었다. 물론 대다수는 눈살을 찌푸렸고 놀라워했다.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했고 '미친 소리'라고 하기도 했다. 어디서 질이 나쁜 소설을 읽고 다니느냐는 말도 들었다. 혹은 '완전 불온소설'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나는 나의 이야기전달 방식이 편협된 것은 아닌가 싶어서 작가의 의도와 내 느낀 바를 함께 이야기 했지만 그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정확한 통계를 내본 것은 아니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쪽이 대략 99%쯤 됐다. 아무리 의붓아버지라지만 '윤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말도 안되는 작품이라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견해였다.(직접 작품을 읽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러기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과연 '말도 안되는 작품', 싫을 수는 있지만 과연 질이 나쁜 소설이 될 수 있을까?

작품을 읽는 내내 나 역시 불편했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강했지만 책을 읽을수록 준고와 하나라는 개인적 내면의 우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었고 공감할 수 있었다. 소설의 형식이 현재에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취한 것도 아마 그런 효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이것은 이창동감독의 <박하사탕>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했다.)

그 두 사람이 그렇게 서로를 옭아맬 수 밖에 없었던 그 처참함과 고독, 외로움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그 사람 마음 속에 의문부호 하나는 남겨둘 수 있다는데 이 책의 의미가 있을 거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당분간 한국 독자들에게 매우 불편한 소설이 될 것 같다. 왜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일간의 서로 다른 전통적인 윤리관과 가족관도 한몫한다.  그것은 마치 한일축구전에서 유독 거세게 타오르는 투지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고 미묘한 것이랄 수밖에 없다. 

말많고 탈많을 문제적 소설 '내 남자'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영역표시를 할 수 있다면 과연 그 영역은 어디까지 그을 수 있을 것인가. 사랑 앞에 윤리는 어떤 존재이고 도덕은 무엇일까. 그리고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의 고독은 어떻게 치유받을 수 있나.

그리고 문학이 표현할 수 있는 윤리적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흔히 하는 말로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차이는 보다 많은 담론과 고민이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이들 문제에 정답은 없다. 물론 오엑스 퀴즈는 더더욱 아니다.

이런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를 떡 하니 던져놓은 채 이 소설은 과거에, 준고와 하나가 처음 만나던 그 순간에서 끝을 내린다. 이 문제적 소설은 사랑과 윤리에 관한 갖가지 문제를 던져놓았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대단히 말 많은 문제작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재인(2008)


태그:#내 남자, #사쿠라바 가즈키, #일본소설, #나오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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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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