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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행복이나 고통만으로 설명이 다 안 되지요. 그렇다고 돈에게 그 자리를 내줄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누군가 인생살이를 알기 쉽게 풀어주면 좋겠지만 저들도 살기 버거운 건 마찬가지죠. 삶에는 사람의 머리로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 틈이 있지요. 그 틈은 말로는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죠.

 

메워지지 않는 그 틈으로 바람이 불어와 때론 삶을 흔들고 허무하게도 하지요.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에게 그 틈은 발바닥부터 간질이는 뜨거운 유혹이지요. 그 틈을 느끼러 두 젊은이가 떠났네요. 동경으로 떠난 김경주 시인과 문동섭 감독은 <레인보우 동경>[2008. 넥서스BOOKS]에서 자신들의 틈들에 대해 얘기하네요.

 

서른 그 틈에 대하여

 

이 책은 그들이 틈나는 대로 여행하면서 보았던 틈들이에요. 또한 동경 곳곳에 숨어있는 틈들을 돌아보면서 지은이들이 꺼내놓은 틈에 관한 책이에요. 지은이 둘은 28년 동안 같이 붙어 다녔던 벗이지요. 자신들은 33이고 아직 삼삼하다면서도 서른의 틈을 드러내네요.

 

시인은 선배들에게 아무 때나 전화해서 이생이 불편하다고 쓰나미처럼 욕설을 퍼부어대죠. ‘낭만이란 그런 것이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이라는 구절로 시를 완성한 뒤 공원에 가서 질질 짰다고 고백하는 그의 모습에서 서른의 틈이 느껴지네요. 서른은 낭만 있는 불편과 재미없는 편함을 고르는 나이니까요. 

 

이 사회에서 서른은 삶의 틈들을 덮어둬야 하는 시기죠. 20대에 꿈과 포부를 같이 얘기하던 사람들도 서른이 되면 이제 철 좀 들으라는 눈빛으로 바라보죠. 많은 청춘들이 서른이란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뜨거운 사랑과 설레는 꿈을 헐값에 넘기고 안정을 택하기 쉽지요. 가슴 안에 편지를 고이 묻어두고 언젠가 다시 꺼내봐야지 다짐하죠. 그러나 알고 있지요. 삶은 틈 사이로 빠르게 새고 있다는 걸.

 

서른이 되었는데 졸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가수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에서 푸르렀던 기상이 시들해지며 쓸쓸함을 알아가는 서른을 노래했지요. 지은이들 역시 20대 때는 이 삶을 달렸지만 ‘서른 살은 차의 종류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도로가 뭔지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며 서른을 돌아보네요. 그리고 전진하다보면 반드시 하게 되는 후진도 알게 되었다고 말하네요.

 

‘안녕. 우리는 지하철 옆구리에 앉아 덜컹덜컹 졸면서 어깨를 한 번씩 빌려주었을지도 모르는 사이지. 우연히 옆자리에 나란히 졸면서 말이야’라며 지은이들은 피로한 일상을 이해하죠. 자신들 역시 안정된 직장도 가져봤고 남들처럼 살려고도 했으나 삶에 틈을 못 본 척할 수 없었지요. 한 사람은 시로, 한 사람은 영화로 틈을 느끼려고 하네요.

 

늦은 저녁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나는 문득 내 인생이 30개의 정거장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호기로 스물엔 친구들 앞에서 서른이 되면 정말이지 죽어 버릴거야라고 했지만 서른이 되었는데 졸면서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졸면서 삶이 지나가 버릴까 나는 눈이 번쩍 떠졌다.

 

아름다운 포토에세이

 

젊은 유명 시인이 쓴 글답게 읽는 이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네요. 그의 흘러넘치는 감성은 글에 머무르지 않고 읽는 사람들의 틈에 쏟아지지요. 동경의 사진들과 함께 눈으로 들어온 글들은 입에서 맴돌며 떠날 줄 모르지요. 4박 5일 동안 사랑하는 사람과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 온 뒤 ‘사랑이란 기차를 타고 달려와서 이렇게 불꽃놀이를 몰래 하다가는 거구나’라며 시간의 틈에 끼여 있는 추억을 들추네요.

 

이 책은 칼럼집도 아니고 여행기도 아니에요. 장르를 굳이 따지지 않고 읽다보면 독특하게 사물에게 말을 거는 두 지은이를 만날 수 있죠.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세상과 독자들의 틈을 건드리는 시인의 글에 숨죽여있던 감수성들이 깨어나죠. ‘사람이 욕조 안으로 들어가면 그는 섬이 된다. 난 여전히 이런 꿈을 자주 꾸곤해. 욕조를 바다 위에 둥둥 띄워두고 세상 끝까지 떠내려가는 꿈을’이라는 문구를 읽으면 욕조와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정도로.

 

소설가 박민규는 이 책을 아래처럼 칭찬하네요.

 

정말이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드물지만 세상엔 그런 류의 책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가능하다면 나는 이 세계의 극.소.수만이 그녀의 책을 읽었으면 하는 입장이다. 아니 실은, 누구도 모르게 오직 나만이 ‘그녀’를 읽고 싶은 마음이다.

 

많은 예술인들이 그렇듯 그들 역시 가난을 벗삼아 지내왔지요. 그들이 조금씩 이름을 얻고 이제 제법 유명해졌다지만 그들은 여전히 배고픔을 잊지 않고 달려가고 있지요. 그렇기에 그들은 늘 삶의 틈들을 느끼며 놓치지 않네요. 비가 내려 촉촉해진 하늘과 갠 하늘 틈으로 무지개가 생겨나듯이 책을 읽으니 틈 사이로 무지개를 피어내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드네요.


레인보우 동경 - 김경주 시인, 문봉섭 감독의 도쿄 에세이

김경주.문봉섭 지음, 넥서스(2008)


태그:#김경주, #레인보우동경, #틈, #도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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