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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버스로 8시간 정도 떨어진 와라스(Huaraz) 일대는 안데스 산맥의 심장부입니다. 이곳은 해발 6-7천m에 육박하는 고산들이 곳곳에 솟아 있고, 페루 고대 문명을 엿볼 수 있는 문화유산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서, 전 세계에서 고산 트레킹을 하러 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지구 반대편, 우리나라 사람 얼굴이나 한 번 구경할까 싶지만, 그곳엔 안데스의 높푸른 하늘만큼이나 고고하고 아름다운 이상을 실천하고 있는 대한민국 청년이 있습니다. 한국해외봉사단원으로 일하고 있는 문현정씨입니다.

문씨는 와라스에선 그리 높다고 할 수 없는 해발 3천미터 지역에 위치한 병원에서 2007년부터 간호사로 봉사활동하고 있습니다. 병원은 와라스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한적한 곳이라 환자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씨는 인근 토클라(Toclla) 초등학교에서 시간을 내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고 하지만, 사서 고생하는 셈입니다.

선생님이 만든 교재로 공부하다보니 실력이 쑥쑥
▲ 즐거운 영어 시간 선생님이 만든 교재로 공부하다보니 실력이 쑥쑥
ⓒ 문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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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유치원생 포함 총 60여명의 학생과 일곱 분의 선생님까지 해 봐야 백 명도 되지 않는 작은 학교입니다. 학교 건물은 동네 주민들이 힘을 모아 지어준 건물로 학교라 하기엔 환경이 참 많이 열악합니다.

문씨는 이 학교에서 또 다른 봉사단원이 매주 두 번씩 컴퓨터 수업을 하기 시작하며 알게 된 교장선생님의 요청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간호사로 일하던 사람이 교재나 수업자료 등을 학교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고 시작하려니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와라스에선 높다고 하지 않지만,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뛰어놀다보면 어지럼증을 느낄 때도 있고, 얇은 공책 하나 장만하는 것조차 어려운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마냥 가슴이 짠해진다고 합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잔잔한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해 주는 사건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문씨의 열정어린 가르침이 결실을 맺었는지,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해서였는지, 인근 사립초등학교 학생들보다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중 5, 6학년 학생들이 특히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데, 얼마 전 실시한 영어 시험이나 학년 시험에선 선생님들도 놀랄 만큼 탁월한 발전을 보인 아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커서 사회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크리스띠안이었습니다.

크리스띠안은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엄마가 임신했을 때, 가출을 했고 지금은 다른 도시에서 또 다른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크리스띠안은 구김살 없이 잘 자라줬습니다.

크리스띠안의 장족의 발전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사립학교 학생들보다 성적이 좋았다는 소문에 아이들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가난하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자신감 말입니다.

페루는 고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라서 학비는 무료지만, 과외로 드는 교복, 교재 구입비 등이 없어 학교를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학구열이 있는 아이들은 그나마 비용이 덜 드는 고산 지대의 아주 작은 학교에라도 진학하여 학업을 이어간다고 합니다. 크리스띠안은 아마 고산 지대의 그런 학교로 진학할 것입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크리스띠안과 친구들
▲ 슛! 제법이군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크리스띠안과 친구들
ⓒ 문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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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씨는 요즘 숨쉬기조차 힘든 고산지대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희망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보려고 크리스띠안을 위한 장학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똘똘이 크리스띠안이 선생님이 되어 이곳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는 모습을 그리며 간호사 문현정씨는 오늘도 영어 선생님 노릇을 기꺼이 하고 있습니다.


태그:#한국해외봉사단, #페루, #와라스, #장학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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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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