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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문제인가, 아니면 방향이 문제인가? 아니면 둘 다 문제인가?

 

<조선일보> 논설진을 이끌고 있는 강천석 주필과 송희영 논설실장의 경제 관련 칼럼들은 최근 경제 위기 사태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들이 많다. 강 주필과 송 실장의 칼럼 자체가 직접적으로 그런 문제를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 두 논객의 칼럼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들게 된다.

 

강천석 주필과 송희영 논설실장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당선됐을 때부터 대운하로 대표되는 이른바 '삽질경제'는 한국경제의 방향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대운하 정책을 일단 접을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조선일보>를 필두로 <중앙일보> 등 보수언론들마저 대운하 정책에 등을 돌렸던 것이 아무래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문제에 강한 <조선> 대표논객 강천석·송희영

 

강천석·송희영은 과거 <조선일보> 논설진을 대표했던 김대중·류근일과는 달리 정치적인 쟁점보다는 경제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주필과 논설실장이 경제 문제에 강점을 갖고 있는 점이 <조선일보> 논설진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라 할 만하다. 세계금융시장의 흐름 등에 대해 비교적 정통하고, 그 맥락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데 있어서도 나름대로 일관성을 갖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후는 물론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조선일보>가 여론 주도층에 정치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주요 배경이 되고 있는 것도 이들 두 논객의 힘이 크다. 경제가 곧 정치인 현실에서 이 두 논객은 <조선일보>의 새로운 '정치파워'의 밑천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일보> 두 대표 논객은 기명 칼럼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퇴진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 다만 이명박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문제를 제기해왔다. 송희영 논설실장은 세계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인 7월 12일자 기명칼럼(''운7복3'의 한국경제')에서 경제위기에 대한 예감을 전하면서 "이명박 정권의 경제 교과서부터가 갈기갈기 찢겨져 버렸"으며 "경제 정책 지휘탑의 신용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면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비상경제대책기구를 제안한 바 있다. 강만수 경제팀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강천석 주필은 10월 30일자 기명칼럼('국민을 바보 웃음거리로 만들지 말라')에서 더 직설적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장관의 갈팡질팡 리더십을 문제삼았다. 1980년 미 대선 당시 "지미 카터(미 대통령)가 자기 일자리를 잃어야만 (경기회복이) 시작될 것"이라는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의 선동연설이 먹혀들었던 것 같은 비슷한 상황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과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등 경제 "사령탑에서 입을 열었다 하면 어기대기나 하듯 정반대 방향으로 내달려 가는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들면서 "선장과 항해사와 기관사가 물새는 구멍은 다 막았다는데 물은 도리어 발목에서 무릎으로 차오르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했다.

 

강천석 주필은 이 칼럼에서 미국 경제사령탑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위기관리 능력을 보이고 있다고 높게 평가하고, 이 정부는 "까닭도 모른 채 뭇매를 맞는 대한민국 국민이 바보처럼 거푸 책임을 둘러쓰도록 해선 안된다"고 주문했다. "그것은 국민에 대한 대죄"라고도 했다. 이명박 정부와 그 경제팀이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미국 경제사령탑처럼 해보라는 이야기다.

 

<조선일보> 두 논객의 이런 지적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는 물론이고 <중앙일보> 같은 경우도 최근 강 장관의 퇴진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설 정도다. 강 장관을 감싸고도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문제 제기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강만수 경제팀의 문제로는 세계 금융위기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시의적절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으며, 환율 정책 등에서도 안이한 상황 판단과 구시대적인 '관치 행태'로, 위기 상황을 수습하기는커녕 되레 더 악화시켰다는 점들이 지적된다. 대다수 언론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이며, 강천석·송희영 두 논객의 지적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두 논객의 글에서는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적인 금융시스템과 미국식 시장 자본주의에 일대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진단이 엿보이는 점이 다른 보수 신문들 자사 논객들의 칼럼과는 차이를 보인다.

 

가령 송희영 논설실장은 10월 11일자 칼럼('금융쇼크에서 해방되는 날은 언제쯤일까')에서 세계 경제(금융)위기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면서 "이번 쇼크는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고, 설혹 이르면 내년 여름 이후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시대의 물줄기가 바뀔 수 있는 보다 큰 파동이 세계 경제 밑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송 실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갈 길은 "개방과 자유화,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가는 것이라고 결론을 냈지만, 어쨌든 세계 자본주의와 시장주의의 질서가 재편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강천석 주필도 10월 3일자 칼럼('그 많던 경제학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미증유의 세계적 금융위기가 촉발할 앞으로의 세계 질서와 경제 질서 재편의 전망을 하기가 쉽지 않은 데 대한 곤혹스러움을 한국 경제학자들의 역할론에 빗대어 간접적으로 토로했다.

 

강 주필은 "미국 금융위기는 그(월스트리트 교과서를) 찍어내던 출판사가 부도를 내고 쓰러진 꼴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이제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부족하더라도 우리 머리로 새 교과서를 엮어내고, 그걸 해도 삼아 난바다의 거친 물살을 가르고 나가보는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이런 때 나름대로 경제적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할 방안과 방향을 제시해야 할 주류 경제학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이자 힐책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세계 경제 시스템과 질서의 변화를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에 대한 나름의 답답한 심사의 토로일 수도 있겠다.

 

'리·만브러더스'의 근본 문제에 대해선 어정쩡

 

하지만 여기까지다. 세계 질서의 변화 가능성에 주목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대응이 어떠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시장에서 이른바 '리·만브러더스'가 좀처럼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그 대책은 무엇인지에 대한 <조선일보>의 어정쩡한 태도로 이어지고 있다. 강만수 경제팀의 정책 방향은 기본적으로 맞는데, 타이밍이나 정책 수단의 동원 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강만수 경제팀의 대응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고 판단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둘 모두 문제라고 보고 있는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사실 조중동은 지금까지 개방과 규제완화 등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교과서'로 삼아 왔다. 기본적인 정책 방향에서 리·만브러더스와 다를 바 없다. 이들 신문들은 강만수 경제팀의 위기관리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그 기본적인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동조하고 있다. 따라서 강만수 경제팀에 대한 비판 역시 국지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같은 경우는 리·만브라더스의 위기 관리 능력도 문제지만, 그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는 시각이다. 유럽은 물론이고 하물며 미국 내에서도 미국발 금융위기의 뿌리는 바로 과도한 규제완화와 무책임한 시장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자성이 일고 있는 마당에 리·만브라더스는 세계적인 자성 움직임과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있는 것이 바로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통해 경기 부양을 꾀하려 하는 대폭적인 부동산 투기 규제의 철폐 등 각종 규제완화와 감세 정책이다.

 

세계적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의 방향에서 결과적으로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세계적 추세에 부응하고 있는 반면, 조중동은 되레 역행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30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랜만에 웃었다. 3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소식과 함께 증시가 반등하고 원달러 환율은 큰 폭으로 내렸다. 강 장관의 얼굴이 모처럼 펴진 이유다. 그럴 만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강 장관을 직접 지칭하면서 "잘한 것 같다"고 칭찬까지 했다고 한다. 전방위적인 퇴진 압력에 시달리던 강 장관으로서는 비상구를 찾은 듯 싶다. 강 장관 퇴진론도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강 장관의 퇴진을 강도높게 촉구했던 <중앙일보> 같은 경우도 태도가 확 바뀌었다.

 

하지만,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이 얼마나 약효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조중동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최근의 원-달러 환율 급등이나 주식시장의 폭락의 주된 요인이 세계금융위기의 여파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또 국내 은행의 과도한 외화 차입과 부동산 담보 대출의 부실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등 국내 불안요인 역시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상황은 무척이나 가변적이다.

 

게다가 한미통화스와프협정을 놓고 마치 결정적인 해결책을 내놓은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정부의 경망스런 태도나 공 다툼까지 벌이는 볼썽사나운 모습 등을 볼 때 과연 리·만브라더스가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리·만브라더스가 추구하고 있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이나 대폭적인 규제완화 조치들은 세계적인 흐름과도 역행하는 것이다. 시장의 반응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더불어 세계 경제의 흐름에 나름대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조선일보> 두 대표 논객이 <조선일보>의 논조를 어떻게 이끌어갈지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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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금융위기, #강천석, #송희영, #한미통화스와프협정,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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