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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이 좋다. 그래서 푸근한 늪의 정경에 반한 사람이 많다. 자칭 '우미인'(우포에 미친 사람)들이다. 지역출신으로 배한봉, 송미령 시인을 꼽을 수 있겠다. 송 시인의 애칭은 '우미녀'다. 근데, 요즘 배한봉 시인은 때늦은 공부를 한다고 서울에 있다. 임신행 선생님도 자주 발품을 팔고 있다.

 

그리고 소벌출신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늪에 관한 탄실한 견해를 담은 <습지와 인간>을 출간했다. 이 책은 인문과 역사로 경남의 습지를 탄실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다들 우포늪 지킴이를 자처하는 이들이다.

 

우포늪에 반한 사람들이 많다

 

우포는 아름답다. 우포의 사계는 말로 이루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만큼 쏙 맘에 든다는 얘기다. 필자도 창녕에 터 잡아 사는 까닭에 무시로 우포에 드나든다. 행복한 것은 그때마다 만나는 '우포늪의 생태'가 다 다르게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철마다 늪지를 가득 채우는 철새 떼는 물론, 텃새도 언제 만나도 반갑다.

 

우포늪에서는 노랑부리저어새와 삵, 가시연꽃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이 발견되어서 더욱 애틋하다. 이미 생태복원을 시작한 '따오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포늪에는 매자기, 통발, 물억새 등 344종과 큰고니, 흰뼘검둥오리 같은 조류 76종 등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 터 잡고 사는 이가 있다. 서양화가 장석호 화백이다. 람사르 총회 열기로 한창 들뜬 29일 오후, 우포늪을 찾았다가 장 화백을 만났다. 우포생태학습관 들머리 잔디밭에다 조촐하게 화실을 차려두고 관람객을 만나고 있었다.

 

우포늪 터 잡이 화가 장석호 화백

 

 

그는 우포가 좋아서, 우포에 반해서 지난 1년 동안 우포늪만 그렸다고 한다. 이번에 '우포늪의 생명'이란 주제로 10여 점의 작품을 람사르 총회 개최기념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회라면 마땅히 전시 공간을 따로 마련했을 텐데도 장 화백은 굳이 형식의 틀을 벗어났다고 한다. 잔디밭 위에다 이젤만 세우고 그냥 전시해 뒀다. 소탈한 성격 그대로다.

 

"우포늪을 만나기 위해서는 굳이 막힌 공간을 찾을 까닭이 없어. 왜냐? 우포늪 자체가 자연이고, 그대로 놓여난 곳이기 때문이지. 지난해 작품 할 데를 찾다가, 문득 발길 우포늪에 닿았는데, 무심결에 만난 우포늪, 하도 좋아서 지금까지 떠나지 못했어. 그만큼 우포늪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거야. 우포늪 자체가 아름다움이야."

 

 

장 화백의 우포사랑은 정작 토박이인 나를 압도했다. 그는 람사르 총회 개최 기간 중에 '우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필력 하나로 우포늪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연방 관람객들에게 크로키 화법으로 우포를 그려준다. 누구에게나 무료로 선물한다. 그림은 8절 화선지에다 그렸는데, 유화가 아니다. 포스터 칼라 물감으로 단박에 그려내는 크로키. 수묵담채화다. 그림에는 국내 최대의 습지인 우포늪의 방대함이 여백미로 살아난다.

 

"처음 우포늪을 찾았을 때만해도 한산했어. 요즘처럼 사람들로 붐비지 않았어. 근데 람사르 총회 경남 개최가 확정된 이후로는 많이 달라졌지. 우포가 이제야 이름값을 하는 거지. 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어, 덕분에 '습지생태관광'도 생겨났어. 주말이면 수천 명의 관람객이 몰려 우포일대가 몸살을 앓아. 행복한 비명이겠지만, 가끔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

 

 

곁에 있던 박용헌(경남정보대학 1년) 군도 크게 공감하는 듯 일행과 함께 발걸음을 멈추고 장 화백을 에워싸고 섰다. 그들도 우포늪의 아름다움이 담긴 장 화백의 그림을 받고 싶다고 했다. 연만한 나이임에도 장 화백의 손놀림은 고만고만한 우포늪의 사계를 휘갑치게 그려냈다. 그림마다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저희는 오늘 야외강의를 받으러 왔습니다. 전공에 따른 현장체험학습입니다. 평소 우포늪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고작 인터넷이나 뉴스로 가끔 보았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직접 와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네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 탁 트입니다."

 

박용헌 군의 소감이다. 그렇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듯이 우포에 와보지 않고서는 늪이 안겨주는 1억 4천년의 안온함을 느낄 수 없다.

 

지금 우포는 몹시 분주하다. 람사르 총회 공식방문지로 지정된 탓이다. 하지만 우포늪은 그런 행사로만 만나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고적해서 자기 발자국 소리조차 들을 수 없을 만큼의 한가하게 몸으로 만나야한다. 그래야 우포늪의 참맛에 겨워볼 수 있다.

 

우포늪은 직접 몸으로 만나야

 

그렇지만 사흘 동안 행사장을 찾으면서 남은 아쉬움은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관람객들을 배려하지 않은 행사진행이다.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지나치게 빽빽하게 가져다 놓은 국화 화분이 눈에 거슬렸다. 그렇게 꾸며대고 싶은 계획이었다면 애당초 그 자리에다 심었어야 했다. 너른 잔디밭 광장에 촘촘하게 자리 잡은 국화는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옥에 티라고 할까. 곳곳에 내다놓은 토끼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울타리에 갇혀 산 까닭에 풀어놓은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빙빙 도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워보였다. 실제로 방사하여 키웠더라면 이처럼 엉거주춤한 토끼가 되지 않았을 텐데. 아무리 너른 마당에 풀어놓는다고 해도 집토끼는 산토끼가 되지 못한다. 너무 눈에 띄는 처사였다. 비단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까.

 

 

관람객들을 배려하는 행사진행이 아쉽다

 

그밖에도 호사다마(好事多魔)였던 것은 전통체험마당이나 놀이마당의 운영이 미비했다는 점이다(이는 결코 뼈 빠지게 행사를 준비하고 계획했던 분들, 자원봉사진행도우미들을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충분하게 준비를 했음에도 실질적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일 뿐이다.

 

일례로, 주말에는 당연히 모든 체험놀이마당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오늘(30일)은 평일이어서 그런지 단체로 찾는 관람객들 말고는 찾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탓이었을까. 거의 절반에 가까운 부스는 차양을 내린 채 개점휴업상태였다. 때문에 먹을거리장터만 바빴다. 이는 주객이 전도된 행사가 아닌가.

 

"난 우포늪의 참살이를 모두에게 알리는 지킴이로 살 거야.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보다 우포늪을 사랑하고, 아끼며,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유지하고 즐겼으면 해. 그 길에 다 같이 동참하고, 함께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야. 람사르 총회 방문지로만 빌미로 삼아서는 안돼."

 

땅거미가 짙어질 쯤 장 화백은 우포늪 전경을 손수 그려 내게 주었다. 우포늪의 하루가 다 담겨 있었다. 순간, 우포늪의 새떼들이 힘차게 비상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장 화백의 당부말씀이 귓가에 쟁쟁했다.         

 


태그:#우포늪, #람사르 총회, #지킴이, #호사다마, #백문불여일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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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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