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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군 법무관 7명이 국방부에서 7월에 공표한 '불온도서' 지정에 반기를 들었다 한다. 베스트셀러를 비롯해 명저자의 작품이 다수 포함된 목록이었다. '불온도서' 지정은 군인 개개인이 갖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뿐 아니라, 국민과 똑같은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평등권에도 침해된다는 게 군 법무관들이 헌법소원을 내게 된 이유다.

군대라는 시스템은 지극히 꽉 막힌 톱니바퀴들이 모여 일가를 이룬 거대한 벽이다. 수없이 두드려 봐야 소용없다. 대답 없는 메아리가 우리들의 귓가로 돌아올 뿐이다. 장병 사기와 정신 전력을 위해서란다. 지휘계통에 보고하지 않고 집단행동을 한 데에 불만이 있단다. 불순분자를 가려내겠다는 그들의 노력이 안타깝다. 암울했던 과거의 망령을 21세기에 다시 불러낸 그들의 기이한 행보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모양이다. 불온도서 지정은 비단 그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현 정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그 숱한 사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착한 사람들만 보여요

국방부 앞에서 불온서적 지정 규탄 기자회견 중인 한총련 학생들.
 국방부 앞에서 불온서적 지정 규탄 기자회견 중인 한총련 학생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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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 시절에 책 몇 권을 바리바리 챙겨간 적이 있다. 상병 계급을 달고 나서 다녀온 휴가복귀 때였다. 이문재 시인의 시집 한 권, 기억나지 않는 외국작가의 소설책, 인도여행기 그리고 영화잡지 몇 권.

작대기 두 개였을 때까지는 책을 본다는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다. 다른 곳은 어떨지 몰라도 내가 근무했던 부대에서는 그랬다. 사제비누는 상병부터, 화려한 색깔의 수건도 상병부터, 샴푸나 스킨샤워는 병장 때부터. 군대에서는 계급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이등병, 일병은 텔레비전도 들키지 않게 몰래 몰래 숨어서 봐야 했다. 병장들이 누워서 음담패설을 하는 동안, 군기반장 아래 모든 졸개들은 몸에 땀이 날 정도로 바삐 움직이며 청소를 했다. 쓸데없는 질문은 해서도 안 되었고, 무얼 물어봤는데 몰라서도 안 됐다. 일은 시키면 무조건 잘 해야 했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거절하거나 싫다는 내색은 절대 금물이었다.

상병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책을 부대로 가져갈 수 있었다. 책은 즉시 소대장의 손에 들어갔고, 그는 책들을 가지고 다시 어딘가로 갔다. 며칠 지나 돌려받은 책에는 검열에 통과했다는 도장이 찍혀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가져간 책 중에는 ‘불순분자’ 양산이 우려되거나, 불온한 사상을 담은 도서는 없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북한을 찬양하고 정부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거나, 미국과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책들 역시 없었다. 검열 대상은 비단 책뿐이 아니었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모든 물품이 그 대상이었다. 편지 역시 헌병대나 위에서 미리 검사를 하고서야 병사들에게 전달됐다.

입대 전에는 세뇌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일이등병 때는 하는 일이 많아 무언가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상병이 되고 점점 군기반장에 가까워지면 자신도 모르게 위치가 바뀌었음을 깨닫는다. 그건 소스라치게 놀라운 발견이다. 폭력과 억압의 피해자였던 자가 어느새 가해자가 되어 누군가의 목덜미를 잡는다. 모두가 공범자라는 잠재의식이 배회하는 선임병의 머리에는 그 때부터 오로지 "누구든 잘못 걸리면 죽는다"는 생각만 남게 된다. 권력에 굴복하는 법을 저절로 터득하고, 위계서열의 수직선에 매력을 느낀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게 되는 세상이치를 남자들은 군대에서 미리 배운다.

군대를 세상이 요구하는 착한 직장인 양성소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 과정을 거쳐야 세상이, 미디어가, 사람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진짜 사회인이 된다. 자신을 버린 채로 윗대가리들의 부정부패에 침묵하거나 동참한다. 현실을 찬양하고, 꿈꾸는 자를 조롱한다. 길들여진 사람들은 곳곳에 있다. 나의 아비일 수도,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군대에서 병사 개개인은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대한민국'의 일부이거나 대한민국 그 자체로 불린다. 이름보다는 군번, 계급이 더 존중받기도 한다. 군에서 틀어주는 정신교육 영상에는 개인을 소멸시키며 대의를 내세웠던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대한 향수로 가득하다. "손에 잡힐 듯, 그리운 그 때. 박정희, 전두환이 있던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소!" 그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속삭인다. 이것은 세뇌인 동시에 선언이다. 꼭 이루고 싶다는, 빨갱이들을 무찌르고 개개인이 소멸되는 아름다운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그 단호한 선언.

국방부의 어처구니없는 불온도서 지정도 이런 국가건설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 것, 알려고 하지도 말 것, 체제나 이념을 부정하지도, 미국을 싫어하지도 말 것. 병사들에게 이런 잣대를 들이댄다는 건 쉽게 말해 그들을 이름이 아닌 군번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통계에 나오는 우리나라 현역병 숫자. 그 숫자 중 하나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철저한 소모품으로 길러내어 편하게 쓰려는데 이쪽에서 저항을 하니 당혹스러울 것이다. 너희들은 꼭두각시이기만 하면 돼. 생각할 필요 없어, 의심할 필요도 없어. 보는 것만 보고, 먹는 것만 먹고, 하는 것만 하는 것. 그게 그들이 원하는 세계최고제국의 일등시민이다.

군 법무관들의 용감한 행동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명백한 대립은 사뭇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골리앗은 걸어가다가 저항하는 다윗의 행동을 알게 된다. 성난 얼굴로 돌아선 골리앗은 으르렁거리며 다윗의 숨통을 조일 게 분명하다. 이것이 과연 승산이 있는 싸움이며, 군대의 이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한 습성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벌이는 이 싸움의 끝이, 그대로 끝이 아닌 시작이기를 바란다.


태그:#불온도서, #헌법소원, #국방부, #법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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