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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우리의 즐거움은 무엇이냐? 즐거움, 오감에 따라 즐거움을 분류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처음으로 나오는 것이 미각의 즐거움, 즉 맛을 즐기는 것이다. 이는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인간의 전통적인 즐거움이다. 그 외에 아름다운 명화나 풍경을 보는 등의 시각의 즐거움, 음악으로 대표되는 청각의 즐거움, 농구와 같은 운동이나 연인의 부드러운 키스로 대표되는 촉각의 즐거움도 있다.

오감 중 후각만이 특별한 즐거움을 가지지 않는 꽤나 재미없는 감각이라 생각했다. 미각의 하부개념에 불과하다고도 생각해 왔지만 최근 여행을 통해 '후각'의 대단한 즐거움을 발견했다.

일명 물담배(Water Pipe). 제일 위쪽에 꿀로 버무린 마른 과일을 넣고 불을 붙인다. 옆에 붙은 호스로 연기를 빨아들인다. 빨린 연기는 가장 밑의 동그란 부분에 든 물을 거쳐 매캐한 연기에서 향기로 거듭난다.
▲ 시샤 일명 물담배(Water Pipe). 제일 위쪽에 꿀로 버무린 마른 과일을 넣고 불을 붙인다. 옆에 붙은 호스로 연기를 빨아들인다. 빨린 연기는 가장 밑의 동그란 부분에 든 물을 거쳐 매캐한 연기에서 향기로 거듭난다.
ⓒ 시샤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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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들어가서 향기의 즐김에서 처음으로 나와야 할 것은 '시샤'라는 이슬람의 물담배이다. 담배라는 명칭으로 인해 일반 담배처럼 생각해 버리면 곤란하다.

쉽게 항아리에 물을 반쯤 채우고 구멍 뚫린 매개 위에 꿀과 과일을 버무려 올려놓고 불을 붙이고 항아리 옆에 난 구멍을 통해 타는 과일의 향기를 마시는 것이다.

보통의 담배가 연기를 폐까지 끌어내려야 참맛(?)을 느끼는 데 비해, 시샤는 향기를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입안에서 맴돌게만 해도 된다. 빨아들인 향기는 뽀글 뽀글 소리를 내면서 물속을 통과하기 때문에 연기 특유의 매캐함이 사라지고 원료 자체의 순수한 향기를 즐길 수 있다.

가장 인기있는 재료는 사과와 산딸기다. 시샤가 신기한 이유 중 하나가 분명 향기만을 마시는 것인데도 사과의 맛은 물론 같이 태우는 꿀의 달짝지근함과 끈적함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처음 시샤를 맛본 곳이 이란의 이스파한이다. 풍만한 돔 형태의 지붕이 있는 전통 찻집이었는데, 둥근 실내의 중앙에는 각종 시샤와 향료가 진열되어 있고 그 둘레에는 아늑한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그 양탄자에 비스듬히 누워 시샤를 빨거나 진한 홍차를 마시며 옆의 친구를 바라보던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옛 페르시아의 수도 이스파한은 정통 시샤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 이스파한 옛 페르시아의 수도 이스파한은 정통 시샤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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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동유럽을 비롯해 북아프리카를 포함하는 '이슬람 대제국' 터키(오스만 투르크)의 커피는 서유럽인들이 붙여준 별명인 '전설', 그 이상이었다. 처음 대하는 터키시 커피는 일본 술잔보다 작은 찻잔속의 거품많은 커피였다. 그때의 내게 '차'라는 것은 마시는 미각의 즐거움 쪽이었고, 한가지 맛을 즐기기에 10분의 시간도 길었다.

비록 찐득하리 만큼 진한 커피라곤 해도 엄지손가락 한마디보다 적은 양과 가라앉은 원두가루에 5분 이상 할애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돌아서서 비웃었다. 얼어죽을 '전설'….

그날밤 술집에서 악기를 연주하던 한량과 의기투합했고, 전설적인 커피에 대한 실망감을 꺼내었다. 그는 얇은 터키문화홍보 책자 하나를 들려주면서 '꼭 그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읽어봐'라고 말했다.

일반음식점에서 터키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터키한량. 터키가 돌궐이고 돌궐은 고구려의 형제국이기에 비슷한가? 음주가무를 즐기는 자태가...
▲ 터키 한량 일반음식점에서 터키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터키한량. 터키가 돌궐이고 돌궐은 고구려의 형제국이기에 비슷한가? 음주가무를 즐기는 자태가...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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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다시 찻집에서 터키시 커피를 주문하고, 터키홍보책자를 읽었다. 책이 흥미롭기도 했고, 어제 이미 쓰디 쓴 커피맛을 본 후라서 냉큼 다 마셔버리지는 않았다. 첫 모금으로 조금 삼킨 뒤 다시 책을 읽었다.

그 맛이 얼마나 나빴으면 한 시간여 동안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다 책자 속에 터키시 커피에 대한 소개를 보았다. 그 소개는 '맛'에 대한 것보다 '향기' 대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마시는 방법도 마셔서 목구멍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입술과 잇몸을 축이는 정도만 홀짝이는 것이었다.

마실 때는 쓰디썼던 그 커피로 입술을 적시자 신선한 커피향으로 온몸이 편안해졌다. 평소 커피를 즐기지 않는 나 역시 반할 만한 즐겁고 편안한 향기였다.

몇 백년이 넘는 모스크 부근에는 항상 이런 노상 찻집이 있다. 조막만한 찻잔으로 몇십분씩 앉아있는 그들을 보고 '백수'를 연상했다. 죄송!
▲ 터키 노상 찻집 몇 백년이 넘는 모스크 부근에는 항상 이런 노상 찻집이 있다. 조막만한 찻잔으로 몇십분씩 앉아있는 그들을 보고 '백수'를 연상했다. 죄송!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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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의 즐김에서 인도를 빼놓을 수는 없다. 맛의 즐김에도 '마살라'라 불리는 향신료를 사용해 독특한 음식문화를 이루었고, 5000년 전통의 인방의술도 강한 향의 약재를 많이 사용한다. 심지어 근래 인기있는 아로마 세라피의 원조도 인도. 향기의 즐김만을 놓고 보자면 인도가 세계 최고 선진국이다.

인도의 대표적 향기 중의 하나는 향(incense)이다. 향기를 너무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선물 중의 하나가 향이고, 이 습관은 불교를 따라 동남아는 물론 중국, 한국에까지 전해졌다. 비록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불사나 제례에만 사용되어 즐김과는 거리가 멀지라도 말이다.

불교경전에 나오는 보시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물품이 돈이나 음식이 아니라 꽃(헌화)과 향(헌향)일 정도로 인도인의 향기 사랑은 남다르다.

인도의 한 음식점에서 향을 피웁니다. 의미는 향기를 즐김 혹은 그들의 신에게 헌향의 의미도 있지만 더운 인도 기후에 따른 악취제거와 해충구제 등과 같은 실질적인 목적도 있습니다.
▲ 인도 방향 인도의 한 음식점에서 향을 피웁니다. 의미는 향기를 즐김 혹은 그들의 신에게 헌향의 의미도 있지만 더운 인도 기후에 따른 악취제거와 해충구제 등과 같은 실질적인 목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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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있을 때 만난 한국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인도에는 폐병 환자가 많아서 피를 가래처럼 뱉어낸다.'
한국 대학생 여행자들은 무서워하면서 말했다.
'인도 곳곳에는 핏자국이 너무 많아요.'

하지만 이것은 '방'을 즐기고 난 부산물이다.

간단한 과자와 음료, 차를 판다. 방은 깻잎처럼 생긴 잎 좌측하단의 한약재들같은 재료들을 넣고 입에넣어 조금씩 씹는다. 돈이 모자르다면 재료만 입에 넣고 씹는다. 마치 입담배처럼.
▲ 인도 구멍가게 간단한 과자와 음료, 차를 판다. 방은 깻잎처럼 생긴 잎 좌측하단의 한약재들같은 재료들을 넣고 입에넣어 조금씩 씹는다. 돈이 모자르다면 재료만 입에 넣고 씹는다. 마치 입담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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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보이는 깻잎처럼 생긴 허브잎에 왼쪽 아래 구석에 조금 보이는 약재들이 방 재료들이다. 방은 이런 저런 향료와 약초를 허브잎으로 상추싸듯이 말아 놓은 것이다. 상추 싸먹을 때 자신의 기호에 맞는 재료를 선택하는 것처럼 방의 재료도 수십 종의 재료 중에 서너 개를 선택한다.

방을 즐기는 방법은 그냥 우적우적 씹다가 넘기는 것이 아니라, 입담배처럼 입에 물고 있는다. 강한 향기를 즐기고 싶으면 몇 번 씹어 으깨어 줄 수도 있다. 일단 방을 입에 넣고 있으면 침이 고인다.

이 침은 상당히 강한 맛이기 때문에 목구멍으로 넘기지 않고 밖으로 뱉어낸다. 이때 그 침의 색깔은 피와 유사할 정도로 붉다. 확실히 입과 코는 연결이 잘 되어 있어서 '차'와 비슷하게 방도 입을 통한 향기의 즐김이라 하겠다.

좀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수십 가지의 재료 중에는 대마초나 매직머쉬룸과 같은 천연 환각제들도 있다는 것이다. 또 무턱대고 으적으적 씹어버리면 나오는 많은 양의 향신료로 미각을 몇 시간 동안 잃어버릴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물파스로 가그린 한 느낌이랄까.

언급한 이외에도 식사 후 제공되는 여러 허브 잎이나 열매가 있다. 우리나라에서야 껌을 씹지만 인도에서는 이것들로 입안의 냄새를 제거한다. 앞에서 언급한 수십종의 마살라(향신료)도 향기의 즐거움 중의 하나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제껏 무심코 넘기던 후각에 다른 4감에 못지않는 굉장한 즐거움이 존재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신세계 발견'처럼 대단한 것이었다. 혹시나 아직도 후각의 즐거움이 미각의 즐거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 '시샤'를 만나기 바란다.


태그:#여행, #시샤, #방, #물담배,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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