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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업자식 야만 행위가 YTN에서 벌어졌다니 참으로 충격적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루 24시간 뉴스방송을 한다는 언론기관이 돈을 뜯어내기 위해 온갖 협박과 공갈을 서슴지 않는 사채업자 수법을 본따 야만적인 폭력을 휘둘렀다면, 누가 이를 믿겠는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언론기관이 사채업자 행태까지 벌이며 막 가겠다는 것인지 말문이 막힐 정도다.

 

최근 YTN 노조 측에 따르면, 구본홍 사장측은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조 조합원 33명(미확인 대상자 제외)에 대해 무더기로 인사위원회 출석 통지서를 보냈다. 문제는 '징계 대상'이라는 통지서를 본인과 별도로 가족에게도 통지했다는 사실이다.

 

"아내가 놀라 사실이냐고 묻습니다" "노모가 직접 통지서를 받고 우십니다" "징계 받는 것보다 가족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 더욱 괴롭다" 등등은 조합원들의 하소연이다.

 

가족들을 협박해 조합원들의 의지를 강제로 꺾어보겠다는 저의가 고약하기 짝이 없다. 충격적인 것은 '야만적 폭력성'이다. 자세한 사실과 경위도 잘 모르는 노모와 아내, 가족들이 느닷없이 당할 마음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았는지. 만약 자신이라면 어떠했을지 묻고 싶다.

 

20년전 수지김과 오늘날의 원정화, 그리고 언론보도

 

폭력 논란으로 경찰청장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경찰조차도 조합원들의 가족들을 배려해 소환통지서를 보내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경찰을 감시·비판해야 할 언론기관이 경찰도 삼가는 '폭력'을 휘둘렀다니, 어이가 없다.

 

규탄 받아 마땅한 폭력 행태다. 이런 언론기관의 행태를 그대로 두면, 그 폭력이 일반인들에게도 자행될 것임이 뻔하다. 그래서 'YTN 사태'는 강 건너 불이 결코 아니다.

 

이 문제를 충격적일 정도로 심각하게 여기는 것은 과거 1980년대 권위주의 독재시절 서슬 푸른 공안 통치에 앞장섰던 '보도지침 언론'의 폭력이 되살아나려는 징후 때문이다. 가공스런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난 1987년 1월 8일 납북미수 사건이 터졌다. '북한 공작원인 수지김이 싱가포르 북한 대사관과 짜고 남편 윤태식씨를 북한으로 납치하려 했으나, 윤씨가 가까스로 탈출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사건의 진실은 윤씨가 자신의 아내인 수지김을 살해한 뒤 꾸며낸 자작극이었다. 수지김은 홍콩에서 살해됐는데, 홍콩 경찰도 윤씨를 살해범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당시 안기부는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 일을 '수지김의 납치미수 사건'으로 몰고 갔다. 수지김 가족의 제보와 일부 언론의 의혹 제기로 경찰 내사까지 진행됐지만, 안기부는 이 조차도 덮어버렸다. 왜 그랬을까.

 

 

1986년은 직선제 개헌 서명운동을 둘러싸고 정국이 초긴장 상태에 놓인 해였다. 당시 공안당국은 민주화운동 세력을 용공세력으로 매도하며 운동단체 사무실들을 폐쇄시키는 등 공안의 칼을 휘둘렀다.

 

바로 이 때 '수지김 사건'이 터진 것이다. '북한의 적화 위협'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불안감과 적대감을 자극해 직선제 개헌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으려고 금강산댐 소동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언론은 '수지김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공안당국의 공안통치에 앞장섰다. 그 결과 개헌 움직임도 주춤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간첩으로 몰린 수지김의 가족은 산산조각이 났다. 어머니는 실어증을 앓다가 사망했고 오빠는 술로 지새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언니는 정신병을 앓다가 변사체로 발견됐다. 두 동생은 이혼 당했다.

 

이처럼 산산조각 난 수지김 가족의 사례는 일반인들에게 '빨갱이'에 대한 공포감과 적대감을 고취시키는 생생한 교육 기제로 작용했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세력은 대통령 선거나 총선거, 정치적 난관이 있을 때마다 '수지김 사건'을 비롯해서 수많은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거나 경쟁세력을 탄압했다.

 

바로 이런 공안통치 과정에서 언론은 대대적인 홍보와 여론 조작 역할을 했다. 문제는 과거 언론의 폭력적 여론 조작 징후가 벌써부터 보인다는 점이다.

 

근거 없는 언론의 공안폭력이 계속된다

 

수사 당국은 지난 8월 27일 '여간첩 원정화 사건'을 발표했다. 몇년 동안 내사를 해온 사건을 하필이면 왜 현 정부의 종교 차별을 규탄하는 범불교 집회가 열린 날에 발표했을까. 사건 자체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연행자 구속영장 신청이 모두 기각 당했을까.

 

이처럼 용공 조작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 주요 언론사는 지난 8월 30일 '군 침투 간첩 용의자 50여명'이라고 적힌 군 보안 당국의 메모를 공개 보도해 파문이 일어났다.

 

이 파문으로 일반 국민들 사이에 대공 불안감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 파문은 어이없게도 아무런 법률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죄없는 사람들이 스러져 간다는 사실이다. 공안통치에 앞장설 야만의 언론 폭력이 되살아난다면, 참 끔찍한 일이다. YTN의 사채업자식 폭력에 어찌 충격을 느끼지 않겠는가.

 

과거 암흑기였던 야만의 시대를 막자

 

이달 초 YTN 노조는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과 관련해 파업 찬반을 묻는 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전체 395명 가운데 360명이 투표에 참가해 76.4%가 파업 찬성표를 던졌다고 한다.

 

구본홍 사장은 76.4%의 의사를 유린하고 어찌 언론을 하겠다는 것인가. 자기 회사원들 대부분의 의견도 묵살하면서 어떻게 일반 국민들의 의사와 입장을 대변하겠다고 자처할 수 있겠는가. 독재 언론의 횡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979년 11월 30일, 1980년 5월 12일과 13일, 문화방송 보도국 기자 총회에서는 유신언론 청산 및 언론 정도 확립을 다짐하는 결의가 있었다. 구본홍 사장은 당시 이 결의에 앞장섰다.

 

그러나 그는 1980년대 땡전뉴스 방송에 나섰다. 이제 다시 권력의 나팔수 노릇이나 하며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폭력의 횡포를 부리는 한이 있더라도 YTN 사장 자리를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과거 '야만의 시대'를 불러일으킨 악의 종 소리가 다시 울리도록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덧붙이는 글 | 정상모 기자는 1980년 <문화방송> 해직기자로 6월 민주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한겨레>와 <문화방송> 논설위원을 거쳤으며, <오마이뉴스> 비상임 편집위원을 역임했습니다. 


태그:#YTN, #구본홍, #공안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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