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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로 가는 길은 지금의 포장된 도로와 옛 오솔길이 있다. 옛길로 가다보면 한 쌍의 장승을 만나게 된다. 왼쪽에 있는 것이 남(男)장승이고, 오른쪽이 여(女)장승이다. 흔히 장승이라 하면 나무장승을 떠올리고, 마을 어귀에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절집 입구에 장승이 서 있다. 석(石)장승이다. 장승은 왕방울 눈에 주먹코로 투박하다. 그렇지만 참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장승은 관룡사의 소유 토지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부터 관룡사란 뜻이다.

 

 

장승과 헤어져 삼사 분을 더 오르니 관룡사다. 하지만 곧바로 경내로 향하지 않고 지척에 있는 '옥천사지'를 찾았다. 옥천사지는 고려 말 유명한 개혁가였던 '신돈'이 출생한 사찰이다. 관룡사는 신동이 출가하기 전에 머물렀다. 그러나 옥천사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역적이 태어난 사찰이라 하여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그 절터만 당그랗게 남아있다. 옥천사지는 주변에 어떠한 안내 표지판도 없다. 그래서 웬만한 사전지식 없이 옥천사지를 찾기란 어렵다.

 

신돈이 출생한 흔적이 남아 있는 옥천사지

 

여느 사찰 같으면 경내로 들어설 때 먼저 일주문을 배알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관룡사에는 일주문이 따로 없다. 대신에 돌로 쌓아 만든 아담하고 정겨운 돌계단과 석문이 있다. 절 초입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주변의 경관과 멋진 조화를 이룬 돌계단이 자연의 마음을 닮았을 것 같은 석공의 투박한 손과 예술 혼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관룡사를 찾는 기분은 사뭇 다르다. 그 옛날 민초들이 즐겨 찾았다는 절이라는 느낌이다. 그만큼 친숙하게 다가온다.

 

석문 왼편에 아름드리 은행나무 두 그루가 사찰의 역사를 가늠하게 한다. 또한 10m가 넘게 쭉쭉 뻗은 소나무가 몇 천 그루가 각자의 늘씬함을 뽐내면서 보물사찰, 관룡사를 에워싸고 도는 성벽 역할을 하고 있다.

 

가람 텃밭에 스님들이 울력으로 가꾸어 놓은 배추며 빨간 고추가 반갑다. 올 같은 가뭄에 저렇게도 싱그러운 이파리를 가졌다니 배추 한 포기 한 포기마다 여름내 땀 절은 스님들의 애씀이 보이는 듯했다. 어느 절에 가든 가지런하게 가꾸어놓은 푸성귀를 만나면 마음이 즐거워진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다.

 

 

아홉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관룡사

 

관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다.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가 갑자기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고 하여 그때부터 이 절 이름을 관룡사(觀龍寺)라 이름 지었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불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경내에 들어서자 먼저 원음각과 대웅전이 눈에 띈다. 관룡사는 통일신라시대 8대 사찰 중의 하나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대웅전(보물 제212호), 약사전(보물 제146호), 약사전에 있는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19호), 약사전삼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 용선대 석조 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 등의 많은 불교 유적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많은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는 관룡사, 작지만 아늑한 절집

 

하지만 관룡사는 여러 가지 부침이 많았다.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의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약사전만이 그 화를 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숙종 30년에는 대홍수로 금당과 부도가 소실되었고, 가장 최근 2003년에는 태풍매미로 인하여 관룡사 진입로와 용선대를 오르는 산길, 부도 등이 산사태로 유실되었다. 석장승도 관룡사 기슭을 훑고 지날 때 사라진 것을 수소문한 끝에 강원도의 어느 농부의 집에서 찾았다고 한다. 다시 자리 잡은 석장승은 오늘도 기분 좋은 미소로 서 있다.

 

 

 

관룡사의 가람들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모두 창살에 기교를 부리지 않고 정자(井子)살과 띠살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그 모습이 절집이라기보다 여느 양반네의 집들과 같다. 다른 게 있다면 모든 가람이 남향을 하고 있으며, 문을 활짝 열어 제켜놓아 그제야 절집임을 실감나게 한다. 또한 약사전 앞에서 바라보는 대웅전의 장대함과 그 뒤로 병풍처럼 둘러싼 구룡산의 바위들이 관룡사를 감싸고 있는 모습은 산중에 자리 잡은 절집의 아늑한 여유를 그대로 가지기에 충분하다.     

 

답사자의 감흥에만 젖은 탓일까마는 관룡사는 '아름답고 소중한 사찰', '작지만 넉넉한 절집'이었다. 이어 대웅전 옆 응진전을 돌아서서 용선대로 오르는 길을 향한다(<창녕의 문화재를 찾아서 13회>는 '관룡사 용선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종국 기자는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현재 창녕부곡초등학교에서 6학년 아이들과 더불어 지내고 있으며, 다음 블로그 "배꾸마당 밟는 소리"에 알토란 같은 세상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태그:#관룡사, #약사전, #대웅전, #삼층석탑, #용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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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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