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ㄱ. 기수(機首)

 

.. 전면에는 조종사와 부조종사가 타고, 그 아래 돌출 부분에 겁이 날 정도로 노출된 플렉시글라스 기수(機首)에는 나와 항법사가 폭격조준기와 50구경 기관총을 가지고 탑승했다 ..  <하워드 진/유강은 옮김-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이후, 2002) 125쪽

 

 ‘전면(前面)’은 ‘앞’으로 다듬습니다. ‘돌출(突出) 부분(部分)’은 ‘튀어나온 곳’으로 손보고, “겁이 날 정도(程度)로 노출(露出)된”은 “겁이 날 만큼 불거진”이나 “겁이 날 만큼 드러난”으로 손봅니다. ‘탑승(搭乘)했다’는 ‘탔다’로 고쳐 줍니다.

 

 ┌ 기수(機首) : 비행기의 앞부분

 │   - 기수를 남으로 향하다 / 비행기가 갑자기 기수를 동쪽으로 돌렸다

 │

 ├ 기수(機首)에는 나와 항법사가 탑승했다

 │→ 비행기머리에는 나와 항법사가 탔다

 │→ 비행기 앞쪽에는 나와 항법사가 탔다

 └ …

 

 물에 띄워 타고다니는 배 앞쪽을 가리켜 ‘뱃머리’라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행기 앞쪽이라면 ‘비행기머리/비행깃머리’라 하면 됩니다. 자동차 앞쪽은 ‘차머리/찻머리’라 할 수 있겠지요. 자전거 앞쪽은 ‘자전거머리/자전것머리’가 될 테고요. ‘머리’를 가리키는 한자 ‘머리 首’를 붙여야 새말이 되지 않으며, ‘機首’나 ‘船首’라 쓴다고 해서 어디를 가리키는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지도 않습니다. 한편, ‘뱃머리’는 ‘이물’이라고도 하며, ‘배꼬리’는 ‘고물’이라고도 합니다.

 

 

ㄴ. 대의(大義)

 

.. 민주 사회가 공공의 이익이란 대의大義를 상실했다고 생각하십니까? ..  <드니 로베르ㆍ베로니카 자라쇼비치(만나보기)-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시대의창,2002) 62쪽

 

 ‘상실(喪失)했다’는 ‘잃었다’로 다듬을 말인데, 이 자리에서는 ‘버렸다’나 ‘내려놓았다’로 다듬어 줍니다. “공공의 이익”은 “공공 이익”으로 다듬습니다.

 

 ┌ 대의大義를 상실했다

 │

 │→ 큰뜻을 잃었다

 │→ 중심 생각을 잃었다

 └ …

 

 사람이 지킬 ‘큰 도리’를 한자말로 ‘大義’로 적는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큰 大 + 도리 義’인 셈인데, 이렇게 말을 엮기보다는 ‘큰도리’로 엮는 편이 한결 낫지 싶어요. ‘큰뜻’이나 ‘큰생각’이나 ‘큰마음’으로 써도 잘 어울리고요.

 

 ┌ 큰뜻 / 큰마음 / 큰생각 / 큰넋 / 큰꿈

 └ 작은뜻 / 작은마음 / 작은생각 / 작은넋 / 작은꿈

 

 말뜻을 가만히 헤아리면 됩니다. 서로서로 좀 더 쉽고 살갑게 주고받을 만한 말을 찾으면 됩니다. 이렇게 말을 추스르고 글을 다독이면, 구태여 묶음표를 쳐서 ‘이 말은 이런 뜻에서 씁니다’ 하고 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처음부터 알아듣기 좋도록 글을 쓰지 못하니, 자꾸자꾸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게 되는데, 이처럼 묶음표 한자말을 넣는다고 하여 다른 말하고 안 헷갈리게 되겠습니까. 오히려 이렇게 묶음표 한자말을 넣으면서 말이며 글이며 더 헝클어집니다.

 

 우리가 사랑을 품고 사랑으로 마주하면 사랑이 퍼집니다. 글을 쓸 때 처음부터 쉬운 말을 쓰려고 마음을 먹고 찬찬히 돌아보면 쉬운 말이 가지를 치거나 줄기를 뻗습니다. 그렇지만, 지식 자랑을 생각하거나 뭔가 겉멋을 돋보이게 하려는 마음이 된다면, 딱딱하거나 어려운 말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글을 쓰는 자기부터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쓰는 글이 되고,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알쏭달쏭해 하는 엉터리 글이 됩니다.

 

 

ㄷ. 동화(同化)

 

.. 하지만 모두가 웃음으로 만날 수 있다면 ‘차이’라는 것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동화(同化)’의 한 단계에 불과할 뿐이다 ..  <정동헌-이주노동자, 또 하나의 아리랑>(눈빛,2006) 110쪽

 

 ‘차이(差異)’는 ‘다름’으로 고쳐씁니다. ‘더 이상(以上)’은 ‘더는’으로 다듬고, ‘불과(不過)할 뿐이다’는 ‘지나지 않을 뿐이다’나 ‘-일 뿐이다’로 다듬습니다.

 

 ┌ 동화(同化)

 │  (1) 성질, 양식(樣式), 사상 따위가 다르던 것이 서로 같게 됨

 │   - 자연과의 동화 / 감정의 동화가 일어나다 /

 │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선 주변 사람들과의 동화가 필요하다

 │  (2) 밖으로부터 얻어 들인 지식 따위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듦

 │

 ├ ‘동화(同化)’의 한 단계

 │→ 하나가 되는 첫 단계

 │→ 한마음이 되는 첫걸음

 │→ 어우러짐으로 가는 첫발

 └ …

 

 “하나가 됨”이나 “하나됨”을 한자로 옮기면 ‘동화’입니다. 말뜻 그대로 “하나가 됨”을 쓴다면, 따로 묶음표를 치고 ‘동화(同化)’처럼 안 써도 넉넉합니다. 그러나 말뜻 그대로 쓰지 않는다면 묶음표를 쳐야 하는데, 이런 묶음표를 친 말은, 사람들한테 한자도 따로 배워야 하도록 이끌게 됩니다.

 

 ┌ 자연과의 동화 → 자연과 하나됨

 ├ 감정의 동화가 일어나다 → 마음이 비슷해지다

 └ 주변 사람들과의 동화가 필요하다 → 둘레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해야 한다

 

 한자를 배우는 일이란 나쁜 일은 아니며, 한자를 배우기 때문에 더 많은 글을 알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자를 배운 다음에 ‘자기처럼 한자를 배운 사람이 아니면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자를 배운 뒤에는 ‘한자를 배우지 않은 사람도 쉽게 알아들을 만한 말’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쓸 수 있어야 훨씬 ‘배운 사람’다우며 아름답지 않을는지요. 한자를 배우는 까닭은, 한자로 된 여러 가지 책을 더 찾아서 읽거나 한자로 된 이웃나라 문화를 헤아리는 데에 있을 테니까요.

 

 지식을 내세우거나 자랑하려고 배우는 한자가 아니라면, 글을 쓸 때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는 일은 안 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묶음표 한자말, #우리말, #우리 말, #한자, #한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