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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6일 낮, 인천 주안역 부근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당시 주안역 환승정류장에는 한 지체장애인이 버스를 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가 타려고 했던 버스는 514-1번. 전국 마을버스 노선 중 저상버스가 운영되고 있는 유일한 노선으로 총 9대 중 5대가 저상버스인, 아주 모범적인 노선이다(인천시 지선(초록)버스는 과거 마을버스를 그대로 이용하는 것으로, 타 시·도 마을버스 요금을 받고 있다).

514-1번 배차간격은 9분으로 배차간격을 이용해 계산해 보면 15분마다 저상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이 정도 간격이라면 지체장애인은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저상버스를 탈 수 있다.

1분 걸리는 휠체어 탑승에 왜 5분이나 걸렸나

통상 저상버스 차량에 지체장애인이 탄 휠체어가 오른 후 버스가 출발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각은 1분 정도다. 대략 아래와 같은 과정에 1분 정도 소요되는 것이다(이 경우는 가장 모범적인 경우다. 도로 상태, 차량 상태, 기사의 숙련도 등으로 이 시간은 달라질 수 있으나, 아무리 길어도 2분을 넘기진 않는다).

① 앞측 오른쪽바퀴의 공기압을 빼며 차체를 기울인다 ('kneeling', 10초 이내)
② 뒷문(중문)에 있는 슬로프를 보도블럭 쪽으로 내보낸다 (10초 이내)
③ 지체장애인이 탄 휠체어가 오르고 휠체어를 체어락에 고정한다 (40초 이내)

하지만 그날 514-1번 버스는 장애인 한 명을 태우기 위해 무려 5분이나 주안역 환승정류장에 머물렀다. 이로 인해 주안역 환승정류장 일대는 큰 혼잡을 빚었고 주안역 남광장 일대 교통상황이 마비되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514-1번은 늦게 출발한 것일까? 당시 상황과 원인을 짚어보자.  

현재 주안역 환승정류장은 곳곳이 깊이 패 있어 비가 오면 웅덩이가 형성된다. 촬영 후 2주가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주안역 환승정류장은 사진 속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주안역 환승정류장은 곳곳이 깊이 패 있어 비가 오면 웅덩이가 형성된다. 촬영 후 2주가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주안역 환승정류장은 사진 속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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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보자. 주안역 환승정류장은, 사진에서 보는 곳에 형성된 3곳(버스 왼쪽에 1곳이 더 있음)을 포함해, 총 4곳에 승강장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기다리기가 가장 편한 사진 속 승강장의 경우 사진에서와 같이 정류장 노면 곳곳이 움푹 파여 있다. 더군다나, 그날은 비가 내려 움푹 파여 있는 곳에 빗물이 고여 있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저상버스 차량은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한, 3곳 승강장 중 우측 승강장을 자연스레 기피하게 된다. 저상버스와 일반버스의 차체 높이가 많이 차이나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에서처럼 깊은 웅덩이가 형성돼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럴 땐 차체 하단부가 긁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주안역 환승정류장의 경우, 사진에서 지적한 우측 승강장 이외 다른 승강장 노면 상태도 상당히 불량하다. 하지만 '최선이 아니면 차악'이라는 말이 있듯, 버스기사들은 그래도 노면 상태가 덜 불량한 곳을 찾게 된다. 이는 되도록 왼쪽 혹은 중앙 승강장을 찾도록 하는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왜, 왼쪽이나 중앙 승강장에 정차할 경우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이 저상버스 차량에 오르는 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다음 단락에서 그 원인을 파악해 보도록 하자.

문제는 제대로 관리 안 된, 울퉁불퉁 '노면'

한 지체장애인이 저상버스차량에 오르지 못한 채 밖에서 저상버스차량에 오르는 비장애인을 바라보고 있다.
 한 지체장애인이 저상버스차량에 오르지 못한 채 밖에서 저상버스차량에 오르는 비장애인을 바라보고 있다.
ⓒ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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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514-1번 저상버스가 주안역 환승정류장 중앙 승강장에 정차했을 때 모습이다. 514-1번은 주안역이 회차점으로 주안역에서 모든 승객이 내리고, 내린 승객 만큼의 새로운 승객이 버스에 오른다. 이날 당시 20여명의 승객이 탔고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은 차량에 승객 3명만 더 태우면 되는 상황에 사진 속 위치에 도착하게 된다.

버스기사는 사진 속 위치에서 뒷문(중문)을 열지 않았고, 지체장애인은 기사를 향하여 왜 문을 열지 않느냐고 항의를 했다. 버스기사는 모든 일반 승객이 승차한 뒤 앞문을 통해 나와 지체장애인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는 도저히 휠체어를 태울 수 없어요. 옆 정류장에 갖다 댈테니 기다리세요."

그 지체장애인은 "왜 내가 저기까지 가서 타야 하냐"며 마구 화를 냈지만 사실 기사의 말에 틀린 것은 없다. 서두에서 밝힌 저상버스 차량이 휠체어를 태우는 과정이 저 위치에서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차체를 기울인다 하더라도, 슬로프를 차도 높이까지 갖다 댄 후 휠체어가 오르도록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승차법이다.

'차량을 앞으로 대고 휠체어도 앞으로 오면 되지 않냐'라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승강장의 폭이 너무 좁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가로등이 있어 휠체어가 앞으로 많이 나갈 수 없고 가로등이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휠체어의 길이와 승강장의 폭이 비슷해 휠체어가 승강장에 올라 차내로 좌회전하기는 어렵다.

결국 514-1번의 기사는 전진과 후진을 수차례 반복한 끝에 우측 승강장으로 진입했다. 승강장이 끝나는 지점은 보도블록과 택시 승강장으로 인해 무조건 우회전해야 하는 구조로, 승강장 끝부분에서 직진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 없어 어쩔 수 없이 여러 차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주안역 환승정류장, 4~5분간 정체 시달리다

주안역 환승정류장의 경우 통상 왼쪽 승강장은 비워 놓는다. 노선버스가 아닌 버스 및 잘못 들어온 승용차 등이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사용하는 승강장은 511번 승강장을 제외하면 중앙과 우측 두 곳인 것이다. 그렇다보니 중앙 승강장과 우측 승강장을 동시에 가로막은 채 있는 514-1번으로 인해, 주안역 환승정류장은 위 사진 모습에서와 같이, 무려 4~5분에 걸친 오랜 시간동안 극심한 정체에 시달렸다.

상당수 시민들은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을 직접적으로 꼬집어 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시의 상당수 타 노선 이용객들은 '왜 저 회사는 저런 차를 들여 도로를 이 지경으로 만드느냐'의 가벼운 불만을 표현했다.

휠체어 한 대를 태우기 위해, 514-1번 버스는 오른쪽 승강장으로 진입하고자 전진, 후진을 반복해야 했다.
 휠체어 한 대를 태우기 위해, 514-1번 버스는 오른쪽 승강장으로 진입하고자 전진, 후진을 반복해야 했다.
ⓒ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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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향해 직설적으로 욕하지는 못하지만, 결국 자신으로 인해 생긴 상황에 대한 불만을 많은 시민들에게 들어야만 했던, 그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 하지만 버스에 탄 뒤로도 문제는 계속됐다. 평상시에는 일반 좌석으로 사용하던 체어락 위의 접이의자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내가 왜 일어나야 해'라며 일어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결국, 뒤의 젊은 승객이 자진해 일어나며 마무리됐고, 휠체어가 고정된 뒤 버스가 출발할 수 있었다.

저상버스 도입 5년 만에 전국 1000대 돌파

현재 전국 노선버스 차량 중 저상버스 차량은, 서울특별시 617대(총 7749대 중 약 8% 정도), 인천광역시 90대(총 2105대 중 약 4.4% 정도)를 포함해, 총 1000대가 넘는 상황이다. 2003년 9월 5일에 서울특별시에서 당시 59번 노선(우신교통, 새절동~명지대~종로~신설동~자양동)에 시험운행 저상버스 1대를 운행하면서 저상버스 차량 운행이 처음 시작된 이래, 5년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국내 저상버스 차량의 도입이 급증한 것이다. 아직 '잘 접하기 힘든 차량'이긴 하지만, 적어도 과거의 '희귀 차량' 수준은 벗어난 것이다.

절대적인 수치로만 보면 선진국에 비해 저상버스 차량의 비율이 극히 미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법정대차연한도 안 된 멀쩡한 버스를 조기폐차할 수는 없는 문제' 및 '저상버스 도입 보조금의 마련이 쉽지 않은 문제' 등 여러가지 어려운 사정 등을 감안할 때, 국내 저상버스 차량의 도입은 꽤 적극적이라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저상버스 차량으로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이 들어가고 있다.
 저상버스 차량으로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이 들어가고 있다.
ⓒ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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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차량의 도입만 적극적이었지 시설의 개선 및 시선의 전환은 아직 제자리 걸음이다. 위에서 언급한 514-1번의 경우, 단돈 600원(성인 교통카드 기준)을 받는 마을버스업체가 저상버스 차량을 출고한, 국내 유일의 사례다.

물론 보조금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대다수 업체처럼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저상버스를 꺼렸다면 저상버스 차량이 다니는 모습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기사의 각종 장비 조작능력 및 교통약자(장애인, 노인, 유아, 임산부 등)에 대한 마인드는 상당히 향상됐다.

그러나 막상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을 태우려 하니, 열악한 정류장 시설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자연스레 저상버스 차량과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을 욕하는 것이다. 저상버스 차량에 대한 인지가 아직 낮은 상황에서, 어찌 보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인 것이다.

저상버스 차량의 출고가는 1억6천만원에서 2억 사이(옵션사양에 따라 달라짐)이나 각종 보조금을 합치면 일반버스 차량과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저상버스 차량은 일반버스 차량에 비해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고 고장 시에 수리 기간이 오래 걸리는 등의 문제가 많아 통상 해당업체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베테랑기사가 맡아 운행하는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주안역 환승정류장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어떤 베테랑기사라도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상버스, '도입'만 능사는 아니다... 인식 바뀌어야

문제는 대한민국에 이런 상황에 놓인 곳이 주안역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주안역은 구조적 설계와 잘못된 노면관리가 겹친 저상버스 차량에게는 최악의 장소다. 하지만 둘 중 하나만 문제가 있어도 저상버스 차량과 휠체어의 만남은 큰 어려움을 맞이하게 된다. 차량만 도입해서는 능사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당시 다른 버스에 타고 있던 한 시민은, "저 회사 좋은 일 하자고 저런 차 뽑았을 텐데, 오히려 저런 차 때문에 온갖 사람들에게 욕 먹게 생겼네"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따지고 보면 해당 운수업체의 잘못은 없다. 잘못된 것을 찾자면 불량한 시설과 아직 부족한 시민의식이다. 전국적으로 노선버스에 운행되는 저상버스 차량이 1000대라 가정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이 최하 800억원은 쓰였다고 볼 수 있다. 값 비싼 차량을 세금으로 들여온 만큼 더욱 효율적인 활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모두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태그:#저상버스, #교통약자, #주안역, #정류장,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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