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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태백중앙병원을 방문해 진폐환자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다. "걱정마이소...지가 다..."
▲ 눈물을 흘리는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태백중앙병원을 방문해 진폐환자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다. "걱정마이소...지가 다..."
ⓒ 한국진폐재해자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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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폭염이 이어진다. 가을의 초입에 들어선다는 입추도 제 역할을 다하진 못했다. 폭염이 내리쬐는 어제(7일)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사북읍에 갔다. 해발 700m의 고원지대이지만 강력한 폭염은 그 지역이라고 용서하지 않았다.

오전 10가 넘은 시간, 한낮이 되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정수리로 꽂히는 강렬한 햇살은 압정이 쏟아지는 듯 따가웠다. 지역을 엄습한 폭염 때문일까. 사북 거리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10분을 거리에 서 있었지만 내 곁을 지나치는 이조차 없었다.

국내의 대표적인 탄광지역이었던 사북과 고한. 탄가루가 사라진 거리엔 유흥업소에서 뿌린 전단지만이 흩날렸다. 전단지 속의 전라의 여인들은 자극적인 포즈를 취한 채 호객행위를 하고 있지만 날씨 탓인지 그 또한 들여다 보는 이가 없었다.

폭염 속에서 진폐 환자들은 아직 싸웠다

진폐환자들의 치열한 투쟁역사를 담은 <프로메테우스의 후예들>
▲ 표지. 진폐환자들의 치열한 투쟁역사를 담은 <프로메테우스의 후예들>
ⓒ 화남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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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까지 이 지역은 '투쟁'이라는 구호와 기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른 바 '전직 광부들의 생존권 투쟁'이 그것이다.

투쟁을 이끈 단체는 '한국진폐재해자협회(회장 주응환). 한때 산업 역군으로 국가 에너지인 석탄을 생산하다가 병을 얻은 그들은 '우린 산업폐기물이 아니다!'라며 거리로 나섰다.

80년 사북노동항쟁에 이어 90년대 정부의 석탄합리화 정책 단행 이후 터진 95년 3·3 투쟁, 다시 10년이 훌쩍 흐른 후 전직 광부가 된 그들이 거리로 다시 나선 것이다. 10년 주기로 벌어진 광산노동자들의 투쟁 이유는 다름 아닌 '생존권 확보'. 청춘을 탄광에서 보냈던 그들은 그 사이 초로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지난해 11월 재가진폐환자들의 궐기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태백을 찾은 후(관련기사 "우리도 사람이오, 산업폐기물이 아니오!" )10개월만에 그들을 다시 만났다.

마침 그날은 그동안의 투쟁 역사를 모은 투쟁백서 <프로메테우스의 후예들(화남출판사)> 책의 출판기념회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지 그들의 분노는 여전했다.

"단지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로 산업폐기물 취급을 받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5차례의 대규모 궐기대회와 31일간의 단식투쟁, 지도부 12명의 삭발, 혈서와 손가락 단지까지 했지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정부의 안일한 태도를 절대로 묵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진폐재해자협회 투쟁위원장인 성희직 시인의 말이다. 산업폐기물 취급을 하는 정부에 대한 강력한 투쟁은 아직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가족 보기 미안해 빨리 합병증 생겼으면 좋겠어요"

최고령 투사들 "우리의 투쟁 역사가 담긴 책이 나왔디야."
▲ 출판기념회. 최고령 투사들 "우리의 투쟁 역사가 담긴 책이 나왔디야."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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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기념회가 시작하려면 아직 4시간이나 남았지만 진폐환자들이 속속 사북종합복지관으로 모였다.

행사 진행을 하기 위해 필요한 의자를 나르는 일도 칠순이 넘은 환자들의 몫. 그들은 의자 하나를 옮기는데에도 숨이 차 자주 주저앉았다. 현장에서 기침을 쏟아내는 윤석환 할아버지를 만났다. 주민등록 나이로 69세라는 윤 할아버지의 실제 나이는 73세.

1961년에 시작한 윤 할아버지의 광부일은 1990년에야 끝났다. 30년 가까이 일한 대가는 진폐7급 판정. 그러나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로 요양환자가 되지 못하고 재가환자로 남았다. 급수13급이라도 합병증만 있으면 병원에 입원하여 월 200여만원씩 생계비를 지급받을 수 있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혜택도 받지 못했다.

"가족들 보기 미안해 죽겠어요. 빨리 합병증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합병증이 생기면 죽음의 순간이 더 빨리 다가오는 것 아니던가.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합병증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합병증이 생겨야 생계비가 나오고 죽어도 유족보상금으로 2억 정도는 물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으로는 합병증이 생기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윤 할아버지가 진폐환자로서 받는 경제적 혜택은 하나도 없다. 집안을 꾸려가는 것은 할머니. 할머니가 김 매는 일을 하면서 벌어온 돈으로 하루 하루를 보낸다. 진폐증이 있으면 취직도 하지 못하는 세상이고 보니 번듯한 경비일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막일은 숨이 차서 할 수도 없다.

"이렇게 더운 날씨엔 더 힘들어요. 숨이 차서 걸어다니는 것은 엄두도 못내요. 잠도 자지 못하는 걸요."

더운 날씨면 들숨이 어렵다는 진폐환자들. 온도가 맞아야 잠도 자고 하는데 요즘 날씨로는 하루를 견디는 일도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차라리 추운 겨울이 낫단다.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진폐증. 환자들은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 사망하기도 하고 정밀검사를 받는 중에도 사망하기도 한단다. 광부일을 한 지 3년이면 진폐증에 걸리기 시작하는 광부들. 그런 이유로 윤 할아버지와 함께 탄을 캐던 동기들은 다 사망했다.

강원랜드가 들어섰다지만 전직 광부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 산비탈에 자리잡은 광부의 마을. 강원랜드가 들어섰다지만 전직 광부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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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폐환자 등치는 브로커들이 판치는 것 당연합니다"

다른 분도 만나보기로 했다. 함백산 자락인 고한읍 상갈래에 있는 싸리골 마을로 가는 길엔 전직 광부인 구세진(52)씨가 동행했다. 비교적 젊은 구씨도 광부일을 30년 가까이 했다고 한다. 1975년 3월부터 시작한 그의 광부일은 2004년 10월 31일 동원탄좌가 폐광을 하고야 막을 내렸다.

"아버지를 따라 경남 마산에서 6살 때 고한 땅으로 왔습니다. 아버지도 광부였고 아들인 저도 광부였죠. 아버지와 아들이 탄 캔 세월을 합하면 60년도 넘을 겁니다."

구씨의 아버지는 진폐 11급으로 지난 2006년 사망했고, 구씨 자신도 진폐 13급 판정을 받았다.

"30년 넘게 탄을 캤지만 아버지도 합병증이 아니라는 이유로 힘들게 말년을 보냈습니다. 아들인 저도 마찬가지고요."

노동부에서 인정하는 진폐환자는 두 부류. 합병증을 얻은 환자는 요양환자가 되어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합병증이 없으면 집에서 살아야 하는 재가환자가 된다. 문제는 재가환자들에겐 아무런 경제적 혜택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전체 진폐환자는 1만7500여명. 그 중에서 경제적인 혜택을 받는 요양환자는 3700여명이다. 요양환자를 뺀 나머지 진폐환자들이 재가진폐환자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불법과 편법이 판친다. 불법을 부추기는 이들은 재가진폐환자들을 요양환자로 만들어 주겠다며 접근하는 '브로커'들.

이들은 재가환자들에게 접근해 요양판정을 받게 해주겠다며 돈을 요구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여 돈만 날린 환자도 있고, 요양환자가 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도 아니면 모인 인생들. 2004년 8월 처음 적발된 브로커 사건으로 모집책과 의사 등 구속된 이들만도 9명이나 된다.

2004년 10월 31일 사북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문을 닫은 동원탄좌 폐광 모습
▲ 멈춘 석탄 에너지 2004년 10월 31일 사북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문을 닫은 동원탄좌 폐광 모습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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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진폐재해자협회가 출범하게된 사건인 '브로커 사건'은 그렇게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 일은 지금도 여전해 사북에 사는 누가 몇 억을 받아 중국으로 도망쳤다는 등의 소문이 끊임없이 나돈다.

"브로커가 판치는 이유야 뻔하지 않겠어요? 돈 1천만원 들여서 요양환자가 되기라도 한다면 누구라도 다 할 겁니다. 1년이면 그 돈 받을 수 있으니 불법인들 마다할 일이 아니지요."

진폐판정심의가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요양환자가 되어야만 진폐환자 대접을 받으니 그들에겐 병원이 '꿈의 궁전'인 셈이다. 진폐환자의 천국인 요양환자들과 지옥인 재가환자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합병증이 있어야만 입원할 수 있게 한 '진폐법'이다.

"지난번 투쟁으로 정부가 불합리한 법률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언제 될지는 감감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시간만 끌다가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도 됩니다."

싸리골에 도착하니 햇살은 더 강하게 내리쬐었다. 함백산 중턱쯤에 위치한 싸리골은 예전만 해도 탄광이 많았던 마을이었다. 따개비같은 집이 산등성이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시절, 역시 진폐환자인 정정길(73) 할아버지도 이곳에 터를 잡았다.

재가진폐환자들이 이명박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우릴 만나주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 서명. 재가진폐환자들이 이명박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우릴 만나주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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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15가구가 집단 이주..."탄광에 돈 벌러 왔어요"

구세진씨와 기자가 도착하자 마침 정 할아버지는 점심상에 올리기 위함인지 텃밭에서 배추 한 포기를 뽑아오고 있었다.

"날이 무척 더운데 괜찮으세요?"
"괜찮기는요, 할 수 없어 걷는 거지요."

언덕배기의 골목에 있는 할아버지의 집은 걷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몇 걸음 걷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숨이 차니 들숨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아 곧 기침을 쿨럭거렸다. 진폐 13급인 할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광부일을 하게 된 경위부터 물었다.

"여기 오기 전엔 충북 괴산에서 살았어요. 9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힘들게 살았지요. 결혼을 하고도 남의 집 품팔이를 하면서 살았는데, 누군가 탄광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마을에 함께 살던 15가구가 한 날 이곳으로 왔어요. 그 때 나이가 45살이었어요."

돈을 벌기 위해 집단 이주 대열에 합류한 정 할아버지. 그때가 1971년이었고 1997년까지 광부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죽을 고비를 수십 차례 넘긴 정 할아버지에게 남은 것은 곡괭이와 삽 하나. 다른 것은 다 버렸지만 그것만은 챙겨 놓았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었다.

"막일이라도 하려면 쟁기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챙겨놓았어요."

하지만 정 할아버지는 지금껏 곡괭이와 삽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병이 생기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자리한 부인에게 물었다.

"처음 월급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부자가 된 느낌이었어요.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현금을 그렇게 많이 받아보긴 처음이었거든요."

정 할아버지가 1971년 첫 월급으로 받은 돈은 1만8천원. 당시 쌀 한가마에 3천원이었으니 쌀 6가마에 해당되는 돈이었다. 괴산에 있을 때만 해도 남의 집 품팔이를 하면 하루 쌀 2되 정도를 받았다고 하니 상당한 금액임은 틀림없었다.

재가진폐환자인 정정길 할아버지.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다른 병이 생겨야 돈을 준다니 이런 법이 어딨어요?"
▲ 정 할아버지. 재가진폐환자인 정정길 할아버지.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다른 병이 생겨야 돈을 준다니 이런 법이 어딨어요?"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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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돈을 모으지는 못했다. 정 할아버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랬다. 막장 인생이라는 정신적 체념이 돈을 모으지 못하게 한 원인이었다. 흔히 말하듯 '먹어 조지는 일'로 살아갔던 광부들의 돈을 두고 정 할아버지는 이렇게 표현했다.

"광산쟁이 돈은 햇빛을 보면 금방 녹아요."

어둠 속에서 번 돈이라 그랬을까. 광부들의 돈은 밖으로 나오자 마자 눈 녹듯이 녹아 버렸다.

대통령의 눈물은 천사의 눈물? 사탄의 눈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그들에게 월급을 두배로 올려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석탄합리화 정책으로 탄 캐는 일밖에 할 줄 모르던 광부들을 길거리로 내 몰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후보 시절 그들을 찾아 눈물을 훔쳤다. 이명박도 대통령 후보 시절 그들을 찾아가 눈물을 펑펑 흘렸다. 몇명의 대통령 후보들이 광부들을 찾았지만 정작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엔 안면을 싹 바꿨다.

재가진폐환자들은 요양환자들처럼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이 제시한 생계비는 월 73만원. 그 돈은 노동부가 정한 최저 생계비이고, 대통령 후보들이 약속한 금액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40만원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돈으론 어림도 없다는 게 재가환자들의 생각이다. 월 73만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투쟁 방식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밖에 없다고 이들은 말한다.

진폐환자이면서 최고령 전직 광부들이 벌이는 생존권 투쟁은 아직 진행형이며 그래서 더 치열하면서 위험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환자들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는 사진이 담긴 펼침막을 건 출판기념회장. 기침소리만이 쿨럭쿨럭 나는 어제의 출판기념회장엔 그들의 분노만 가득했다.

지난 해 11월 초 태백시 노동사무소로 몰려간 진폐환자들. "우린 산업폐기물이 아니다!"
▲ 분노. 지난 해 11월 초 태백시 노동사무소로 몰려간 진폐환자들. "우린 산업폐기물이 아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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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진폐환자, #사북사태, #3.3투쟁, #대통령의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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