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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9만7000명의 작은 도시에서 잔인한 살인 행각이 벌어졌다.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동해에서 처음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22일 낮 1시경 동해시청 민원실. 점심시간 막바지라 3명의 직원이 서서히 오후 업무 준비를 하고 있었다. 1시 10분께 30대 최 아무개씨가 민원실 문을 열자마자 "여기 있는 사람이 공무원들이냐"고 소리치며 민원데스크에 앉아 있는 이 아무개씨에게 달려가 미리 준비해 온 흉기를 휘둘렀다. 이씨는 날카로운 흉기인 줄 모르고 손으로 막다가 팔과 손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최씨는 옆에 앉아 있던 남 아무개씨를 4차례 찌르고 나서는 도망가려다 밖에 있던 남자 시청직원에게 붙잡여 경찰에 넘겨졌다.

 

"원한 사건은 있었지만, 묻지마 범죄는 처음입니다."

 

22일 밤 11시 30분 동해경찰서를 방문한 기자에게 강력2팀 최호준 경장이 처음 한 말이다.

 

"22일 낮 1시 15분 경 '112상황실'에서 연락이 와 119구급대와 함께 동해시청 민원실로 갔다. 도착해 보니 이미 시청 직원이 범인을 제지해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검거했다. 민원실 안은 흉기에 찔린 이 아무개 시청직원이 다량의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옆의 남 아무개씨는 생명이 위태로워 보였다. 남씨와 이씨를 인근 병원에 후송했지만 남씨는 숨진 뒤였고 이씨는 현재 동인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최 경장은 이어 "당시 민원실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업무복귀 시간이라 3명의 직원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주위에서 말릴 겨를도 없었던 것"이라며 "이씨는 범인이 휘두르는 흉기가 날카롭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칼날을 잡아 팔과 손에 큰 부상을 입었다. 범인은 바로 옆에 있던 남씨를 잔인하게 난도질 했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우발적 범행인지에 대해 최 경장은 "흉기를 소지해 관공서를 간 것만 봐도 우발적일 수가 없는 것"이라며 "범인은 지흥동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인근 효가동 한 생활용품점에서 전복숯불용 칼 한 자루를 구매해 미리 준비한 다른 칼과 함께 신문지에 싸서 흉기를 숨겼다"고 밝혔다.

 

이어서 최 경장은 "사전 계획된 범행임을 알 수 있는 또다른 이유는 지난 2월 동해시로 온 범인은 지흥동 한 원룸에 투숙하면서 이런 범행을 미리 구상해낸 뒤 21일 원룸주인에게 월세를 지불하고 흉기를 구입해 곧장 동해시청 주변 여관에 묵으며 완전범죄를 꿈꿨다"고도 말했다.

 

범행을 저지른 까닭에 대해 최 경장은 "피해 시청직원과 범인은 한번도 보지 못한 연관 없는 사람인데 불특정 다수에게 흉기를 휘두른 것을 볼 때 묻지마 살인이 분명하다"며 "다시한번 말하지만 동해에서는 이런 일이 처음 발생해 당혹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이같은 범죄자들은 세상에 대한 불신 편견으로 사회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해 노력해서 살아가는 의지를 포기한 채 떠돌다가 차라리 범행을 저지르고 교도소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라며 "범인은 '세상 살기가 싫었고 어떻게든 교도소에 가기 위해 아무런 이유 없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 바 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전적이 있는가에 대해 최 경장은 "범행을 저지르기 며칠 전에 뚜렷한 이유도 없이 단지 사회에 불만을 품고 공공기물을 파손해 경찰서에 붙잡혀 주의를 준 후 돌려보낸 적이 있다. 이보다 앞서 지난 2006년 11월 부산광역시 한 전자제품 대리점에 들어서자마자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뿌리며 불을 질러 일반건조물 방화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면서 "이 사건으로 작년 1월 19일 부산지방법원 판시에 따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고 말했다.

 

작은 시골 도시 동해로 온 이유에 대해 최 경장은 "부산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 범인은 부산지법 판결 이후 집행유예 기간 중 직업을 구하려는 노력 없이 이곳 저곳 떠돌다가 경상남도 통영시에 거취를 정하고 막노동을 하다가 지난 2월 동해로 넘어왔다. 동해에서도 변변한 직업 없이 막일을 해왔다"라고 밝혔다.

 

부산에서 묻지마 방화 후 재판과정에서 범인을 정신감정한 적이 있는가에 대해 그는 "부산경찰서에 알아본 결과 당시에는 초범이고 인명피해도 없었고 순간적인 방화행위로 간주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재판 진행과정에서 정신감정을 의뢰할 것으로 안다"고도 답했다.

 

앞으로 어떤 형을 받을지에 대해 최 경장은 "원한도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살인할 목적만으로도 중벌에 처해진다. 과거 전력도 있고 특히 공무집행하는 공무원을 무참히 살해하고 상해를 입혔기 때문에 정상을 참작할지라도 무기징역 내지 최고 사형에 처해질 것으로 안다. 판결은 진행돼봐야 아는 거고 현재는 사건 경위가 무엇보다 중요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끝으로 최 경장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많은 언론매체에서 국민의 알권리 충족차원에서 기사를 내보내고 있지만, 기자들은 사건 사고에서도 어느 누가 숨진 것에 표적을 삼으면서 연성화하는데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입장 바꿔 기자들 지인 중 누가 불의의 사고로 숨졌다면 어찌 하겠는가? 유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리기보다 취재에 혈안이 되는 모습들이 씁쓸할 따름이다"고 전했다.

 

이어 "빈소나 병원에 찾아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민감한 상태인 유가족과 보호자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취재에 각별히 주의해 주길 당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영정 앞에서 유가족들 '망연자실'

 

30분간 동해경찰서 최호준 경장과의 취재를 마친 후 23일 새벽 12시께 숨진 남 아무개씨 빈소가 마련된 동해전문장례식장을 향했다. 남씨가 안장된 장례식장은 특실. 하지만 슬하의 1남 1녀와 남편, 할머니 밖에 없어 빈소가 썰렁해 보였다. 반면 다른 분향소에는 2구의 시신이 안장돼 있었는데 문상객들이 줄을 이었다.

 

고인은 평소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늘 해맑은 웃음을 보여 가족은 물론 시청을 방문한 시민에게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영정사진도 웃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고 울음을 터트릴 수 없다는 유가족들의 한탄 섞인 말을 들으며 고인의 명복을 비는 절을 했다. 분향소에서는 울음도, 절규도 들리지 않았다. 특실 분향소가 빈 것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망설이다가 어렵게 신분을 밝히고 유가족들의 심정을 들으려 했으나 완강히 거부했다. 주위에 있던 사람에게 물었더니 "언론사에서 많이 왔다갔는데 이 분(고인)이 안장된 뒤로부터 누구 하나 말도 꺼내지 않고 자녀들도 얌전히 있어 안타까웠다"고 전언했다.

 

 

그 후 어렵게 고인의 남편 백 아무개씨의 심정을 들을 수 있었다.

 

백씨는 "지금 말할 기분 아니다. 심정이 어쩔지 몰라서 물어보냐?"며 "지금 마음 같아서는 범인 최 아무개가 법의 심판을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서 "봐라, 영정 사진 보면 죽은 이 같으냐? 몇 시간 전만 해도 같이 밥 먹고 얘기한 사람이 별안간 숨졌다는데 믿겨지지 않는다. 아이들을 볼 낯이 서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백씨는 또 "이런 범죄가 한두번도 아니고 미리 예방 못한 지자체에도 불쾌하다"며 통곡했다.

 

고인이 된 남씨는 24일 아침 발인해 하늘정원에 장지한다.

 

김학기 동해시장은 22일 동해시청 직원들에게 "먼저, 전 직원이 함께 애도를 표하고 쾌유를 빌자"고 말한 뒤 "관공서 담장 허물기로 시민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려고 많은 지자체가 시행하고 있는데 이런 강력범죄를 예방할 대비책을 강구하지 못한 게 안타깝다"고 전했다.

 

또한 "비록 뒤늦게나마 직원들의 고충을 듣고 실태파악에 나서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직원들의 재산 및 신변보호책을 강구하면서도 시민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중소도시라고 해서 더 이상 치안안전지대가 될 수 없는 사건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각박한 대도시에 비해 시골 도시 주민들은 이웃사촌 정을 나눠가며 옆집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몇 개인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안다.

 

한편 강원도에서도 강력범죄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2007년 10월 5일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 한 업체 냉동창고 안 폐수 집수조에서 아직까지 신원을 파악 못한 40대 추정 남자가 변사체로 시청 공무원에게 발견됐다. 그 당시 시체는 심각하게 부패돼 최소한 숨진 지 10일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될 뿐 수사에 진척이 없었다.

 

이보다 앞선 2006년 3월 14일 망상동 약천마을 우물안에서 알몸인 상태로 부패한 학습지 교사 김 아무개(24) 여자시신이 발견됐다. 경찰은 김씨가 누군가에 의해 성폭행 당한 뒤 살해돼 망상동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가하면 강원도 양구군에서는 묻지마 살해사건이 불과 3개월 전에 일어나기도 했다.

 

지난 4월 26일 양구시내 공원에서 운동 중이던 여고생이 흉기로 찔러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아무나 죽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미연에 경찰이 막을 수 있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여고생이 이유 없이 무참히 살해당하기 이틀 전인 4월 24일 같은 장소에서 부녀자를 흉기로 위협하며 난동을 벌인 사건이 있어 순찰만 강화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태그:#묻지마 살해사건, #동해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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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강원도 동해시에 살고, 강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휴학중인 노형근이라고 합니다. 주로 글쓸 분야는 제가 사는 강원도내 지역 뉴스 및 칼럼 등 입니다. 모든 분야를 아울려 작성 할 수 있지만, 특히 지역뉴스와 칼럼을 주로 쓸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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