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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한의 계곡과 정자.
 망중한의 계곡과 정자.
ⓒ 오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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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뒤 세상은 깨끗하고 맑다. 자연의 물상도 곱디곱다. 말갛게 씻긴 진한 여름 향기가 가슴팍을 때린다. 29일 오후 살랑거리는 바람을 안고 무등산으로 달려갔다. 목적지는 원효사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풍암정'.

광주에서 풍암정까지는 승용차로 약 30여분 소요. 이곳을 찾아가는 길은 크게 세 갈래가 있다. 각화동에서 망월동을 거쳐 광주호를 거쳐 충장사 방면으로 가는 길과 산수동 오거리에서 무등산 잣고개를 거처 광주호 방면으로 가는 길, 그리고 화순에서 담양 소쇄원 앞을 거쳐 충장사 방면으로 들어 가는 길 등이다.

각화동에서 출발하여 광주호를 지나 충장사를 향해 내려가다 충효동 분청사기 전시관으로 접어들어 그 전시관 앞을 지나 길 양편에 늘어서있는 단풍나무 길을 따라 올라가니, 아담한 저수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풍암 저수지다. 그런데 그 저수지, 단순한 저수지가 아니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온몸으로 아우르고 있는 투명한 거울이다. 비온 뒤 맑은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뭉게구름이 저수지 수면에 자리 쫙 깔고 누워 저수지를 온통 하얀 물안개 세상으로 만든다. 장관이다. 시원한 여름 낭만의 극치다. 벌써 많은 차량 행렬이 길을 막고 있다.

저수지 입구에서 부터는 걸어서 가야한다. 아예 가드레일로 막아 놓았다. 먹을거리 파는 트럭과 오토바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먼저 반기며, 여행의 맛을 뻿는다. 

저수지 둔덕에서 몇 컷 하고, 저수지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풍암정을 향해 간다. 본격적인 단풍나무 길을 따라 약 200여m를 더 거슬러 올라가니, 왼쪽 계곡 건너편 산 아래 숨은 듯 정자 하나가 도 닦는 신선처럼 자리하고 있다.

정자 아래 계곡을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는 물.
 정자 아래 계곡을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는 물.
ⓒ 오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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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건너편 울창한 소나무 아래 하늘보물처럼 자리잡고 있는 풍암정.
 계곡 건너편 울창한 소나무 아래 하늘보물처럼 자리잡고 있는 풍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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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옆의 거송과 거대한 바위.
 정자 옆의 거송과 거대한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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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아래 계곡의 풀숲
 정자 아래 계곡의 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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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한켠에 오롯이 자리잡고 있는 고기들의 피난처.
 계곡 한켠에 오롯이 자리잡고 있는 고기들의 피난처.
ⓒ 오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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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풀숲과 이름모를 나무들의 초록물결, 빨간 입술을 조금 드러내놓고 방긋 웃으며 반기는 예쁜 얘기단풍 군락, 향토색 짙은 바닥의 모래, 쭉쭉 늘어진 칡넝쿨 가지들의 진한포만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길을 가다 왼쪽으로 빠지는 소로가 있어 조금 내려가니, 등나무 의자와 돌계단 등 휴식공간이 이슬 머금은 얼굴로 다정하게 인사하고, 사람 키 보다 큰 풀들과 마음이 쉬는 의자 같은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계곡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이틀간 내린 비로 물이 강을 이룬다. 얼굴이 훤히 보이는 명경지수다. 풍덩 빠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뒤로는 숲이요 앞으로는 맑은 계곡이다. 큰 소나무들과 너럭바위들, 차고 시리고 맑은 물속을 예 앉아서 바라본다.

어떤 이는 계곡 물에 발 담그며, 연인과 사랑의 눈빛을 주고받고 있고, 어떤 이는 같이 온 일행들과 소주 잔 기울이며 취기 가득한 정담을 나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미리 정자를 차고 앉아 한바탕 신선놀음을 즐긴다.

정자는 하늘이 내려준 보물처럼 계곡의 한켠에 신선의 집처럼 또아리 틀고 있다. 아름드리 적송과 거대한 바위들이 정자를 감싸 안고 있어 더욱 신비스럽고 넉넉하고 아름답다. 정자란 본시 정자에서 바깥 풍광을 감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풍암정처럼 계곡 건너편 울창한 소나무 아래 적당히 들어앉은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또 다른 멋으로 다가온다.

풍암정은 1990년 11월 15일 광주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다.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원효계곡 하류에 있다. 김덕보는 1571년(선조 5) 광주에서 태어나 인조 때까지 살았던 인물로, 호는 풍암이다.

하늘, 산, 구름 온몸으로 품고 있는 풍암 저수지.
 하늘, 산, 구름 온몸으로 품고 있는 풍암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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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암정 산책로 위 산등성에 있는 지진측정소.
 풍암정 산책로 위 산등성에 있는 지진측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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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큰형 덕홍이 금산싸움에서 전사하고, 중형 덕령이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하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이를 슬퍼하여 세상을 등졌다. 그 후 모든 것을 잊고자 광주 무등산의 수려한 원효 계곡을 찾아 터를 잡고 이 정자를 지어 이 곳에서 도학과 경륜을 쌓으며, 은둔생활을 하였다. 사후 영조 때가 되어 그의 두 형과 함께 의열사에 추배되었다.

정자에는 '풍암정사'라고 쓰인 현판과 정홍명이 쓴 풍암기, 그리고 임억령, 고경명, 안방준, 정홍명, 김덕보 등의 제영을 새긴 판각이 걸려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 곳에는 일찍부터 이름있는 문인들이 출입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2칸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좌우에 1칸씩의 온돌방을 두었다. 지붕은 팔작기와이고 처마는 홑처마이다. 큰 덤벙주초를 놓고 배흘림을 보이는 원형 기둥을 세웠는데, 중앙에만 팔각의 기둥을 세웠다.

문은 띠살문이며 우물마루를 구성하였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중앙은 우물천장으로 처리하였다. 우측에 거실 1칸을 두고 앞면과 좌측은 판자마루로 돌렸다.

이곳엔 사람의 눈을 만족하게 할 만큼 뛰어난 기암절벽은 없다. 그러나 원시의 고요가 오롯이 살아있는 느낌이다. 영락없이 강희안이 그린 <고사관수도>의 한 장면이다. 사람들은 물을 통해 풍경을 관조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을 관조하게 된다.

이곳에 머물던 그는 오래지 않아 형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원망을 삭이고 흔들림 없이 고요한 마음을 갖게 되었으리라.

송강 정철의 넷째아들 정홍명은 그의 풍암기에서 풍암정의 모습을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기암괴석 사이에 1백 그루 정도의 단풍나무가 끼여 있어 흐르는 시냇물조차 붉을 정도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두드러지지 않고 나무인 듯 바위인 듯 들어앉은 풍암정. 담은 있는 듯 없는 듯 다만 뒤편에만 기와를 얹은 담장을 낮게 두르고 좌우에는 집 채 만한 바위로 담장을 삼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가만히 정자 마루 끝에 걸터앉는다. 정자 바로 앞으로 흐르는 원효 계곡의 맑은 물소리와 정자 뒤에 서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뿜어내는 솔 향이 세속의 욕망과 시름을 절로 씻어 낸다. 마음에 사악함이 전혀 없는 사무사(思無邪)의 경지 그대로이다.

세상을 벗어나 초연하게 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만 마루에서 일어선다. 병풍림처럼 정자를 에워싸고 있는 무등산 소나무들이 유난히 푸르다.

무등산 원효계곡을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는 하얀 포말들.
 무등산 원효계곡을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는 하얀 포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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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풍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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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인 공무원으로서, 또 문학을 사랑하는 시인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또 다른 삶의 즐거움으로 알고 사는 청소년선도위원으로서 지역발전과 이웃을 위한 사랑나눔과 아름다운 일들을 찾아 알리고 싶어 기자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우리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아기자기한 일, 시정소식, 미담사례, 자원봉사 활동, 체험사례 등 밝고 가치있는 기사들을 취재하여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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