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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구리남양주지회가 주최하는 ‘2008 교육문화아카데미’가 도농중학교(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 시청각실에서 열렸다.

 

‘입시 폐지 - 대학 평준화 운동의 의의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한 정진상 교수(경상대)의 강연에는 지역 내 교사와 주민 60여 명이 참석했다. 강연은 오후 6시부터 9시경까지 시종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학교는 많은데, 교육은 없다"

 

세계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대학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교육은 없는 나라라는 말로 정진상 교수는 입을 열었다. 우리가 지닌 교육열도 사실은 ‘좋은 대학 가기 위한 욕심’ 일뿐이라며 그는 ‘입시 교육’이라는 용어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다.

 

좋은 대학 가기 위한 입시의 수단일 뿐이지, 그것을 ‘교육’이라 붙이기조차 민망하다는 말이다. 무려 36번이나 입시 제도를 바꾸어 오면서도 근본적인 교육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정 교수는 "대학 평준화가 이뤄지지 않고는 그 어떤 교육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현재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장으로 있는 정 교수는 아직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대학 평준화’라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프로그램’으로 말을 바꾸어 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대학 평준화에 공감하는 단체 수준의 운동을 타진하였으나 여러 한계를 느껴 실제 학부모와 주민들 속으로 파고드는 대중운동의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2007년 29일간에 걸쳐 전국 60개 도시를 자전거로 순회하는 2,200㎞의 장정에 올랐다 한다.

 

무릎을 맞대며 이야기 하다 가장 자주 받은 질문인 '대학 평준화의 가능성'에 대해 그는 “가능하다. 유럽의 실제 사례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은가?”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는 우리 나라에서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교육의 세 주체가 좀 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 가운데서도 ‘입시 교육’의 비인격적 경쟁에 고통을 가장 심각하게 받고 있는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나서는 것이 관건이라면서, 이번 촛불 시위를 통해 그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그는 이를 “동물적 본능”이라 했다)인 잠 잘 수 있는 “잠권”과 용변을 편히 볼 수 있는 “똥권”마저 위협받고 있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권리에 눈을 뜨고 그것을 향한 노력을 모을 때 요원해 보이는 우리나라의 ‘대학 평준화’도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를 위해 반성할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심하게 말해 지금 우리 교육의 현실은 “한창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이 공모하여 ‘입시’라는 고통을 강요하고 있으며, 그 집행자격인 교사도 그러한 입시 경쟁의 하수인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또 지역사회에서도 지자체 수준에서 “서울대 입학을 높이기 위한 학사 건립, 장학금 지급” 등으로 입시 경쟁을 가열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입시 경쟁에는 학부모들도 예외가 아니다. 계층을 불문하고 학벌 경쟁에 종속되어 있는 실정이다.

 

특히 새 정부의 ‘4.15 교육 자율화 정책’이란 것은 ‘자율’을 빙자하여 과도한 경쟁을 제어해오던 안전망들을 제거하여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하는 데 있다. 얼핏 외형적으로는 학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정부가 나서서 입시경쟁을 부축이고 있는 꼴이라며 그는 비판했다.

 

대학 평준화는 어떻게?

 

유럽의 실시 모델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배치하면 된다고 했다. 우선 국립대부터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프랑스처럼 학생이 기본적인 자격시험(바깔로레아의 경우 전체 학생 중 70%가 통과하고 있으며 향후 100% 합격을 목표로 하고 있는 수준의 시험)을 치른 후, 학생들이 희망하는 대학에 입학하게 한다.

 

국가가 대학 과정 이수를 확인하며, 어느 대학을 다녔는지는 기재도 안 되고 기재에 대한 관심도 없게 된다. 프랑스의 경우 1968년 혁명 때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격렬한 시위를 한 후 입시경쟁 교육체제에서 벗어나 지금과 같은 대학 평준화가 이뤄지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럽에 비해 쉽지 않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사립대학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또한 학벌에 대한 완강한 구조적 문제도 만만찮은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우선 국가가 관리할 수 있는 국립대부터 통합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물론 그것은 우리나라 대학 전체를 국립대화 한다는 목표를 전제로 한다.

 

이를 위한 두 가지 방편으로 첫째, 국립대 무상 교육을 실시해 사립대와의 경쟁력을 갖추고, 두 번째로는 대학을 학부 중심이 아니라, 대학원 중심 체제로 개편한다. 그리고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으며 대중적인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은 의학, 법학, 약학 등의 분야를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상위에 두어 국가가 관리한다.

 

이는 서울대를 없앨 경우, 세칭 차순위 일류대라 할 수 있는 연고대가 그 자리를 여전히 차지할 것이라는 우려를 방지하는 방안이 된다. 전문 분야 과정이 빠진 사립대는 더 이상 우위를 점할 수 없으며 결국은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현행 대학은 ‘간판과 전공’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데 사실 기초학문 분야부터 충실히 할 필요가 있다. 현재처럼 대학에서 응용분야 학과에 치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술’이라는 분야는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이미 변화하여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이라 오히려 대학은 기초학문을 충실히 하여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기르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무얼 해야 하나?

 

대학 평준화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대중 조직운동보다는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지역운동을 펼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정교수는 제시했다. 지역별로 ‘초동주체’라 할 수 있는 활동가를 중심으로 새로운 ‘판’을 만들어 나가며, 궁극적인 주체는 학생들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며,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십대 청소년들이 이번 촛불 문화제에서 보여준 높은 관심과 참여는 그 가능성을 보여 주는 단초라고 했다. 사실 이번 십대 청소년들의 촛불 문화제는 사회적 관심인 미국산 쇠고기 문제보다는 ‘0교시 수업’과 같은 교육문제들에서 촉발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러한 대학입시에 대한 새로운 ‘판’을 만들기 위해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를 설치하고, 한번 가입으로 영구 후원이 되는 (학생 1천원, 성인 1만원 수준) 대중 조직 운동을 펼쳐나가려 한다고 했다.

 

종래의 시민단체 조직이 CMS 등을 통해 매달 지속적으로 후원을 하게 되어 부담을 주는 점을 감안하여 일인 일회로 영구 후원의 저변을 넓혀 나가되, 일년 단위로 소진되는 재정의 동력을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회원들이 새로운 회원을 가입시키는 ‘사람 중심’의 운동 방안을 소개했다.

 

강연장의 누군가가 ‘다단계 피라미드식’이라고 하여 잠시 웃음이 터졌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다단계 방식이 맞다고 인정하며, 다만 종래의 다단계 판매 방식이 최종 가입자에게 불리함을 주는 데 비해, 이 운동의 다단계 조직방안은 최종 가입회원일수록 더 혜택을 많이 보게 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설명했다.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http://edu4all.kr에 접속하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

 

궁금한 점?

 

질의 1. 국립대가 통합이 되어도 특정지역(서울)으로 학생들이 몰릴 경우?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가 기재되지 않아, 학벌이나 간판이 무의미하게 돠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몰리는 일은 완화될 것이다.

 

질의 2. 학생이 희망하는 대로 입학하되, 그 이수 과정을 관리한다는 점에서 과거 시행되었던 ‘졸업정원제’와 어떻게 다른지?

 

과거의 졸업정원제는 대학이 졸업을 관리하였으나, 새 제도에서는 진학 대학이나 이수과목의 선택, 이수에 대한 용이성 등을 고려하여 진학과 수강을 학생 스스로가 선택한다는 점에서 과거 일방적으로 일정 비율을 정하여 대학과 국가가 관리하던 졸업정원제와는 차이가 있다.

 

질의3. 특정 대학으로의 집중은 해소되겠지만, 특정 학과로 집중되는 경우?

 

 과다한 집중으로 교육 여건이나 교육의 질이 하락할 경우, 또 이수 탈락자가 과다히 발생하게 되므로 학생들이 스스로 과도히 집중되는 것을 피해갈 것임.

 

질의 4. 학벌과 간판 중심의 대한 진학 풍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필요 이상의 대학 진학이 많아지고, 이로 인해 대학 교육의 질이 하락되는 문제는?

 

 많은 국민이 대학을 이수하는 사실 자체는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대학에 다니고 싶지 않은 학생이나 이수 능력이 모자란 학생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 절실하다. 이는 노동시장의 문제와 연관된다. 교육문제가 선결되면 학벌 사회의 문제점도 개선될 것이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 ‘학력차별 방지법’ 같은 입법사항도 필요하다.

대학의 하향평준화를 우려하는 말에 대해, 현실적으로 우리의 대학은 더 이상 하향화할 데가 없다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대안이 없지 않은가.

 

질의 5. 평준화 정책에서 수월성 교육에 대한 보완책은?

 

 먼저 고등학교 평준화와 대학 평준화는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대학 교육은 전문성 교육기관이며, 대학 평준화가 되면 다양한 교육을 통해 특성화된 교육이 가능해지며, 이를 통해 수월성 교육도 그 효과가 높아질 것이다. 우리의 수월성 교육 문제는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보다는 학교부터 만들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학교보다는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학벌없는 사회’

 

강연을 듣고난 후 참석자들은 대체로 그 취지에는 공감하되,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무엇보다 학벌 위주의 사회 풍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대학 평준화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에서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점을 알고 있어, ‘대학 평준화’는 ‘학벌 없는 사회 실현’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교육개선의 쌍두마차임을 지적했다.

 

이를 위해 이번 교육문화 아카데미를 주최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구리남양주지회에서는 ‘대학 평준화’ 강연에 이어 오는 6월 27일(금) 김상봉 교수(전남대)의 ‘학벌없는 사회’라는 주제의 강연회를 마련한다고 한다.

 

교사나 학생, 일반 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교육문화아카데미는 도농중학교(도농동) 시청각실에서 오후 6시부터 열린다. 자세한 사항은 ‘전교조 구리남양주지회 031-559-5574, 010-6682-3298)로 문의하면 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남양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학 평준화, #정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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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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