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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57세의 한 가정의 가장, 그는 퇴직 후 아내와 함께 조그마한 가게 하나를 열었다. 이대로 손을 놓아 버리기에는 아직 그가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여느 때보다 열심히 일하는 그, 그는 바로 나의 아버지다.

 

아버지의 6년간에 걸친 해외 근무 때문에 우리 가족은 떨어져 지내야 했지만, 그 덕에 남부럽지 않게 먹고 입을 수 있었다.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고,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런 퇴직으로 우리 가족은 모든 것을 바꿔야 했다. 유명 커피숍의 5000원 짜리 커피 대신 300원 짜리 자판기 커피, 두둑한 지갑 대신 동전 몇 개가 들어 있는 지갑….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여 생활 패턴을 모조리 바꿔야 했다.

 

학교에 갈 때 용돈이 있냐고 물어보시면서 만 원짜리 몇 장을 쥐어주시던 분이었지만 아버지가 퇴직하신 이후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하시는 어머니. 서로 말은 안했지만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제 막 시작한 가게라 손님이 많을 때도 있고, 아예 없을 때도 있다. 또 고생한 만큼 돈이 많이 벌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는 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가족이랑 함께 사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하신다.

 

 
아래는 아버지 권오윤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처음에 퇴직하고 나서 어떠셨어요?
"처음에? 그냥 너무나 막막하고... 한국에 들어가면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뭐부터 시작해야 하나. 다시 직장을 찾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고 그러니까 막막했지. 정말... 너희 엄마도 또 고생해야 하니까 그것도 미안했고, 너희들한테도 미안하고."
 
- 지금 가게는 잘 되세요?
"뭐, 손님이 많은 날은 가게가 꽉 차도록 많고, 없는 날은 정말 한 테이블도 (손님이) 없을 때도 있어. 이제 막 시작한 건데 손님이 많을 리가 없지. 그래도 너희 엄마랑 6년을 떨어져서 지냈는데 요새는 아침, 저녁 매일 붙어있으니까 너무 좋아. 물론 싸울 때도 있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해."
 
- 힘들지는 않으세요?"
"힘들지, 일이 고되니까. 고된 일에 비해서 돈을 그렇게 많이 벌지는 못하니까 더 힘들게 느껴지지. 그런데 뭐 이겨나가겠지. 지금처럼 열심히 살면 곧 다 잘 풀릴 거야(웃음)."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복학을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오빠는 처음엔 갑자기 어렵게 된 가정 상황이 너무 피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아래는 오빠 권혁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처음에 제대하고 나서는 어떠셨어요?
"처음엔 제대를 했는데, 제대 전보다 형편이 더 어려워졌으니까 좀 뭐랄까, 짜증도 좀 났는데 이제는 내가 군대도 갔다 왔고 철이 좀 든 건지, 아버지 어머니도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일하시는데 내가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 이런 상황이 힘들진 않으셨어요?
"힘들었지. 하고 싶은 것도 맘대로 못하고. 근데 내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지금 제일 힘든 건 아버지고 또 어머니시니까 내가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도 부모님이 이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주시니기까 고맙고, 감사하고…."
 
남편의 퇴직, 군대 간 아들의 제대, 대학교 3학년인 딸. 처음에 아버지의 퇴직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머니는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하신다. 아래는 어머니 이지연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처음에 아버지한테 퇴직 이야기를 듣고 어떠셨어요?
"처음에? 처음엔 진짜 어떻게 해야 하나, 뭐라도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거야. 그냥 딱 막막했어. 처음 너희 아빠한테 그 얘기(퇴직)를 들었을 때, 숨이 딱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고... 이제 혁이(아들)도 제대하면 복학해야 하고, 너도 그렇고. 대학생이 둘이나 되니까 등록금도 그렇고, 앞으로의 생활도 막막했고 그랬지."
 
- 지금은 어떠세요?
"지금은 뭐, 아빠랑 같이 조그만 가게를 시작하면서, 물론 일이 고되고 힘들 때도 많지만, 너희들도 투정 안 부리고 잘 따라와 주고, 도와주고 그래서 너무 고맙고 그래. 또 너희 아빠랑 매일 붙어 있으니까 옛날보다 이런 저런 대화도 많이 하게 되고 그러니까 뭐 즐거워(웃음)."
 
-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긴 뭐. 옛날에 너 어렸을 때 너희 아빠가 사업에 실패했을 때도 잘 이겨내서 지금까지 왔는데 뭐. 엄마는 지금 우리 상황이, 차를 타고 가면 터널을 지나게 되잖아? 그 어두컴컴하고 긴 터널만 통과하면 이제 밝은 빛을 보게 되잖아. 지금 우리 가족은 그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뿐인 것 같아. 우리 가족 모두가 힘들지만 지금처럼 이런 상황까지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좀 더 참고 열심히 산다면 다시 다 잘될 거야."
 
 
힘들 때 가족의 사랑이 제일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지금 우리 가족은 어머니의 말처럼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터널이 조금 더 길어지고, 조금 더 어두울 지라도 언젠가는 그 터널을 통과하여 밝은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은 희망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우리 가족은 그렇게 서로를 생각하고 의지하고 사랑하며 그 터널을 묵묵히 지나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가족 인터뷰> 응모글


태그:#우리 가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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