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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여름날을 만끽하기 좋은 5월의 월요일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홀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기로 마음먹고 카메라를 챙겨 본교(경북 안동대학교) 내에 위치한 역동서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동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단어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 하회마을, 안동 찜닭, 안동댐, 도산서원, 병산서원 등등. 그렇지만 미처 알지 못한 곳에 진정한 옛것이 살아 숨쉬고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역동서원(易東書院)이다. 안동에 있는 서원 중 하나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열명 중 아홉명은 도산서원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안동 최초의 서원은 도산서원이 아니라 이곳 역동서원인 것을 과연 몇이나 알고있을까?

 

도산서원은 1574년 퇴계 이황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림이 중심이 되어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창건한 것이다. 하지만 이곳 역동서원은 도산서원의 건립일 보다 4년 빠른 1570년 퇴계 이황 선생의 발의로 고려 말기의 학자 역동(易東) 우탁(禹倬)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역동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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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기웅
 
중국에서 주역(周易)이 전해졌을 때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나 역동 선생은 한달 여 만에 주역의 이치를 완전히 알아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역동'이라는 호를 지었다고 한다.
 
역동 선생은 1684년 사액을 받은 후 1868년 대원군 서원 철폐 때 훼철 되었다가 1969년에 현재 장소에 복원됐다. 원래는 낙동강 상류인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오담에 창건하였으나, 1969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여 복원하였고 서원 옛터는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었다. 그후 송천동이 안동대학교 교지로 편입되면서 1992년부터 안동대학교가 위임 관리하고 있다.
 
본격적인 과거로의 여행을 위해 역동서원으로 들어서기 전, 역동 우탁선생 기념비 앞에 섰다. 기념비에는 역동 우탁 선생의 시조 한 작품이 실려 있었다. 제목은 '탄로가(歎老歌)'로서 우탁선생의 시조 가운데 단연 최고의 작품이다. 누구나 한 번 태어나면 다시 모래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지사. 그 자연의 섭리를 막대와 가시로 막으려 하는 표현이 무척 익살스러울 뿐더러 우탁선생의 세월에 대한 한탄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탄로가(歎老歌) - 역동 우탁
춘산(春山)에 눈 녹인 바람 건 듯 불고 간데 없다.
적은 덧 빌어다가 머리 위에 불리고저
귀 밑에 해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이 제 몬져 알고 즈럼길로 오더라.
 
봄 동산에 눈 녹인 바람 불더니 어느새 사라지고 없구나.
그 봄바람을 잠깐 빌려다가 이 하얀 머리 위에 불게 하고 싶다.
그리하여 벌써 몇 해가 된 귀밑에 서리 같이 희여진 머리칼을
눈 녹이듯 녹여 검게 하고 싶구나.
 
한 손에 막대를 쥐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쥐고
늙는 길을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을 막대로 치려 했더니
백발이 제가 먼저 알고서 지름길로 오는구나.
 
 
서원의 현관인 입도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면서부터 내가 왠지 선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역동서원은 깔끔하게 정돈 된 사방이 탁 트인 그러한 서원이었다. 서원의 옛터가 안동댐의 건설로 수몰되 이곳으로 이전되어 복원되긴 했지만, 그 당시의 풍취를 느낄 수 있는 그러한 탄식을 자아내게 하였다.
 
입도문(入道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명교당(明敎堂)이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동서 양쪽에 1칸의 협실을 내고 중앙 대청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곳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강론 장소로 사용 되었다. 양쪽으로 나뉜 협실의 왼쪽은 직방재(直方齋) 오른쪽은 정일재(精一齋)로 불린다.
 
 
명교당을 등지고 입도문을 본 기준에서 좌우측으로 건물이 한채씩 있다. 이 두 건물은 원생들이 기숙을 하면서 강학을 하던 곳이다. 먼저 좌측에 있는 건물은 사물제(四勿齋)로써, 현판의 의미를 살펴보면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말라'고 하는 사물(四勿) 즉, 위의 네 가지 의미를 담고있다.
 
 
우측에 있는 건물은 삼성제(三省齋)이다. 삼성제…. 여기서도 현판을 보면 알겠지만 이름에서 세가지의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1. 남을 도와주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만큼 도와주었는가?
   건성이 아니라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2. 친구와의 교제에 혹 신의 없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하여 거짓말을 했다면 신의를 해치는 것이다.
3. 스승에게 배운 것을 잘 익히었는가?
   가르침을 받으면서 공부를 게을리 하면 결국 그 도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고, 잘못된
   지식을 다시 제자에게 전하게 된다.
 
사람으로서 사람됨의 도리를 다하였는지, 혹은 학문을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였는지 되돌아 보게 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했다. 나 또한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는지,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았는지 돌아봤다.
 
발걸음을 옮겨 역동서원의 제일 안쪽에 위치해 있으며 역동 우탁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상현사로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상현사는 날 반겨주지 않았다. 굳게 닫혀있는 나무문이 나를 돌아가라고 하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 문기웅
 
5월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떠났던 과거로의 여행은 여기에서 끝났다. 몇 년간 본교에 있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냥 지나쳐만 갔던 역동서원. 어쩌면 매일 보고 지나쳐 버리기에, 항상 옆에 있는 익숙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무관심 속에 봐왔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또한 이기회를 더불어 이 기사를 읽는 모든 독자들께서 한 번쯤 와서 느껴보고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참고 : 경북 안동대학교 박물관(http://museum.andong.ac.kr)
         관람시간 : - 하계 : 09 : 00 - 18 : 00
                        - 동계 : 09 : 00 - 17 : 00
                        - 토요일 : 09 : 00 - 13 :00
         교통편(대중교통 이용시) : 서울(동서울 터미널) → 안동 시외버스 터미널 → 
                                             천전(11번)/길안(28번)행 시내버스이용 박물관 도착
                                             (안동시외버스 터미널 출발시 약 20분 소요)   
                  (자가차량 이용시) :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서안동 톨게이트 →
                                              영덕방면으로 34번국도를 따라 10km → 박물관
                                              (서울에서 출발시 3시간 소요) 


태그:#안동, #안동대학교 , #역동서원, #역동우탁선생, #문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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