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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어촌, 미포가 있다. 가끔 이곳까지 새벽 다섯시에 산책을 나온다. 이곳에 오면 새벽 다섯시는 대낮처럼 밝혀 놓은 등대 불빛과 집어등과 해변의 유흥가의 상가와 건물의 불빛에 불야성이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백사장 끝에 있는 포구, 미포는 천년 어촌이다. 이곳의 방파제에서 출항하고 귀항하는 배들을 관리하는 어촌계 사무소가 있다. 
 
오륙도가 떠 있는 바다 위에는 녹등과 항해등을 밝히고 입항하는 배들과 출항을 서두르는 배들의 엔진 소리가 시끄럽다. 마침 우유빛 여명 속으로 빠른 속력으로 달려오는 배 한척에서 아주머니가 내렸다. 기자는 남성들만 고깃배를 탄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탓에 약간 놀랐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어촌에서는 용왕의 노여움으로 인해 배가 사고를 낸다고 생각해서, 고기잡이 배에는 왠만해서 여성을 태우지 않았다.
 
문득 호기심에 어구를 챙겨 배에서 내리는 어부에게 물었다. 중년의 어부 아저씨는, 요즘은 아주머니들이 바다가 나가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힘든 뱃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라고 덧 붙였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아저씨는 아무리 뱃일이 힘들어도 여성과 배를 타고 나가는 것은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말씀 하신다. 곧 새벽의 여명을 뚫고 통발어선 한척이 바다로 나가고 다시 또 통발어선 한척이 포구에 도착했다. 이번 배에서 내린 분도 아주머니와 아저씨였다. 
 
이업사/이업사/ 이여도사나/ 우리 배는 잘도 간다/ 비새 날 듯 참새 날듯/ 우리 배는 잘도 간다/ 가시나무 무자귀에 우리 배는 잘도 간다/ 집에 들면 죽자세라/ 난데나문 이젓이라/ 이엿사 이엿사 이여도사나/ 우리 배는 잘도 간다.
'제주지방, 배 젓는 노래'
 
 
어구에 고기를 담아서 배에서 막 내린 생선이 너무 싱싱해서, 사진을 찍자, 사진만 찍지 말고, 고기를 싸게 해 줄테니 사라고 말씀하셨다. 싱싱하지만, 아귀는 가정에서 장만하기도 힘들지만, 조리가 쉽지 않아서, 우물쭈물 웃기만 했다. 아주머니는 묻지도 않았는데, 어젯밤에 주인 양반과 배를 타고 나가서 이제 돌아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배에서 방금 내린 고기들이 너무 싱싱해서 마치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이 얼음 속을 헤엄치는 것처럼 보였다.
또 다른 통발 어선에서 새벽 출항 준비로 아저씨와 아주머니 두 분이 큰 소리로 이야기하며 어구 손질로 바쁘셨다. 두 분의 말소리는 곧 배의 시끄러운 엔진 소리에 삼켜져서 잘 들리지 않았다. 거친 파도를 헤치며 고기를 잡는 일은 남성들이라도 힘들다. 그러나 어부란 직업 꼭 남성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현재 세계 대양에는 많은 여성들이 어선뿐만 아니라, 심해와 원양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의 고깃배에 여자를 태우지 않는다는 풍속은 이제 시대에 따라 많이 변한 것이다. 어쩜 미래의 바다는 보다 과학적인 시스템으로 고기잡이를 하게 되면, 보다 많은 여성들이 바다에 나가 일하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오랜만에 뚜우 울리는 무적 소리와 하얀 바다 안개 속에 멀어지는 부부가 고기 잡이 나간 바다를 보며 생각한다. 남편을 바다에 보내고 조마조마 가슴을 조리는 것보다, 부부 일심동체라고, 같이 파도와 싸우면서 고기잡이 하는 즐거움도 함께 나누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얼핏 든다. 모성의 상징은 바다. 바다는 무엇이든 다 포용한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넉넉한 마음의 바다를 모처럼 새벽 바다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떠올려 본다.

태그:#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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