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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낳아 이제 우리나이로 10살이다. 성년을 20살로 보면 반을, 모든 면에서 독립할 30살을 기준으로 보면 3분의1의 세월이 흘렀다. 또, 앞으로의 시간은 아이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할 부분이 많고 보면, 지난 시간은 참 중요한 시기였던 것 같다.

 

스킨십으로 아이가 사랑을 느끼게 해주다

 

결혼하자마자 아이 갖기를 희망했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결혼 1년이 지나고 어렵게 임신이 되었을 때, 기뻤다. 해서 임신기간 내내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보냈다. 그것이 아이에게는 최고의 태교였지 않나 싶다.

 

그런 마음으로 낳은 아이는 예뻤다. 아이를 낳은 후,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웃어 주고, 가급적 안아 주며 아이가 많이 웃고 많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했다. 

 

전반적인 아이의 발달단계가 있지만, 아이마다 성향이 있어서 어떤 면은 먼저 발달하고, 어떤 면은 다른 아이보다 좀 늦을 수 있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편안하게 아이가 자랄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아이는 정서적으로 안정된다.

 

예를 들면, 육아서적에 씌여진 대소변 가리는 시기를 보고 엄마가 민감하게 반응하며 아이가 좀 더 일찍 가릴 수 있도록 애를 쓰면,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게 스트레스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느긋한 엄마였다. '조금 늦으면 어때, 가릴 때가 되면 가리겠지'하며 시기에 얽매이지 않았다. 또, 집에 있을 때는 가급적 옷을 얇게 입히고, 기저귀를 안 채울 때도 많았다. 벽에도 낙서를 할 수 있게 커다란 달력을 붙여 놓았다. 가급적 자연스레 하고 싶은 대로 두었다.

 

잘 때는 주로 안아주면서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엄청나게 심한 음치일지라도 엄마이기에 유명성악가의 자장가보다 더 포근히 아이에게 전달되리라 생각했다. 10살이 된 지금도 아이는 가끔 엄마의 자장가를 듣고 싶어 하고, 자장가를 들으면서 잘 때 행복해 한다. 친정엄마가 내게 들려준 자장가를 그동안 딸아이에게 들려주었다. 아마 딸도 나중에 자신의 아이에게도 똑같이 그러지 않을까 싶다.

 

"잘자라, 우리 아가 앞 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양도 다들 자는데…."

 

노래로만 부족할 때, 옛날이야기나 엄마의 어릴 적 얘기를 해준다. 아이와 정서적으로 유대하며 편안하게 숙면을 취하게 도와준다. 요즘 잠자리에 들기 전 영어테이프를 들려준다는 얘기를 들으면, '오 마이 갓'이다. 아이가 좋아한다면 모를까 아니면 잠자리가 뒤숭숭할 것 같다.

 

책과 친구되기

 

인생을 살면서 필요한 양식은 체험이라면, 책은 간접체험이라 할 수 있겠다. 아이가 책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아이가 비디오나 텔레비전 만화에 맛을 들이지 않도록 아예 보지 않았다. 비디오를 보며 배우는 것이 있겠지만 득보다는 실이 많다 여겼다.

 

대신, 아이가 가지고 놀 수 있게 작은 크기의 재미있는 책을 아이의 장난감에 슬쩍 한 두 권 끼워 놓았다.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책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처음에는 그저 장난감처럼 취급하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려, 책도 너의 장난감 중 하나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녀, 그냥 가지고 놀아' 했다.

 

그러다 아이가 조금씩 커가면서 벽면에 '가나다…'와 '123…' 그림을 붙였다. 아이가 "이게 뭐야?"하며 관심을 가지면 "이건 뭐야"하고 대답했다. 딸아이는 글자는 제법 빨리 익혔다. 밖에 상점을 지나면 '저건 무슨 글자야'하고 물으면 대답하고 체계적이게 가르치지 않았지만 대충 글자를 깨우쳐 갔다.

 

아이가 글자를 깨우쳐 갈 때 쯤, 아이 아빠는 아이를 데리고 서점에 자주 다녔다. 돌아 올 때는 아이와 함께 고른 책을 한두 권 사오 곤 했다. 아이는 자신이 고른 책을 관심있게 봤다. 책을 다 보면 또 다시 아빠와 서점에 갔다. 아이는 아빠와 서점에 다니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을 봤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 분야 저 분야의 책을 광범위하게 보게 되었다.

 

반면에 숫자에는 약했다. 주위에서 "얼마 더하기 얼마는?"하고 물으면 아주 황당한 숫자를 대답해 아주 웃음을 자아냈다. 또, 오랫동안 손가락 발가락 동원하며 느릿느릿 수를 헤아렸다. 그럴 때도 '얘는 수에 약한 가봐, 대신 글자는 아주 잘 알아? 뭐든 다 잘 할 수 없지, 하나라도 잘 하는 게 어디야.' 의식적으로 눈높이를 낮추며 만족했다.

 

해서, 딸아이는 자신감이 넘친다. 칭찬만 받았지, 못한다는 말을 별로 들은 적이 없어(못 하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잘 하는 것을 칭찬하는 것) 밝고 긍정적이다.

 

지금도 학교에서 성적을 받으면 잘 할 때도 있고 못 할 때도 있는데, 아이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잘 하면 "엄마 오늘 나 무지 잘 했지, 좋다"이고, 못 하면 " 엄마는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맞춘 것이 틀린 것 보다 많잖아"하면서 성적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나 또한 아이의 성적표는 잘 하면 아 이 부분은 잘 하는 구나, 못 하면 이 부분은 좀 더 보충해야 겠구나 하는 의미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좀 더 부지런한 엄마이지 못한 아쉬움

 

요즘 엄마들은 참 부지런하다. 그런데 난 그렇지 못하다. 먹을거리도 먹을 때가 되면 다 먹게 되겠지 하면서, 이유식에 힘쓰지 않았다. 요즘 엄마들을 보면 고기를 갈고, 야채를 갈아 넣어 죽도 잘 끓여 주더만 난 그렇지 못했다. 그저 미숫가루처럼 필요한 걸 휙 갈아서 물에 타줬다. 아이가 야채를 싫어하면서 편식을 하는 것을 보면 내가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어땠을 까 싶다. 또, 눈이 나빠 안경을 쓰는 것을 보면 '당근 등 일찍 많이 먹이고 제 때 눈 검사를 했으면'이란 생각을 한다. 부모 둘 다 안경을 쓰면서 무심했다.

 

또, 아이가 하나여서 좀 더 많은 사람과 접하며 예절을 가르쳐야 했고, 좀 더 많은 세상을 보여 주면서 책이라는 간접체험 못지않은 직접체험을 시켜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 부분은 이제 내게 숙제로 남아 있다.

 

지난 10년 아이 덕분에 행복했다. 아이도 나를 엄마로 만나 행복했기를 바란다. 또한, 앞으로의 10년도 그러기를 바란다.


태그:#아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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