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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명이 넘는 누리꾼들 순식간에 참여'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 촛불 들고 거리로'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 순식간에 곤두박질'
'수입 쇠고기 파문, 급기야 국회 청문회로'

전통 미디어인 신문과 방송들이 연일 주요의제로 다루는 제목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 미디어 의제들은 전문 기자가 아닌 10대 고교생의 인터넷사이트 제안에서 촉발됐다. 이런 기막힌 현상을 오랜 미디어 학자들은 믿을까.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까.

이는 1970년대 초반 맥콤즈(M. McCombs)와 쇼(D. Shaw)에 의해 제기된 매스미디어 의제설정 효과이론을 뒤흔들만한 사건이다. 미디어 의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겐 연구재료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무명의 발화자에 의한 온라인상의 의제가 전통 미디어 의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맥콤즈와 쇼라도 더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전통 미디어 뒷북치게 하는 인터넷 위력 

<전남일보> 7일자 1면.
▲ 들불처럼 번진 촛불행사 <전남일보> 7일자 1면.
ⓒ 전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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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두 여중생(효순·미선양)을 보도한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의 영향력과 포털 사이트에 올린 한 시민의 제안서가 추동한 촛불 시위의 규모에서 그 위력은 이미 예고됐었다.

그 후 2006년 1월 제주도에서 촉발된 부실도시락 파문과 2005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연예인 X파일 사건', 2005년 6월 무명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확산되기 시작한 '개똥녀 사건' 등도 인터넷 미디어 수용자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들이이다.

이뿐만 아니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진위여부에 대한 논란 과정에서도 기존의 전통 미디어들보다 앞서 논의를 촉발시킨 것은 젊은 생명과학도들의 <브릭>이란 인터넷 사이트였다.

이들 초기 발화자 모두 전통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전문 기자들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명의 시민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검증을 함으로써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자신들만의 고유 소유권처럼 인식해 왔던 전통 미디어들의 의제설정권이 하루아침에 누리꾼들에 의해 침탈당한 언론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검증되지 않은 가짜'란 인식과 이념적으로 투영된 색안경을 쓰며 바라보기 일쑤였던 전통 미디어들도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는 온라인상의 의제를 슬그머니 의제에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흥미를 끌게 한다.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뒷북치기' 아니었던가. 그런 '뒷북치기'가 그들 사이에 횡횡하는 요즘이다.   

김성태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등 국내 미디어 연구자들은 최근 이러한 현상을 역의제설정(reversed agenda-setting) 또는 의제파급(agenda-rippling)이라 명명하고 있다. 획기적인 언론사적 혁명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이를 입증이라도 해보이려는 듯 2008년 5월 대한민국에선 미디어 수용자들의 혁명이 일고 있다.

종속자로 상정돼 왔던 수용자관 수정요구 '대세'

<경남도민일보> 7일자 인터넷신문 화면캡쳐
▲ 누가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나... <경남도민일보> 7일자 인터넷신문 화면캡쳐
ⓒ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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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정치권을 등에 업은 전통 미디어들은 인터넷 실명제에 이은 인터넷 종량제를 부추기고 있다. 심지어 인터넷 매체 기자들의 기자실 출입까지 차별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인터넷 매체와 이용자들은 매스 커뮤니케이션 의제설정의 주체로서 가능성을 더욱 입증해 보이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전통적 미디어의 의제설정에 늘 종속자로 상정돼 왔던 수용자관의 수정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인터넷 실명제 시행으로 다소 주춤했던 인터넷 위력이 다시 되살아났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의제파급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지 않은가.

인터넷에서 광우병과 대통령 탄핵 논쟁이 처음 시작된 것은 이미 지난 4월부터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를 비롯한 서명 사이트들에 광우병 쇠고기와 탄핵을 주제로 한 글이 올라오면서 각 포털사이트 주제 검색어로 '미국산 쇠고기', '탄핵' 등의 주제어가 지속적으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당시만 해도 보수언론을 비롯한 국내 전통 미디어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4월29일 MBC <PD수첩>에서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내용이 방영되면서부터 불길은 거세게 지펴졌다. 방송 내용이 나간 뒤 인터넷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내용의 청원 글의 조회 수가 폭발적으로 올라 순식간에 1백만명을 상회했다.

인터넷상에서 형성되어 파급되는 의제는 처음 한 익명의 발화에 의해 시작되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게시판, 댓글이나 퍼 나르기 등의 파급 채널을 통해 점차 확산됐다. 의제파급 현상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러더니 인터넷의 의제가 전통 미디어의 의제에 영향을 미치면서 연일 이슈화가 됐다. 이는 역의제설정의 전형적인 모델을 입증해 보였다.

인터넷 논쟁은 인터넷 매체뿐 아니라 청와대 홈페이지를 비롯한 정부홈페이지에도 번졌다.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의 미니홈피 방명록은 결국 4월30일 폐쇄 됐을 정도다. 실로 대단한 위력을 보여준 것이다.

보수신문 의제설정권 헤게모니, 인터넷에 '침탈'

<한라일보>7일자 1면.
▲ 제주까지 번진 촛불시위 <한라일보>7일자 1면.
ⓒ 한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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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온라인 논쟁에 이어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탄핵 시위 역시 전국적인 규모로 이뤄지고 있다. 서울 청계천 소라광장 앞에서 시작된 대통령 탄핵 촛불 문화제는 인천, 부산, 대구, 춘천, 대전, 광주, 여수, 순천, 전주, 제주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대한민국 보수신문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겨오던 의제설정권의 헤게모니를 인터넷에 완전히 넘겨주고 만 꼴이 됐다. 그것도 그들의 의제설정 객체로 생각해왔던 수용자들에 의해 침탈당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오만과 독선에 가득 찬 의제설정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훈계하는 시대는 갔음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2008년 5월은 대한민국 전통 미디어가 의제설정 기능을 시민들에게 내준 일대 사건이자 미디어 혁명으로 기록될 만하다.
 
전통 미디어의 오만과 게으름, 편견에 경종을 울려준 인터넷 언론의 의제설정과 의제파급 혁명은 무명의 10대 누리꾼에 의해서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 더 이상 수용자를 전통적 미디어의 의제설정에 종속되는 객체가 아니라는 점을 각인시켜 주었다.

그럼에도 신문들은 날마다 3~4개 면을 할애해 관련 기사를 대대적으로 내보내고 있지만 보도 내용이 제각각 달라 국민들의 혼란은 커져만 가고 있다. 과거의 아비투스(습속)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정부의 졸속협상으로 국민들의 먹을거리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정부의 말만 앵무새처럼 전달하는 일부 보수신문들의 보도는 저널리즘의 첫째 의무인 진실추구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이런 와중에도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의 보도태도는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조선><중앙><동아>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인터넷 괴담'으로 치부하며 광우병 파동을 축소하기에 급급한 반면 <경향><한겨레> 등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 문제와 그에 따른 성난 민심의 목소리를 싣고 있다.

왜곡 좋아하는 보수신문과 이명박 정부는 '짝짜꿍'?

<매일신문>7일자 인터넷신문 화면캡쳐
▲ 대구.경북에도 촛불 줄이어 <매일신문>7일자 인터넷신문 화면캡쳐
ⓒ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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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 김유진 사무처장은 이러한 현상을 왜곡이라고 표현했다. 6일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보수신문들이 국민들의 분노 자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왜곡하고 있다"면서 "미국 소에 대한 광우병 우려가 엄연히 존재하고 미국의 도축, 검역시스템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 소가 안전하다는 말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런데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사이에 두고 뒷북 의제선점이 치열한 보수신문을 비롯한 서울의 몇몇 신문들에게 "미국에서 수입되는 쇠고기와 미국 사람이 먹는 쇠고기는 똑같다"며 대문짝만한 광고를 1면에 냈다. 그것도 국민의 혈세를 들여서 말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잠재워 달라는 얘긴지, 정부 편에 계속 서달라는 주문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정작 발화지점이자 연일 의혹이 거세게 증폭되고 있는 인터넷 매체와 누리꾼들은 아예 포기한 듯하다. 설득은 커녕, '광기'나 '괴담'의 진원지 정도로 치부하고 있을 정도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보수신문을 비롯한 몇몇 주류언론만 입막음하면 끝이란 생각인가. 오죽하면 서울에서 발행되는 5일과 6일자 신문에만 일제히 광고가 나가자 지역 신문들도 거세게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더는 정부와 보수신문들의 짝짜꿍을 못 봐주겠다는 듯이 촛불을 들고 나선 시민들의 표정을 사진과 기사에 담아 1면에 큼지막하게 싣기 시작했다. 7일자 신문에서 묻어난다.   

특히 <조선><중앙><동아>(이하 조중동) 등 보수신문이 광우병에 대한 안전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정부 관계자의 입을 빌어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민주적인 여론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데 항의하는 시민을 '반미·좌파' 세력으로 몰아가 누리꾼과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는 목소리를 무게 있게 다뤘다. 그러면 그럴수록 인터넷에는 '조중동'의 이중적인 편향 보도를 비판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더 가관인 것은 경찰이 촛불집회를 불법으로 규정, 강경 대처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기사가 보수언론에 크게 부각되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화염병. 돌멩이 대신 촛불을 들고 나온 데서 이름 붙은 촛불집회는 평화적인 집회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는 이미 지난 2002년 이후부터 우리사회에 일반적인 문화행사로 인식돼 왔다.

인터넷 매체에 대한 대대적인 압박공세

<새전북신문>7일자 1면
▲ 전주국제영화제 거리에도 촛불... <새전북신문>7일자 1면
ⓒ 새전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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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에서 촛불은 자신의 몸을 불살라 주위를 밝게 비춘다는 점에서 희생을, 약한 바람에 꺼지면서도 여럿이 모이면 온 세상을 채운다는 점에서 결집을, 어둠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새벽을 기다리는 불꽃 이라는 점에서 꿈과 기원을 의미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차제에 더욱 우려되는 것은 무리한 인터넷 종량제 시행을 비롯한 인터넷 언론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압박 공세다. 모처럼 소통채널이 다양화되고 일반시민들이 전통 미디어의 의제설정에 종속되어 있는 객체가 아니라 스스로 의제를 제안할 수 있고, 또 그 의제가 역으로 기존 미디어에 의해 수용될 수 있도록 하는 커뮤니케이션 주체로서의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 보수신문들의 편에 선 이명박 정부가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 청와대가 지난 3월 대통령과 중앙․지방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정치부장 간담회를 마련했으나 인터넷 매체를 배제시킨 점은 이런 맥락에서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기자협회보>의 지난 6일 '청와대-인터넷언론 분위기 냉각'의 기사에서도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 기사는 "청와대는 참여정부 이후 중앙 일간지·방송사 기자들과 공간을 함께 사용해왔던 인터넷 매체 기자들을 새로 신설한 제4기자실을 이용하도록 하는 등 중앙언론사들의 2진 기자들도 함께 쓰게 했다"고 했다.
   
최근 진보 성향의 인터넷 매체들이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갈등 기류가 싹튼 것 아니냐는 우려는 기우이길 바란다. 전통 미디어들의 수용자관이 이제는 바뀌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선 시시각각 변화하는 한국 언론의 전환기적 도전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태그:#의제파급, #의제설정, #인터넷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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