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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거부 사태를 겪은 수원 영덕초등학교. 학교는 14일부터 정상화됐다.
 등교거부 사태를 겪은 수원 영덕초등학교. 학교는 14일부터 정상화됐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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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이 나와서 교문 막고, 학교 못 가게 했어요."

"교감 선생님은 담임 선생님하고 다퉜고, 교장선생님은 기절하셨어요."

아이들은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단지 쉽게 말하지 않을 뿐이다. 교장이 기절하고 학부모들이 교문을 막아선 풍경은 아이들에게 낯설었다. 그리고 그 익숙하지 않은 풍경은 상처로 남은 듯했다.

불법찬조금 문제로 전교생 등교거부 사태까지 겪은 수원 영통 영덕초등학교를 14일 찾았다.

학교는 안정을 찾은 듯 했다.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 나왔고, 교사들은 수업을 시작했다. 학교는 본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의 가슴에는 적지 않은 상처가 남았다.

영덕초등학교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영덕초등학교 전교생 1095명 중 약 1000여 명이 등교를 거부한 건 지난 11일 일이다. 많은 언론에서 보도했듯이 문제의 발단은 '불법찬조금'이다.

영덕초등학교 2학년 3반 담임이었던 최아무개(42) 교사는 최근 몇몇 학부모에게 '학급발전기금' 명목으로 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학부모들은 "이런 교사에게 자식을 맡길 수 없다"며 최 교사의 전보 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최 교사는 "절대 돈을 요구한 적 없다"며 반발했다.

주장은 팽팽했고, 양쪽 모두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학교 쪽은 "최 교사나 학부모들 모두 뚜렷한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학부모들의 주장대로 징계를 내리냐"고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학부모 30여 명은 지난 3월 31일 학교에서 침묵시위를 벌였고, 사태는 등교거부까지 발전했다.

수원시교육청은 14일 논란이 된 최 교사에 대해 직위해제 결정을 내리며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징계사유는 '불법찬조금 모집'이 아니다. 수원시교육청은 "돈 요구는 사실 확인이 아직 안 됐고,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는 등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어려워 징계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 보기 민망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학생들 등교거부가 있던 지난 11일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 정문과 후문을 직접 '단속'하기도 했다.

한 학부모는 "상황을 모르고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모였을 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학생들과 교사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엄마들이 학교 정문을 막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교문에 "영덕초등학교는 발령을 요청한 선생님이 발령이 날 때까지 2008년 4월 11일 등교거부를 합니다"라고 적힌 인쇄물을 부착하기도 했다. 이 날 학부모들의 행동에 한 교사는 섭섭한 마음을 이렇게 나타냈다.

"부모님들에게 아이들 학교는 보내달라고 간곡히 말했다. 우리도 부모님들의 요청사항을 알고 있지만, 일을 해결하는 절차라는 게 있지 않나. 학교 체면이 있는데, 집단적으로 학생들을 보내지 않으면 교사들은 뭐가 되나. 해도 너무한다. 요즘 학교를 좌지우지하는 건 학생도 교사도 아닌 학부모들이다."

11일 등교거부 때 학부모들이 교문에 부착한 공고문.
 11일 등교거부 때 학부모들이 교문에 부착한 공고문.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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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가 교문을 막다니, 해도 너무 한다"

이날 김현숙 교장은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학교에 구급차가 찾아오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학생들이 봐서는 안 되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2학년 3반 학생들을 두고 최 교사와 교감, 학부모들이 다툰 것이다. 불미스런 일 발생 이후 학교는 최 교사를 담임에서 해임했다. 그리고 담임으로 다른 교사를 배치했다. 그런데 최 교사는 "학교의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가르치겠다"며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결국 학교와 학부모들은 2학년 3반 아이들을 교무실과 도서관으로 이동시켜 따로 수업을 했다. 최 교사와 학생들을 강제로 분리한 것이다. 이 때 학부모 몇몇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교실 밖에서 '보초'를 서기도 했다. 지난 4월 7일과 8일에 있었던 일이다.

한 교사는 이날의 일을 거론하며 "어떻게 학교에서 그런 일까지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며 "교사로서 큰 자괴감이 들었던 사건"이라고 밝혔다.

학부모들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장수경(가명)씨는 "최 교사가 아이들에게 집단 체벌을 주고 자주 짜증을 내는 등 교사로서 문제가 있었다"며 "부모로서 아이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장씨의 말이 일방적 주장은 아니다. 논란이 된 최 교사는 이전 학교에서도 비슷한 민원을 받기도 했다. 김지만 수원시교육청 초등교육과 장학사는 "최 교사는 이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도 학부모들에게 담임교체를 요구받았다"며 "다른 교직원과 언쟁을 벌이는 등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최 교사는 올해 3월 1일부터 영덕초등학교에서 일했다. 이전에는 수원 Y초등학교와 용인 E초등학교에서 근무했다.

해법 없는 교육청 "언론 때문에 사건 커져"

14일 오후 영덕초등학교. 이날 교사들은 전체 회의를 열었다.
 14일 오후 영덕초등학교. 이날 교사들은 전체 회의를 열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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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 해제를 받은 최 교사는 병가를 내고 현재 학교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

최 교사는 "교장이 시켜서 한 일이다" "나 빼고 다른 교사들은 이미 (돈을) 다 받았다" "내가 피해자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아직 하나도 없다. 하지만 최 교사의 이런 육성은 14일 MBC <생방송 오늘아침>을 통해 전국에 그대로 방영됐다.

이 방송을 본 영덕초등학교 교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교사들은 14일 오후 교무실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교사들은 "우리가 촌지 받는 교사로 보도됐다"며 "이번 사건으로 우리의 명예와 자존심이 크게 훼손됐다"고 성토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며 가장 큰 피해를 받은 건 당연히 학생들이다. 그리고 교사들도 "촌지나 받는 선생으로 몰렸다"고 억울해했다. 학부모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집단 이기주의자로 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교육 3주체가 모두 답답해하고 있지만, 관할 교육청은 아직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문제를 축소하는 데 주력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김지만 수원시교육청 초등교육과 장학사는 "논란이 된 최 교사에게 과거 안 좋은 민원이 있었는지 몰랐다"며 "언론이 자꾸 이 문제를 보도해 사건이 커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태그:#영덕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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