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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1반 수업을 마치고 한국 식당에 갔을 때 찍은 오지원 씨 부부의 사진
▲ 오지원 씨 부부 초급1반 수업을 마치고 한국 식당에 갔을 때 찍은 오지원 씨 부부의 사진
ⓒ 구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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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하우스'는 봤어요?"
"네, 봤어요".
"그럼, '김삼순' 봤어요?"
"아니요, 못 봤어요".
"그럼, 이거 보세요. 아주 재미있어요".
"네, 고마워요. 다음 주에 돌려줄게요".

매주 수요일이 되면 본교의 기초2반 교실은 한국 드라마 DVD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 모습이 꼭 비디오 가게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들게 한다. 그렇게 한국 DVD를 돌려가면서 볼 수 있게 된 데에는 필리핀 아주머니 오지원씨의 역할이 컸다.

오지원씨는 본교를 찾는 다른 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특이한 이유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다. 오지원씨가 처음 본교를 찾은 것은 지난 학기였는데 오래 전에 한국에 근무한 적이 있는 필리핀 남편과 함께 등록을 하겠다고 본교를 찾았다.

그때까지는 지원씨가 그저 한국 드라마가 좋아서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다보니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생긴 평범한 필리핀 아주머니로 보였다. 또한, 지원씨는 나중에 필리핀으로 영어를 공부하러 오는 한국 학생들을 위한 영어학원을 필리핀에 개설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지난 학기 수업 시작한 지 2주째 되는 날에 오지원씨는 자신이 왜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게 되었고, 또 한국어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의 진짜 이유를 말해주었다. 오지원씨는 사고로 아들을 잃게 되었는데 그때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지원씨는 우울증에 빠져서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이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친구를 통해서 한국 드라마를 접하게 되었는데 가장 먼저 보게 된 드라마가 바로 '비밀'이라는 드라마였다고 한다. 2005년에 방영했던 드라마다. 사실 그리 유명하지 않았던 드라마였는데 어쩌다보니 그 드라마를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한국 드라마를 하나씩 섭렵해 가게 되어서 이제는 거의 안 본 드라마가 없을 정도로 한국 드라마를 꿰고 있는 것이다.

오지원씨 외에도 이상하게 초급2반에는 한국 드라마에 몰입해 있는 학생들이 모였는데, 그래서인지 그 반 수업에서는 유난히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사계절인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봄의 왈츠', '여름향기', '가을 동화', '겨울 연가'를 이야기할 수 있었고, 그 네 드라마를 다 본 오지원씨의 도움으로 그 드라마의 줄거리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전 학생들은 대부분 '겨울연가'나 '풀하우스' 정도는 알아도 그외에 그리 유명하지 않은 드라마는 잘 몰랐었는데 이제는 새로 나오는 드라마가 뭐고 거기에 누가 나오고, 거기에 나오는 배우가 누구랑 사귀고 등등의 자세한 내용까지 알고 있으니 이제는 더욱 열심히 한국 드라마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또한, 그렇게 큰 슬픔을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이겨낸 오지원씨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한국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을 보고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좀 더 멋진 한국 드라마들을 제작해 줄 것을 관계자 여러분들께 부탁한다.

덧붙이는 글 | 어드로이트 칼리지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학교입니다.



태그:#한국어, #어드로이트, #한국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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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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