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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이 찢어진다. 다 잘 돼서 성공하기를 바란다.”

 

박근혜 전 대표가 공천 탈락한 의원들 앞에서 한 말이다. 이 말에는 당의 공천에 대한 분노와 격정이 토로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말은 낙천자들에게 자기의 향후 거취를 밝힌 것도 된다.

 

14일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한 이 자리에는 김무성 최고위원을 비롯하여 유기준, 엄호성, 김태환 의원 등 8명의 낙천 의원이 참석했다. 궁지에 몰린 낙천 의원들은 박 전 대표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나갔을 터였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분명히 선을 그으며 말했다. “다 잘 돼서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성공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고별의 언사’라고 보아야 한다. 박 전 대표는 당을 나갈 생각이 없는 것이다. 물론 박 전 대표가 공천 심사에 반발하여 당을 나가는 것이 능사는 전혀 아닐 터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왕년의 유력한 대선주자이기도 했던 박 전 대표가 보이는 행동은 지나치게 ‘비정치적’이다.

 

언론들의 분석에 의하면 지금까지의 공천만으로도 ‘친이’ 대 ‘친박’의 구도는 140 : 40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태가 이 지경으로 되기까지 박 전 대표는 ‘정치적’인 노력을 거의 하지 않은 것이다.

 

정치에는 협상과 타협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중국에 특사로 다녀온 이후 상대측을 노려보기만 했지 공천을 합리적으로 이루기 위한 어떠한 협상도 시도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가 한 일은 기껏 해야 ‘칩거’거나 ‘발끈’이거나 ‘위로’ 따위의 지극히 사적이고 감정적인 수준에 머물렀음을 직시해야 한다.

 

“사람이 힘들 때 밥맛이 돌멩이를 씹는 것과 같다. 여러분이 지금 그렇지 않느냐?”

 

박 전 대표가 사심 없는 지도자라면 먼저 ‘내 밥맛이 돌멩이를 씹는 것’ 같았어야 할 터인데 아쉽게도 그녀는 ‘여러분의’ 밥맛이라고 낙천 의원들을 객관화했다. 또한 박 전 대표는 ‘창당은 하지 마라. 그래야 내가 간접적으로 지원을 하고 도울 명분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창당은 하지 마라’는 말은 낙천자들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이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염두에 둔 말이자 역설적이게도 ‘친이’ 쪽을 안심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박 전 대표는 낙천 의원들을 돕겠다고 하면서도 ‘간접적’이라는 제한선을 두었다. 실제로 그녀가 총선 전선에서 ‘간접적’인 도움을 준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효험이 있겠는지 의심스럽다.

 

또한 그녀는 창당을 말리며 예의 ‘명분’을 내세웠는데 이 말 역시 매우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막상 ‘총선 전선’이 형성되고 나서 자기 당 후보와 겨루는 탈당파 무소속 후보를 돕는 일에 어떻게 명분이 부여될 수 있다는 것인지를 정교히 헤아려 보아야 한다.

 

박 전 대표가 차기 대권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치력이다. 이는 바꿔 말해서 지금 그녀의 정치력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게 멋진 말처럼 들렸는지 조중동에서는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 번 당직 임명이나 이번 공천 과정에서도 자파 의원이 불이익을 받을 때마다 한 말이라고는 오로지 “그저 나를 도왔다는 이유 하나로”를 반복하고는 했다. 그러더니 그 말의 효력이 약해지자 “내가 힘이 없어서...”라고 동정과 연민에 호소하는 화법을 구사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잘 되기를 바란다.’ ‘성공하기를 바란다’라고 하면서 고별을 선언하고 있다. 아울러 그녀는 자기는 한나라당에 남을 것임을 한나라당 지지자들과 이명박 측에 전달하고 있는 셈도 되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더 치밀한 정치인이라면 서울 강남 공천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영남 낙천 의원들에게 ‘창당은 하지 마라’고 말할 게 아니라고 본다.

 

최근에 보이고 있는 박 전 대표의 언행은 신랄하게 보아 이중적인 데다 다소 기회주의적인 면이 있어 보인다. 아울러 그녀의 언행에는 ‘치열한 정치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녀의 말은 논리가 부족해서 선동성은 있지만 지속적인 효과를 낳지 못하게 되었다. 박 전대표가 자신의 꿈이기도 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소신과 정치력과 함께 논리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본다.  

덧붙이는 글 | 김갑수 기자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공천탈락,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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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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