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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메헤렌을 아는가?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명화 위조범이다. 유명한 화가의 위작을 그려 진짜인 양 팔아넘겨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전문가들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그렸단다. 그가 주로 위작한 작가는 우리에게도 <진주 귀고리 소녀>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의 풍속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

 

메헤렌이 그린 베르메르의 그림이 위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 과정은 아주 재미있다. 다른 사람이 밝혀낸 것이 아니라 메헤렌이 스스로 고백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는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메헤렌은 1945년에 나치의 괴링 장군에게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이라는 베르메르의 그림을 팔았다. 당연히 거액의 대가를 받았겠지. 당시 괴링은 엄청난 양의 미술품을 닥치는 대로 긁어모으고 있었다. 베르메르의 그림도 그 중의 하나였다.

 

전쟁이 끝난 뒤, 메헤렌은 명화를 적국에 팔아넘긴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고, 전범으로 몰리게 되었다. 전범이 되어 재판을 받는다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메헤렌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고백을 한다. 그 그림은 자신이 그렸노라고.

 

전문가까지도 속여 넘길 정도로 정교한 솜씨를 가졌던 명화 위조범 반 메헤렌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나왔다. 우광훈의 <베르메르 VS 베르메르>. 이미 명화 위조범 메헤렌에 대한 소개를 했으니 소설의 내용은 이미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줄거리를 따라가며 읽어서는 안 된다.

 

작가는 베르메르의 그림을 비롯한 미술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드러내면서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끌어간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가 참 많이 준비했구나'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게끔. 사랑이야기에 깃든 통속성이 좀 거슬리기는 하나, 베르메르의 그림을 위작하는 가브리엘 이벤스의 행적과 심리 묘사는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특히 작가는 마지막에 허를 찌르는 반전을 준비했다. 가브리엘 이벤스가 죽은 뒤에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은 마지막 장을 덮기 전에 다시금 소설 전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가브리엘 이벤스는 화가 지망생으로 화단에 화려하게 등단했으나, 그가 추구하는 그림은 현실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주목하지 않았다. 대중이 관심을 갖지 않는 화가는 가엾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궁핍한 생활은 사랑하는 여인을 창녀로 전락시켰고, 그 사실은 그에게 절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속이는 명화 위작에 뛰어들게 된다.

 

그런데 가브리엘은 많고 많은 화가 중에 하필이면 베르메르의 그림을 위작하게 되었을까?

 

무엇이 예술인지, 무엇이 창작인지, 그렇게 미적 기준조차 모호해진 마당에 위작이라는 것이 더 이상 자신에겐 범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이 위작의 대상으로 선택한 베르메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존 시 그는 유럽은 물론 자국인 네덜란드에서조차 크게 인정받지 못한 슬픈 운명의 사나이였다. 가브리엘은 그 슬픈 운명 속에서 진한 동질감과 더불어 애정을 느꼈다. 베르메르의 작품을 위작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자화상을 완성해 나가는 작업이자,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복수극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진정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 269쪽

 

그는 위작을 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캔버스를 사용했으며, 17세기에 사용하던 물감을 직접 만들었고, 베르메르의 그림을 철저하게 연구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위작은 제2의 창작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가브리엘 이벤스는 열정을 가지고 베르메르의 위작을 그렸던 것이다.

 

그림은 비싼 값에 팔려 나갔다. 누구도 베르메르의 그림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베르메르 전문가의 보증까지 따라붙으니 누가 그것을 의심할 것인가.

 

하지만 인생에는 늘 파국이 뒤따르는 법. 그것은 현실이든 허구의 세계에서든 마찬가지다. 파국이 없었다면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가브리엘 개인에게는 불행이었으나 미술계에는 다행이었다고 할 수 있으려나.

 

유명 화가의 그림을 위작하는 건 전세계적인 추세인가 보다. 우리도 얼마 전에 이중섭과 박수근의 위작사건으로 미술계가 떠들썩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 소설이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위작이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니까.


베르메르 VS. 베르메르

우광훈 지음, 민음사(2008)


태그:#우광훈, #베르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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