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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야기를 해서 뭐하지만 미국에서는 편입학생의 학점 인정이나 학생 선발 시 모든 심사를 개별적으로 한다. 석사를 마치고 왔다고 일괄적으로 학점을 인정해주는 경우는 없다.

어떤 학생은 6학점밖에 인정을 받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학생은 30학점을 인정받기도 한다. 학부학생들의 전학 때에도 마찬가지로 개별 심사한다. 그렇다고 불공평하다고 항의하는 학생은 본 적이 없다. 그 만큼 미국교수들은 개인의 조건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공정하게 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물론 교수개인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를 통해서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결정하는 것은 기본이다.

획일적 잣대는 전체주의에서나 사용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무조건 일률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공정하다는 이상한 마녀사냥 신드롬이 도사리고 있다. 획일적 잣대로 모든 인간을 재단한다는 것은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 판단을 유보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공정하게 판단하라고 권한을 주었는데 자신의 권한을 일률적 잣대에 의지해버리는 매우 비겁한 행동이다.

민주당의 박재승 공천위원장이 언론과 논평가들의 마녀사냥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금고이상 형을 받은 사람을 공천에서 배제하면 개혁공천이고 그렇지 않으면 반개혁공천이라는 언론의 선동 속에서 언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언론은 선별구제해야 한다는 민주당 지도부를 수구, 경직된 박재승위원장의 잣대를 개혁인 것처럼 기싸움의 차원에서 양자의 구도를 보도해왔다.

물론 박위원장의 숭고한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거대여당이 탄생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무한질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지 개혁공천을 통해 민주당을 기사회생시키려는 뜻이 아니겠는가. 또 그것이 여론몰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변별력이 낮은 사회는 결코 선진사회라고 할 수 없다.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우선하지 않기에 획일적 잣대를 들이댄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엄청난 권한을 쥔 공천심사위원회가 어찌 획일적 잣대로 자신들의 판단을 유보하고 권한을 방기하려 하는가. 결과 중심주의를 따르는 사법재판에서도 동기에 따라 판결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죄질과 동기에 대한 고려 없이 어떻게 모든 사람을 하나의 잣대로 재단할 수 있는가.

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그렇게 자신이 없는가. 국민이 그렇게 변별력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금고 이상 형을 받은 사람 중에서 알맹이와 쭉정이를 가리는 공심위의 변별력을 보고 싶다. 그 결과에 따라 개혁공천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것이다. 지금처럼 선의의 피해자를 낳는 일률적 잣대는 개혁공천이 아니라 마녀사냥 포퓰리즘일 뿐이다. 우리 국민이 그보다는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

희생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누구를 위한 희생이고 무엇을 위한 희생인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지 않은 사람은 형을 받은 사람보다 다 나은 사람인가? 노무현대통령이 자신의 선거자금을 모두 공개하는 결단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당시 선거자금을 책임지고 있던 사람이 감옥에 갈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한 시대의 잘못된 관행을 정리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정치개혁의 희생양이 된 그들을 또 다시 재물로 삼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사적으로 뇌물을 받은 사람과 공적인 자리 때문에 희생을 치른 사람을 구분할 눈마저 없다면 공심위를 사퇴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한 시대를 책임졌던 그들에게도 다른 역량이 뛰어나다면 재기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우리가 그들을 희생양 삼아 어느 정도의 정치개혁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열린사회이며 무한패자부활이 가능한 사회가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공심위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무소속 출마를 한다면 엉뚱한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위험마저 있다. 개혁공천의 목표가 무엇인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것 아닌가. 일률적 잣대가 후보자의 승복을 담보하지 못하면 오히려 역풍이 불 수도 있다.

맥피의 서바이벌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맥피는 사람이나 상품을 선별하는 기준이 엄격한 것이 좋은지, 느슨한 것이 좋은지를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잣대가 엄격하면 쭉정이를 많이 골라내서 좋기는 하지만 알맹이도 많이 버려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진품은 바로 이 버려진 알맹이에 들어있을 확률이 더 많다는 것이다. 결국 맥피는 느슨한 잣대로 여러 차례 걸러내는 시스템이 가혹한 잣대로 한 번 걸러내는 것보다 더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대학시험 한 번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우리사회보다 수차례 도전의 기회가 주어지는 미국이나 북유럽의 제도가 훨씬 더 우월하다는 것을 이미 목격한 바 있다. 쭉정이를 골라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알맹이를 골라내는 일이다. “90마리의 양을 버리더라도 1마리 양을 찾아나서는 것이 정의의 정신”이라는 손학규 민주당대표의 말은 맥피의 이론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다.

후보의 가치 하나하나를 고려하는 공천이 되어야지 익숙한 이름은 골라내고 무조건 새물만 넣으면 개혁공천이라는 포장은 너무도 식상하다. 그 동안 우리처럼 국회의원 물갈이를 많이 한 나라도 드물었다. 그렇다고 무엇이 달라졌는가.

원칙(principle)과 잣대(criteria)를 혼동해서야

공심위의 원칙은 개혁적이고 좋은 후보를 선발하는 것이다. 특정인 배제는 원칙이 아니라 원칙을 성취하기 위해 만든 하나의 잣대일 뿐이다. 느슨한 잣대를 여러 개 가질수록 공심위의 원칙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 맥피의 제안이다. 한 가지 잣대에 불과한 것을 원칙으로 포장해 휘두르는 것은 자신들의 결정에 자신이 없거나 여론의 비난이 두려워 원칙이라는 이름 뒤에 숨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 명이라도 제대로 일할 사람을 골라서 국회로 보내라. 뇌물을 받은 사람은 엄격하게 단죄해야 하지만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을 또 희생양 삼는 것은 곤란하다. 민주당 공심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조기숙 기자는 전 청와대 홍보수석입니다. 이 글은 cafe.naver.com/chomagic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박재승, #손학규, #공천심사위, #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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