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산> 제46회의 한 장면.
 <이산> 제46회의 한 장면.
ⓒ MBC

관련사진보기


MBC 드라마 <이산>은 정조 임금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조선 후기의 위기상황을 소재로 시청자들에게 흥미진진한 교훈과 감동을 전하고 있다. 그 점에서 드라마 <이산>이 기여하고 있는 사회적 공로는 높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산> 제46회가 빚은 '작지만 큰 실수' 한 가지는 정조 임금을 결과적으로 ‘일왕’으로 만들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이는 동아시아 각국 간의 문화적 차이를 세밀히 고려하지 않은 데에서 나온 중요한 실수라고 볼 수 있다. 좀 가혹하기는 하지만, <이산>과 한국 사극의 발전을 위해 그 실수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로 한다.

<이산> 제46회 초기 장면에 "정조 1년 정유년(1777년) 8월 경희궁 존현각"이란 문구가 나왔다. 물론 이 연도는 틀린 것이다. 현재 이 드라마가 즉위 직후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으므로 정확한 연도는 1776년이 되어야 한다. 정조가 즉위한 해는 영조 52년(1776년)이었다.

정조 즉위 연도를 정조 1년으로 표기하고 있는 <이산> 제46회. TV 화면을 카메라로 찍었기 때문에 화면이 양호하지 못하다.
 정조 즉위 연도를 정조 1년으로 표기하고 있는 <이산> 제46회. TV 화면을 카메라로 찍었기 때문에 화면이 양호하지 못하다.
ⓒ MBC

관련사진보기



작은 실수, 그러나 그 뿌리에는

그런데 여기서는 연도의 오류를 문제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실수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실수가 생겼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이 단순히 사실확인상의 오류나 TV 화면 표기상의 오류가 아니라 역사 인식상의 오류와 한·중·일 3국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인식상의 오류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마도 <이산>의 작가들은 정조가 즉위한 해의 상황을 묘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정조 1년이 몇 년인지를 연표에서 확인해본 듯하다. 그런데 연표에는 정조 1년이 즉위 연도인 1776년이 아니라 그 이듬해인 1777년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것을 확인한 작가들이 <이산> 제46회에다가 '정조 1년 1777년'이란 자막을 넣은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사학과 대학원에 처음 들어오는 일부 신입생 중에도 이런 실수를 범하는 예가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중국 정사(正史) 식화지(경제사)에 관한 어느 세미나에서도 이 문제가 여러 번 언급된 적이 있다.

정조 즉위 연도가 곧 '정조 1년'이 아닌가? 물론 맞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에서만 맞는 말이다. 한국·중국은 연호 표기법에서 일본과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에는 중국 황제의 연호 외에도 '정조 몇 년' '고종 몇 년' 하는 식의 '조선 나름의 연호'가 함께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연호 표기와 관련된 한·중·일 3국의 문화적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군주가 즉위한 다음 해부터 '○○ 1년'이라고 연호를 표기한다. 그래서 군주가 즉위한 해당 연도에는 여전히 직전 군주의 연호를 사용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청나라 제4대 황제인 성조 강희제는 1661년에 등극했지만 '강희'라는 연호는 이듬해인 1662년부터 사용되었다. 1661년에는 여전히 세조 순치제 때의 연호인 '순치'를 사용했다.

또 조선 제26대 군주인 고종은 1863년에 등극했지만, 이듬해인 1864년을 고종 1년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고종이 즉위한 1863년은 청나라의 연호를 따서 '동치 2년'이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독자적으로 '철종 14년' 또는 '고종 즉위년’(≠고종 1년)'이라고 한다.

물론 고종 즉위 직후에는 '철종 14년'이나 '고종 즉위년' 같은 연호가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실록을 편찬하면서 사후적으로 넣은 '한국식 연호'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한국의 사료편찬자들은 중국식을 따라 새로운 군주의 즉위 이듬해부터 새로운 군주의 이름을 따서 아무개 몇 년 하는 식의 표기법을 사용했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는 새로운 왕이 등극한 때로부터 새로운 연호를 사용한다. '즉위년≠1년'의 공식이 성립한 한국·중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즉위년=1년'이라는 공식이 성립한 것이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현재의 아키히토 일왕이 즉위한 1989년을 헤이세이(平成) 1년으로 계산한다. 이에 따르면,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2008년은 헤이세이 20년이 된다. 한국이나 중국 같았으면 헤이세이 19년이라고 했을 것이다.

동아시아 각국의 연호를 비교하는 일본의 어느 책. 1776년은 정조 즉위 연도이고, 1777년은 정조 1년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가 희미해서 설명을 덧붙이면, 맨 왼쪽의 빨간 줄에는 '조선', 중앙의 빨간 줄에는 '정조'라고 쓰여 있다.
 동아시아 각국의 연호를 비교하는 일본의 어느 책. 1776년은 정조 즉위 연도이고, 1777년은 정조 1년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가 희미해서 설명을 덧붙이면, 맨 왼쪽의 빨간 줄에는 '조선', 중앙의 빨간 줄에는 '정조'라고 쓰여 있다.
ⓒ <최신역사연표>

관련사진보기


한국·중국-일본은 왜 연호 사용법이 다를까

그럼, 한국·중국과 일본이 연호 사용에서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 소개한 중국 정사 식화지 세미나에 참여하는 학자들은 "한국·중국에서는 선황(선왕)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즉위 연도에도 여전히 직전 황제(왕)의 연호를 사용했다"고 말하고 있다.

효를 중시하는 유교문화가 한국·중국을 지배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점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아들이 아버지의 연호를 없애버리고 자기 연호를 사용하는 것은 도리상 있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직전 군주가 반드시 부모 벌은 아니지만, 한국·중국에서는 효의 연장선상에서 그런 논리가 작용했다.

그래서 위의 세미나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연호를 갈아치우는 것은 '상놈'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말도 여러 번 나왔다. 물론 이 세상에 '상놈'인 나라는 없다. 동아시아 각국 간에 상이한 문화적 차이가 있음을, 좀 과장해서 표현한 말에 불과하다.

연호 사용과 관련된 동아시아 3국의 이 같은 차이를 생각해보면, 정조 즉위 연도가 곧 정조 1년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전개한 <이산> 제46회가 얼마나 엉뚱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조 1년은 정조 즉위 연도'일 것이라는 착각 때문에 '정조 즉위 연도는 1777년'이라는 연쇄적 오류까지 낳고 만 것이다.

'정조 1년(1777년)'이란 표현 자체는 맞는 게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이산> 제46회가 정조 즉위 직후의 상황을 묘사하면서 그런 자막을 내보냈기 때문에 이것은 '작지만 큰 실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볼 때에 위와 같은 실수는 정조 임금을 일왕으로 만들어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즉위식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어버린 정조였다. 그런 정조가 즉위 직후에 선왕의 시대를 끝내고 자신의 시대 즉 정조 1년을 열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일본의 군주들이 자기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동아시아 3국의 군주들이 효도 방식에서 차별성을 보였다는 점이다. 한국·중국 군주들은 즉위 연도만큼은 아버지 군주 때의 연호를 그대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효를 표시했고, 일본 군주들은 이와 다른 방식으로 아버지 군주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 것이다.

사극 작가들, 조금만 더 역사를 공부해주세요

물론 사극 작가들이 역사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실수들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극 작가들도 역사학적 소양을 갖출 필요는 있다. 왜냐하면, 수많은 대중이 사극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사극 작가는 역사학자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갖추어야 할지도 모른다. 역사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재미있게 전달할 줄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조 이산의 파란만장한 삶과 조선 후기의 위기상황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 <이산>이 보다 더 철저한 사실 확인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흥미진진하고 풍부한 교훈을 전달해주는 드라마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한다면, <이산>은 영·정조 때의 르네상스와 그것의 실패를 통해 왕조의 흥망성쇠에 관한 지혜를 전달하는 유익한 드라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태그:#이산, #연호, #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