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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당시, 뜨거운 감자였던 부분 중 하나는 '늑장·부실 수사 의혹'이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의 정보를 언론에 흘린 당사자를 찾느라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죠. 그 의혹 자체가 언론이 사건을 크게 다루면서 불거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경찰이 감찰조사를 벌인 당사자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 오모 경위였다고 합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북창동 S클럽 종업원에게서 사건 발생 이틀만에 사건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를 진행한 것입니다.

 

오모 경위는 이를 바탕으로 첩보보고서를 만들어 상부에 제출합니다. 이 보고서는 '폭력행위(납치, 감금, 폭행) 사건 첩보'라는 것으로써, 경찰이 지난해 4월 29일에 언론에 공개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서울경찰청은 첩보보고서 입수 후 이틀 만에 사건을 남대문경찰서로 넘겼습니다. 최근 불거진, 오모 경위를 둘러싼 '보복성 표작수사 의혹'은 이로부터 비롯됩니다. 남대문경찰서 이첩과 함께 사건에서 손을 뗄 수 밖에 없었던 오모 경위가 일부 언론에 사건의 정보를 흘리고, 피해자인 S클럽 종업원까지 소개했다는 것입니다. 내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사건에 깊숙히 개입돼 있던 당사자 중 1명인 강대원 전 남대문경찰서 형사수사과장은 모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증언합니다.

 

"첩보를 올린 광역수사대 오모 경위는 이미 사건 직후 피해자들로부터 피해 조서를 다 받은 상태였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이 보고는 분명 첩보와 함께 서울청에 보고됐을 것이다. 그러나 오 경위가 작성한 피해자 진술조서는 지금 없다. 오 경위는 폐기했다고 말하고 서울청은 보고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의도적으로 수사를 방해할 목적이 아니었다면 가능한 일이겠는가."

 

"오 경위는 사건 직후 피해자들을 북창동의 한 안마시술소에 감금한 채 수사해 진술서를 받아냈다. 그렇게 고생해서 풀어가던 사건이 남대문서로 넘어가자 화가 났을 것이다. 그래서 피해자들에게 남대문서에 협조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북창동 업소 대부라는 S클럽 사장(변모씨)한테까지 찾아가 ‘오 경위를 좀 설득해달라’고 했겠나."

 

이 증언이 당시의 의혹을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강대원 전 과장의 증언대로라면, 오모 경위가 제출한 보고서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증발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사건의 첩보를 최초로 입수해 수사와 더불어 보고서까지 올린 사건을 다른 서로 이첩시킨 것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언론에 사건의 정보를 흘렸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강대원 전 남대문서 형사수사과장이 이첩의 당사자로서, 오모 경위가 강대원 전 과장에게 그다지 도움되지 않는 행동까지 했음에도 저자세를 유지하면서 경찰을 그만 둔 지금까지 그를 옹호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가는 바가 없지는 않습니다.

 

물론, 사건이 자신의 입장에 달려있으며, 오모 경위가 보복폭행 관련자인 조직폭력배 오모 씨를 수차례 만났다는 점에서, 강 전 과장의 증언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강 전 과장은 보다 흥미로운 증언을 남깁니다.

 

"광수대가 맡았어야 할 사건이 한화측(최기문 전 청장)의 외압으로 남대문서로 넘어온 것이다. 최 전 청장 처지에서는 서장이 자기 고등학교 후배에다 개인적인 친분도 있는 남대문서가 통제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남 대장(광역수사대장)의 행동도 이해는 간다. 그래도 수사 진행 중에 그러면 안 된다. 한 과장도 자기가 잘못한 게 있으니 아무 말도 못한 것 아닌가."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장희곤 전 남대문경찰서장이 경찰의 수사권 독립 기획의 핵심 인물로서, 최기문 전 경찰청장과의 학연보다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매개로 검찰로부터 미운털이 박혀 심한 처분을 받아 구속됐다는 주장입니다.

 

어쨌든, 장희곤 전 서장의 구속과 함께 최기문 전 청장은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으로 불구속됐습니다. 오모 경위가 제출한 첩보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들의 처지와 김승연 회장에게 적용할 구체적인 법조항까지 분석이 마쳐져 있는 것과는 달리, 장희곤 전 서장은 그 이전에 "미확인 첩보여서 관할서로 넘겼으며 본청에는 첩보 수준의 뜬소문이라 보고하지 안았다"고 해명했다가 거짓으로 드러났다는 점을 인상깊게 볼만 합니다.

 

어쨌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과 연계된 이들은 모두 파국을 맞았다는 결과가 도출됩니다. MBC 시사고발프로그램 'PD수첩'은 이속에서, 최근 불거진 의혹을 제기합니다.

 

'비리경찰 내사'인가 '보복성 표적수사'인가

 

오모 경위는 지난해 25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총 5번의 내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오모 경위는 이를 두고 '표적수사'임을 주장한 것입니다. 구체적 혐의는 인사청탁과, 술·성 접대, 유흥업소와의 결탁 및 비호 등, 경찰 내부에서 '청렴결백 오반장'으로 통했기에, '이중생활'이라는 의혹까지 받아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PD수첩'은 오모 경위의 동료 경찰과 가진 인터뷰에서, "오모 경위는 술을 한잔도 못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방송에 내보냅니다. 게다가 실제 유흥업소 업주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그는 돈을 전혀 안받는다"는 취지의 답변이 주를 이룹니다.

 

 

 

물론, '업주와의 결탁'이 사실이라면 업주들이 오모 경위를 보호해주기 위해 이런 답변을 의도적으로 했을수도 있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믿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업주들의 입장에서 보면 "경찰은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며 언제든 근무지가 옮겨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주를 이룰 수도 있습니다.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주의깊은 판단을 요구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오모 경위에게 직접 체포됐던 전력이 있다는 현직 유흥업소 종사자도, 그리고 북창동 유흥업계의 1인자였다가 은퇴했다는 이도 기존 업주들과 비슷한 취지의 답변을 합니다. 체포 당시에도 매수를 시도하다가 실패했다는 증언이었습니다.

 

오히려, 유흥업계의 1인자는 경찰 고위관계자에게 압력을 넣어 오모 경위를 다른 곳으로 전출시켰음에도, 오모 경위가 전화를 걸어와 보육원에 쌀 열 가마니를 보낼 것을 요청했다는 증언을 남깁니다.

 

 

 

물론, 정반대의 제보도 있었습니다. 오모 경위가 다른 곳에서 돈을 안받는 대신 유독 '유흥업소 컨설팅의 귀재'라는 D 유흥업소 사장 이모씨에게만 받았다는 모 유흥업소 종사자의 증언, 그리고 오모 경위가 안마시술소와 술집을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P 안마시술소의 지분도 20%를 확보하고 있다는 증언이었습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내사 내용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오모 경위는 강력히 부인했고, D 유흥업소 사장 이모씨는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안좋은 빽은 오반장의 빽"이라면서 "경정·총경들도 많은데 경위가 무슨 빽이 되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대로 이 증언 역시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혹시 유착관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모씨도 얼마든지 사실과 다른 증언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PD수첩'은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관계를 발견합니다. P 안마시술소는 다름아닌 대규모 성매매업소 적발 당시에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를 수사해 적발한 이가 오모 경위였다는 것입니다.

 

이 업소의 실소유주가 오모 경위에게 원한을 품고 "내 라이벌의 비호를 받는 오모 경위가 의도적으로 나를 표적수사했다"고 제보해 서울경찰청 감찰과가 수사에 나섰다고도 하지만, 해당 수사 자체가 경찰청장 지시로 이루어진 것을 증빙할 문건도 발견된 것입니다. 물론, 경찰청은 확인 절차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유흥업소 사장을 협박해 청와대 비서관에게 청탁을?

 

오모 경위가 한 유흥업소 업주를 협박해 청와대 비서관에게 승진 청탁을 대행하게 했다는 의혹도 내사 내용이라고 합니다.

 

오모 경위는 자신이 주도한 '재건축 비리 사건 적발'을 매개로 경위로 일계급 특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이 특진을 청탁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PD수첩'이 주변 경찰청 출입기자로부터 입수한 증언은 달랐습니다.

 

 

 

게다가, 전 청와대 비서관이 미국으로 향하면서 경찰은 뒤늦게야 출국금지를 내려 비난을 받았고, 제보자의 업소는 여전히 성행중인 정황도 이상합니다. 오히려 특수수사과 경관이 그곳에서 공짜 술을 마셨다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물론, 특수수사과는 공무원과 유흥업소의 유착관계를 광범위하게 수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지만, 공짜 술 의혹만으로도 문제가 될 소지는 충분합니다.

 

<투캅스>와 <공공의 적>을 떠올리며

 

영화에서 자주 다루는 캐릭터 중 하나가 경찰입니다. 양심적인 경찰과 부패 경찰이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PD수첩'은 <투캅스>를 언급했습니다. 양심적인 척 행동하지만 실상은 부패 경찰인 안성기의 캐릭터를 거론한 것입니다. 오모 경위가 현재 이런 캐릭터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PD수첩'이 짚어본 사건의 내용은 <공공의 적>에 가까워 보입니다. <공공의 적>에는, 주인공 '강철중(설경구)'을 내사하는 본청 감찰과 소속 형사를 향해, '강철중'의 상급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너희같은 감찰반 사람들은 누가 감찰하냐?"

 

경찰청 특수수사과 소속 형사들이 60만원 가량의 술을 공짜로 얻어마셨다는 의혹은 이 대사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의 전말이나, 강대원 전 남대문경찰서 형사수사과장의 증언 등을 종합적으로 짚어보면 오모 경위의 행위가 보다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수사정보를 언론에 흘린 것으로부터 비롯된 내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전직 경찰 총수가 대기업의 고문으로서 경찰 조직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은 '불구속 기소'로서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이런 사건을 우리는 한두번 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그룹 불법비리 의혹'의 핵심 사안 중 하나도, 이건희 회장 일가가 비자금을 활용해 유력 검사들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줘 관리했다는 점입니다.

 

과연,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내사는 어떤 결과를 발표할 것이며, 도대체 사실관계는 무엇일까요? 오모 경위의 입장에 적지 않은 경찰들이 공감을 표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증언한 그의 깨끗함을 드러내는 일화들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양심적이고 유능한 경찰이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이를 언론에 제보하는 강수를 뒀다는 죄목'으로 매장당하는 일을 눈앞에서 볼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제 스스로도 여러번 이야기했듯이 오모 경위의 입장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상황과 이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사건을 돌아보는 것이 이해에 도움될 것으로 보입니다.

 

배일도·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이 경찰청에 질의한 "(오모 경위에 대한) 내사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없다"고 답변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자 "이번 수사가 유흥주점 탈세에 관한 수사이며, 한화 사건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그렇게 답변한 것"이라고 답변했던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궁색한 변명도 감안해야겠지만요.

 

'PD수첩'은 '허경영 신드롬'의 이면으로 "허경영에게 전처와 두 아들이 있다"는 의혹과 함께 어느 경찰관에 대한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어떤 곳임을 잘 드러내는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PD수첩, #한화 김승연, #허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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