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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현재 겨울방학을 맞아 베를린에서 짧은 어학연수 코스를 밟고 있는 중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항공편을 이용한 까닭에, 베를린으로 건너가기 전 이틀 가량을 네덜란드에 머무르게 됐다. 헤이그에 위치한 이준 열사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마침 그 곳을 찾은 일본 대학생과 반나절을 동행하게 된 사연을 소개한다.

세 명의 대한제국 특사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상트페테부르크를 거쳐 이 역에 도착했다고 한다.
▲ 헤이그 HS 역 앞 전경 세 명의 대한제국 특사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상트페테부르크를 거쳐 이 역에 도착했다고 한다.
ⓒ 정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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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는 한국인들에게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1년 전, 세 명의 대한제국 특사들이 이곳에서 열렸던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 세 명의 특사는 이준·이상설·이위종으로, 그 가운데 이준 특사는 약소국의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이곳에서 자결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세 명의 특사가 묵었던 호텔, 박물관으로 변신하다

100년 전 세 명의 특사가 묵었던 '드용 호텔'은 현재 박물관으로 리모델링돼 있다.
▲ 이준 평화박물관 100년 전 세 명의 특사가 묵었던 '드용 호텔'은 현재 박물관으로 리모델링돼 있다.
ⓒ 정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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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세 명의 특사가 머물렀던 드용 호텔은 현재 '이준 평화박물관'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박물관을 운영하는 이는 이기항 이준아카데미 원장으로, 그는 1993년 자비로 건물을 매입해 1995년에 기념관을 열었다.

1층에서 벨을 눌러야 문을 열어줄 정도로, 이곳 박물관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무척 뜸했다. 기자가 찾은 1월 12일 오후에는 일본 학생 한 명만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는 이준 열사와 관련된 갖가지 사료들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었다. 제2차 만국평화회의 사무국에서 대한제국에 보낸 초청장 사본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참가국 명단에는 분명 'Corée'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세 명의 특사는 석연찮은 이유로 만국평화회의 의장과의 면담을 거절당했고, 네덜란드 외무대신에게도 서한을 발송했으나 회의장 출입은 어렵다는 통지를 받는다. 이에 특사들은 일제의 한국 침략을 규탄하고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선언하는 서찰을 각국 대표와 언론사들에게 보냈다. 역시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서찰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1. 일본인들은 대한제국 황제폐하의 승낙 없이 행동하고 있다.
2.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장병력을 사용하고 있다.
3. 일본인들은 대한제국의 모든 법률과 관습을 무시한 채 행동하고 있다.

또한 외국어에 능통했던 이위종 특사는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는 내용의 연설을 곳곳에서 벌였고, 그 연설 내용이 실린 <평화회의보> 사본 역시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하지만 일본과 당시 일본의 동맹국이었던 영국의 노골적인 훼방으로 그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고, 각국 대표들이 한국의 청원에 공감하지 않는 것에 격분한 이준 특사는 1907년 지금은 박물관이 들어선 이곳 호텔에서 자결하기에 이른다.

일본 대학생과의 '어색한 동행'을 시작하다

왠지 모를 엄숙한 마음으로 전시물들을 둘러보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오후 4시. 박물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관람을 끝내고 나오는 찰나, 전자사전을 뒤적거리면서 열심히 영어 안내문을 해석하던 일본 대학생과 마주쳤다. 그의 이름은 카츠키 나카오쿠이고, 교토에 소재한 류코쿠 대학에 다닌다고 했다.

그가 왜 여기에 오게 됐는지 호기심이 생긴 기자는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내 둘 사이에는 서투른 영어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헤이그 이준 평화박물관을 찾은 일본 대학생 카츠키 나카오쿠(일본 류코쿠대학 국제법전공 4)
 헤이그 이준 평화박물관을 찾은 일본 대학생 카츠키 나카오쿠(일본 류코쿠대학 국제법전공 4)
ⓒ 정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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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그런데 헤이그는 왜 오게 된 거야?
카츠키 : 대학에서 국제법과 국제조약을 전공하고 있어. 교수님이 헤이그가 국제법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라며, 꼭 가보라고 하셨거든. 핀란드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중인데, 잠깐 짬을 내서 여기에 오게 됐어. 이준 열사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랐는데, 여기 와서 더 자세히 알게 됐어.

기자: 놀라운데. 사실 나도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있어서 이준 열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 기회가 있었어. 이준 열사는 한국 법학도들의 '원조 선배' 격이거든. 그는 대한제국 법관양성소 1회 졸업생이야. 대한제국 초대검사도 역임했고.
카츠키 : 아 정말? 그건 몰랐네. 어쨌든 너도 법을 공부한다니, 무척 반갑다. 헤이그에 ICJ(국제사법재판소)하고 ICC(국제형사재판소)가 있는 건 알고 있지?

기자: 아…들어보긴 했는데…사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이곳 헤이그에 온 건 아니었어. 그렇다면 혹시 같이 가보지 않을래?

그렇게 카츠키와의 '어색한 동행'은 시작됐다. 기자는 미술관 관람을 떠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그와 함께하기로 했다. 우리는 트램(노면전철)을 타고 ICJ(국제사법재판소)로 향했다.

한일 대학생, '평화'를 이야기하다

기자 : 우리가 방문한 곳이 이준 '평화' 박물관이잖아. '평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카츠키 : (한참을 고민하다가) 음… '일상 속에서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고 평온한 삶을 누리는 것'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국제법을 공부하는 이유도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서야. 지금까지 국제법은 강대국의 지배논리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었잖아. 나는 국제법이 '평화'를 수호하는 쪽으로 기능하도록 하고 싶어.


기자 : 그럼 제국주의와 평화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이준 열사도 궁극적으로는 열강들의 제국주의에 저항하다가 자결하신 거잖아.
카츠키 :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해. 제국주의, 식민주의는 자국의 부와 명예를 위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는 거잖아. 과거 일본이 보였던 모습도 그런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봐. 다른 아시아 민중들의 생존권을 박탈했잖아. 지금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일방주의적인 태도도 다를 바 없고.

그와 한참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국제사법재판소(ICJ) 앞에 도착했다. 토요일이어서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ICJ(국제사법재판소) 건물은 이곳에서 'Peace Palace(평화의 궁전)'라고 불린다.
▲ 국제사법재판소 ICJ(국제사법재판소) 건물은 이곳에서 'Peace Palace(평화의 궁전)'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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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와, 이곳이 ICJ구나.
카츠키 : 나는 다음 주에 이곳에서 열리는 재판도 직접 방청할 예정이야. 인터넷으로 등록해 놨어. ICC도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그곳 재판 방청도 예약해 놨어.

기자 : 전공자다운데? 나도 국제법 시간에 ICC와 ICJ에 대해 잠깐 배운 적이 있어. ICC 같은 경우에는 미국이 참여를 꺼려하는 바람에 재판의 구속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카츠키 : 미국은 아직도 미가입상태고, 다른 나라들에게 '미국인 기소면제협정'을 요구하는 등 문제가 많아. 그래서 미국이 일으킨 전쟁범죄는 사실상 ICC 법정에 세워질 수 없고. 황당한 일이지.

일본의 정상국가화, '동북아의 평화'는 어디로?

기자 :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수학여행때의 기억이 갑자기 난다. 오사카, 교토 지방으로 수학여행을 갔었거든. 숙소 앞에서 '9'가 새겨진 모자를 쓴 사람들이 무슨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일본 평화헌법의 상징인 '헌법 9조'를 지키는 사람들의 집회였더라고. 아직도 일본은 헌법 개정 문제로 시끄러워?
카츠키 : 이제는 별로 시끄럽지도 않아. 일본 정치구조가 매우 기형적인 건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지금은 참의원은 민주당이, 중의원은 자민당이 제1당인데, 사실 두 당 모두 보수정당이라고 봐야 해. 두 당 모두가 평화헌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 암묵적인 컨센서스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과거 사회당이 제1야당일 때는 그래도 견제세력이라도 있었는데, 이제 평화헌법 개정 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단계까지 와 버린 듯 해.

기자 : 그래도 일본 자위대가 다국적 함대에 급유를 지원하도록 허용하는 '신 테러특별법' 은 민주당이 반대했잖아?
카츠키 : 사실 그것도 선거전략 차원에서 행한 반대를 위한 반대의 측면이 강해. 민주당에는 자민당보다 더 보수적인 의원들이 많거든. 이유야 어찌됐든 나는 침략전쟁을 돕는 따위의 일에 절대 반대야.

기자 : 한국에서도 비슷한 문제로 논란이 많았어. 개혁 진영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돕기 위해 파병을 강행했고, 그것이 지지층에 대한 '배신'이라는 등의 말들이 많았지. 해마다 연말이 되면 파병을 1년씩 연장해 주고 있는데, 정부가 작년에는 꼭 철군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그마저도 지키지 않았지.
카츠키 : 한국도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구나.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생을 마감한 이준 열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우리는 길을 걸으며 과거의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화 역사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카츠키는 전공자답게 강화도조약부터 시작해 을사늑약, 국권침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한 눈에 꿰뚫고 있었다. 우리는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과거의 잘못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어느새 헤이그 비넨호프(Binnenhof) 앞 광장이 눈 앞에 펼쳐졌다. 불과 다섯 시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낮이 짧아서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현재 네덜란드 상원 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로, 과거 제2차 만국평화회의 회담이 열렸던 곳이다.
▲ 헤이그 비넨호프(Binnenhof) 현재 네덜란드 상원 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로, 과거 제2차 만국평화회의 회담이 열렸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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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이 곳이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회의장이었다니 감회가 무척 남달라.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그 먼 거리를 와서 이곳 회의장 앞에서 문전박대 당했던 특사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까 박물관에서 본 신문 기사 전시본이 기억에 남아. '당신들이 주장하는 평화의 신이란 허깨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던 이위종 특사의 연설문이 실린 것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외침에서 처연함마저 느껴져.
카츠키 : '국제법'이라는 것도 잘못 쓰이면 강대국들의 지배논리를 대변하는 허울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 같아.

기자 : 아까 박물관 3층에 전시돼 있었던 한국 대통령들이 보내 온 서예작품들 기억나? 이승만은 '백야청정', 박정희는 '순국대절', 최규하는 '민족정기', 김영삼은 '호연지기', 김대중은 '평화' 이렇게 각자 다른 글귀들을 보내 왔잖아. 다들 해석하는 방향성이 조금씩 달라서 눈에 띄었어. 그런데 이준 열사는 정말 왜 자결한 걸까? 무엇을 위해?
카츠키 : 그건 그와 신만이 알겠지. 더 중요한 것은 이준 열사의 죽음을 오늘날의 현실에 맞게 새롭게 재해석해 내는 것이라고 봐. 나는 '세계평화'에 한 표를 던지겠어.

기자 : 목표가 너무 큰 것 아냐? (웃음)

헤이그 이준 평화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이준 열사의 흉상
 헤이그 이준 평화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이준 열사의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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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와 함께한 반나절 가량의 동행은 끝이 났다. 우리는 나중에 다시 연락하기로 약속하며 헤이그 HS 역 앞에서 헤어졌다. 서로가 '가깝고도 먼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들이, '정말로 먼 타국 땅'에서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태그:#헤이그, #이준, #카츠키 나카오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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