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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자어문선각편병/국보 제178호
 분청자어문선각편병/국보 제178호
ⓒ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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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로 지정된 높이 25.6㎝의 이 편병을 1960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전시하였을 때 한국 유학생들의 관심은 적었던 반면 프랑스 사람들은 격찬하면서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입을 벌린 채 위를 향하고 있는 큼지막한 물고기 두 마리를 비롯하여 몸체 가득 배치된 선과 무늬들에서 마티스의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면서 격찬하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15세기 조선의 도공이 프랑스의 20세기 대표적인 화가랄 수 있는 마티스(Matisse, Henri-Emile-Benoit)를 이미 앞질러가고 있는 것이다. 서양인들의 이런 느낌은 우리 도자기와 우리의 문화에 한발 더 성큼 다가오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에 소중하다.

이렇듯 눈에 보이는 비교를 하면서 이 그릇이 만들어진 15세기의 분위기를 떠올려 보면 이 편병은 훨씬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우선 이 병의 생김새가 납작하다는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몸체는 납작하지만 바닥에 닿는 굽과 아가리는 천연스레 둥글고, 몸 빛깔보다 훨씬 진한 색이라 썩 세련되었다 싶다. 이렇게 그릇의 한 부분씩을 살펴가면서 보다 보면 또 다른 그릇들은 어떤 얼굴이며 빛깔일까 여간 궁금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래의 분청자 2점에도 물고기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우리의 옛 그릇에 많이 등장하는 연꽃, 국화, 모란, 당초 등과 함께 자주 보이는 물고기, 이 물고기가 유독 많이 보이는 도자기들은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분청사기이다.

발, 즉 무엇을 담는 그릇과 물이나 간장 등과 같은 액체를 담아 놓거나 옮길 때 쓰는 장군인데 왼쪽의 그릇에 그려진 물고기는 어찌나 큰지 금방이라고 푸득거리며 그릇 밖으로 툭 튀어나갈 것만 같다. 이 큼지막한 그림에서 피카소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을 느껴본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분청철화어문발과 분청철화어문장군
 분청철화어문발과 분청철화어문장군
ⓒ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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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장군에는 어떤 특별한 이야기나 좀 더 깊은 의도가 숨어 있을 것만 같다. 연꽃이 큼지막하게 핀 연못에 막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새 한마리가 낚아채나 구름은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는 듯이 그저 평화로울 뿐이다. 귀퉁이에는 바람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무엇을 의도한 걸까?

도공의 의도야 어떻든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새와 몸집이 거의 같은 크기로 그려진 물고기다. 당시의 도공들은 왜 이렇게 물고기를 지나치게 크게 그렸던 걸까?

16세기에 귀얄 기법으로 만들어진 아래의 그릇은 무척 즐겁다. 돼지털 등으로 만든 귀얄이란 붓으로 백토물을 듬북 찍어 가운데를 동그랗게 돌린 다음 바깥으로 살짝 굴려 빼 마무리하고 있는, 그리하여 이 그릇에 머물고 있는 귀얄의 흔적은 몇 번을 보아도 감탄스럽다. 

분청자 선각어문발
 분청자 선각어문발
ⓒ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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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가리 가까이 그려 넣은 복어 비슷한 물고기에선 위의 그릇들에 그려진 물고기애서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식욕이 느껴진다면, 어느 음식점 간판에 그려진 복어를 떠올린다면 지나친 걸까?

16세기에 살았던 이 그릇 주인은 어지간히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다. 때문에 누군가 이 그릇을 특별히 선물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읽으며 만난 몇 백 년 전의 그릇 하나를 보면서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음은 크나큰 즐거움이다. 도자기 박사 윤용이의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몇 달간에 걸쳐 읽으면서 톡톡히 누리던 행복이다.

되도록 조금씩 읽으며 만남의 깊음과 여운을 톡톡히 즐겼다. 좋다고 한꺼번에 내처 읽다 보면 얼떨결에 묻혀 버리고 말 귀중한 정보들이 유독 많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우리 조상들이 깃들어 사는 순간부터 절실한 요구에 의해 만들어져 쓰인 그릇부터, 다소 귀하던 도자기가 대중에게까지 널리 쓰이게 되는 19세기까지의 도자기 역사를 시대적 구분에 따라 조목조목 따져주고 있으니 오죽 많은 이야기들이랴.

이 책은 국립 중앙 박물관에 학예관으로 근무한 저자가 일반인들을 상대로 우리 옛 도자기에 대해 강의한 것을 바탕삼아 다시 쓰인 것이다. 저자는 의미 있는 도자기 230여점과 함께 우리의 옛 그릇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준다. 그릇이야기뿐이랴. 어떤 유물이나 유물 발굴 현장의 숨은 이야기도 풍성하게 들려주고 있는데 이 역시 큰 즐거움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차의 시작은 보통 9세기 당나라에서 대렴이 차를 가져와서 지리산에 심으면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삼국유사에 김수로왕의 비 허황옥이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차(茶)를 가져와 김해의 백산에 심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인(茶人)중에는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 차의 역사는 1세기부터 시작되어 약 2천년에 이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나라에 불교가 4세기 후반에 수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인도로부터 불상이 1세기경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 신라의 질그릇 편에서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차의 역사와 불교 전래 역사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법한 이야기이다. 이처럼 우리 옛 그릇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우리 역사 관련 상식들은 상식대로 풍성하게 접하며 책읽기의 즐거움을 좀 오래도록 의도하여 즐기게 한 그런 책이었다.

<우리 옛도자기의 아름다움>
 <우리 옛도자기의 아름다움>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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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에 있는 도자기는 '청자상감모란동자문주전자'인데 타원형의 풍만한 몸체 가득 당초무늬를 베풀고 천진난만한 아이를 그려 넣었다. 이 주전자는 다산을 염원하고 있다.

위의 분청자들에 물고기를 큼지막하게 그린 것도 '다산'을 염원하면서이다. 그 염원이 간절한 만큼 될 수 있는 한 아주 크게 그렸을 것이리라.

몽골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이란 황량한 먼지뿐, 때문에 아이를 될 수 있는 한 많이 낳아 나라가 북적이는 것이 재건의 첫걸음이자 중요한 자산이었을 터, 그동안 큰 의미를 따져보지 않고 바라보던 우리 옛 그릇들에 담겨진 무늬 하나 하나가 훨씬 의미있게 바라보아진다고 할까?

이렇게 도자기를 통하여 다시 바라보는, 자칫 딱딱한 역사는 훨씬 쉽게 이해되고 이제까지 박물관이나 문갑에 전시물처럼 놓여 있던 우리의 옛 그릇들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알고 싶어하게 한다. 이 책이 의도한  목적이다.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뿐일까? 이 책은 이제까지 우리가 거의 외면하고 잘 돌아보지 않았던 도기, 즉 질그릇에 대해 책의 반절이나 할애하였는데, 덕분에 우리의 옛 그릇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청자나 조선 백자만 우리의 우수한 도자기로 떠올리기 쉬운 편견을 깨뜨렸다고 할까? 이 책은 또한 우리들이 우리의 역사와 유물, 즉 그릇과 관계되어 범하고 있는 오류들을 잡아주고 있다.

▲ '도기'가 아니라 '토기'라고 부르는 것이 맞고 분청사기가 아닌 분청자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 옹기는 조선시대에 새로 등장한 형태이다? ▲ 분청사기는 질이 낮은 그릇이다? ▲  우리나라의 도공들이 임진왜란 때 대거 일본에 끌려가면서 분청자가 쇠퇴하고 백자가 많이 만들어졌다? ▲ 우리나라는 채색자기의 제작기술이 없어서 순백의 백자만 주로 만든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분청사기라고 하는 분청자는 거친 질감과 '사기'라는 꼬리표 때문에 질이 낮은 것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분청자도 왕실에서 사용했던 고급 제품이 있었고, 백자나 청자에도 질이 낮은 하품이 있었습니다...(중략)자기의 명칭에 관해서 덧붙인다면, 우리 도자기에서 일반적으로 청자를 청사기, 백자를 백사기라 칭한다면 분청자 역시 분청사기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청자나 백자를 청사기나 백사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청자, 백자라고 쓴다면 분청사기 또한 분청자라고 불러야만 합니다. 그렇다고 분청사기라는 말이 틀리다는 것이 아니라 용어에 적용된 일관된 흐름을 따라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 책속에서

덧붙이는 글 | <우리 옛도자기의 아름다움>(윤용이/돌베개/2007년 9월/1만 8천원)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

윤용이 지음, 돌베개(2007)


태그:#분청자, #분청사기, #윤용이, #도자기,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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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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