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29일)는 요가수련이 있는 날이었다. 요가수련이 있는 날은 아내가 퇴근하기 전에 미리 저녁을 먹어둔다. 아내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7시가 넘는데 이 때 저녁을 먹으면 요가수련 할 때 위에 부담이 가서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어제는 아내가 신발가게에 들렀다가 올거라 늦을 거라고 해서 나 먼저 밥을 먹었다. 몇 달 전 구두티켓 한 장을 선물 받은 아내는 세일기간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녀석은 밥맛이 없는지 엄마 오면 엄마랑 같이 먹겠다고 했다. 딸아이는 밥을 잘 먹어서 좋다. 김과 참치만 있으면 언제라도 자기 밥그릇을 깨끗이 비워낸다. 먹여주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먹는다. 딸아이와 저녁을 먹고 상을 치우고 있는데 아내가 퇴근해 들어왔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신발부터 신어 본다.

 

“어때요? 괜찮아요? 너무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아요?”하면서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더니 “괜찮네. 고급스러워 보이고”하면서 스스로 만족감을 표현한다.

 

“나랑 지민이는 밥 먹었어.”

“그래요? 그럼, 난 비빔밥이나 만들어 먹어야겠다.”

 

남편인 내가 밥을 먹었다는 말에 아내는 간단한 비빔밥으로 저녁을 때우려고 한다. 아내는 능숙한 동작으로 달걀프라이에 김치와 고추장 그리고 참기름을 넣어서 비빔밥을 만들어 냈다. 


“강민아, 밥 먹자.”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낸 비빔밥을 몇 숟가락 뜨던 아내가 아들을 불렀다. 그런데 아들 녀석의 입에서 영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난 짜장면 먹을래.”

아들 녀석이 갑자기 자장면이 먹고 싶다는 것이다. 아내가 그냥 밥 먹자고 달래 보지만 막무가내다. 자기는 기어이 자장면을 먹어야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지? 자장면을 달랑 한 그릇만 주문할 수도 없고.”

“짜장라면 사다 둔 게 어디 있을 거예요.”

이 추운 날씨에 자장면 한 그릇 배달해 달라고 하기도 미안하고 해서 혹시 짜장라면 남은 게 있나 찾아보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종류의 라면만 몇 봉지 있을 뿐이다.


“어쩔 수 없네. 내가 마트에 가서 사올게. 지갑 어디 있어?”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내가 짜장라면을 사오기로 하고 아내의 지갑을 찾았다. 아내의 지갑에는 5000원 권 한 장과 1000원 권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강민 엄마, 돈이 별로 없네. 돈 좀 찾아야겠다.”

“응, 오늘 구두사면서 현금을 썼거든요. 우선 거기 있는 잔돈으로 사오세요.”


아내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고 지갑을 거꾸로 드는 순간 지갑 한 쪽 구석에서 뭉치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이게 뭐지?’하고 살펴보니 안 쓰는 카드 몇 장과 꼬깃꼬깃 접은 만원 짜리 두 장 그리고 로또용지 한 장이 한 뭉텅이로 엉켜있었다.


“강민 엄마, 이게 뭐야? 웬 돈이고 웬 로또야?”

땅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주워들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응, 그게 뭐냐면….”

아내는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중간에 말을 끊었다가 ‘에이, 들켰네’하면서 말을 이었다.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니 2만원의 돈은 흔히 말하는 ‘비상금’이었다.


“큰 돈도 아니고 겨우 2만원을 뭣 때문에 감추고 다녀? 그냥 카드로 쓰지.”

“당신 몰래 쓸 때가 있거든요. 강민 아빠한테 말하기 미안한 그런 일로.”

나한테 말하기 미안할 일이라고? 남편인 나에게 말하기 미안한 일이 대체 뭘까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가령 처가식구들이랑 시내에서 만나 밥 먹을 때, 혹은 길가다가 예쁜 티를 보았는데 꼭 사고 싶을 때 등이란다.


조금 의외의 말이었다. 내가 언제 그런 일로 싫은 소리 한 적 없는데. ‘혹시 내가 그 동안 이런 일로 아내에게 싫은 표정이라도 했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그런 일로 싫은 소리 할 입장이 아니다. 오히려 돈 많이 못 벌어다 주는 내가 미안할 따름이지.


“참 내. 어이가 없어서. 뭐 그런 일로 미안해 해. 근데, 그건 그렇다 치고. 이 로또는 또 뭐야?”

“한 번에 부자 될 수 있는 게 이 길 밖에 없잖아요.”

 

아내는 그동안 늘 로또를 사고 싶었다고 한다. 어려운 현실에 힘이 들고 마음이 답답할 때면, 그래서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아내는 늘 로또 1등에 당첨되는 상상을 했다고 한다. 1등에 당첨이 되어 수십 억원의 돈을 받고나서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까(가령 큰 집으로 이사 가고, 가구들도 새로 사고, 또 친정식구들도 좀 도와주고, 그리고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도 도와주고 등등) 생각하면 머리속으로나마 행복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상상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든다고 한다.

 

아내의 말을 들으니 가장으로서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돈을 많이 벌어다 주었으면 아내가 저런 상상 안 할 텐데. 아내가 로또를 사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비상금 2만원을 감추고 또 그것 때문에 미안해하는 일도 없었을 것인데.’


아들에게 줄 짜장라면 사러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기분이 영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 시켜주고는 요가 배우러 간다는 핑계로 집을 나섰다.


요가를 하면서 우울한 마음을 풀었다. 오늘도 요가 동작은 여전히 어렵다. 다리가 불편해서 자세가 안 되는 나로써는 요가수련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1시간의 힘겨운 수련을 마치고 집으로 와보니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고 있었다.

 

“강민아, 자장면 맛있게 먹었어?”

“응. 내일 또 사줘.”

자장면을 좋아하는 아들은 내일 또 자장면을 사달라고 한다.


“내일 아침에 자장 만들어 놓고 갈테니까 저녁에 밥 비벼 먹으세요.”

다음날(오늘)이 아내의 회식이어서 내가 아이들 저녁을 챙겨야 하는데 아내가 자장을 만들어 놓고 가겠다는 것이다.

 

“응, 그렇게 해. 강민 엄마도 내일 많이 먹고 와.”


오늘 아침. 아내를 출근시키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내가 맛있는 자장을 만들어 놓았다. 자기 출근 준비하기도 바쁠 텐데 남편과 아이들 먹으라고 자장을 만들어 놓고 나간 것이다. 아내가 만들어 놓은 자장을 보니 아내에게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점심 같이 먹자.”

식당에 앉으면서 아내가 물었다.

 

“무슨 돈이 있어서 점심을 사주겠다는 거예요? 당신도 비상금 있어요?”

“며칠 전에 원고료가 입금되었거든.”

 

“근데 나 오늘 회식인데, 점심 많이 먹으면 안 되는데.”

“그래도 남편이 사주는 거니까 많이 먹어.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점심을 먹으면서 나는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의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 로또를 사지 말 것과 또 절대로 비상금을 따로 챙기지 말 것을 당부했다. 설사 부자가 안 되더라도 열심히 일한 대가에 감사하며 살아 가지고 또 남편인 내가 아내의 지출내용에 일체 뭐라 안 할 테니 절대로 비상금 만들지 말고 항상 투명하게 체크카드를 사용하자고 했다.


“강민 엄마, 능력 없는 남편으로서 여러 가지로 미안한데, 우리 돈 없어도 지금처럼 서로 믿고 사랑하면서 살면 충분히 행복하잖아? 우리 지금 이대로에 감사하면서 살자. 사랑해. 그리고 오늘 회식 때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와.”


태그:#비상금, #로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