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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서두르지?”
“아- 피곤해.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그래요?”
“누어있으면 한도 끝도 없이 게을러져.”
“일요일에는 조금 게으름을 피워도 되잖아요.”

 

투덜거리는 집사람을 재촉하여 집을 나섰다. 군산에 거주하고 있는 묵은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기에 마음이 조금은 조급하였다.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태도에 관심을 둘 겨를이 없었다. 전주 군산 간 도로에는 안개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을 닮아있다.

 

조급한 마음과 보이지 않는 길이 교차하고 있었다. 마음이 산란하니,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 안개가 자욱하니 조심하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란 참으로 오묘하다. 조마조마하니, 불안한 마음이 커진다. 불안은 여유를 앗아 가버린다. 다른 생각은 조금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마음이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으니, 악순환만 계속되는 것이다.

 

“오랜만이네.”

묵은 친구란 참으로 좋다. 된장이 왜 좋은 것인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살아가는 공간이 달라도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각적으로 바라볼 수 없어도 마음이 소통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냥 좋다. 그것이 묵은 친구의 장점이 아닌가? 악수하는 손에 감지되는 느낌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군산 세계 철새 축제'가 오늘(25일) 끝나는 날이다. 녀석은 그곳으로 직행하자고 하는데,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우선은 만남의 기쁨을 즐기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 것이다.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전해지는 감정이 같으니, 곧바로 서천으로 향하였다. 목적지를 구체적으로 정할 이유는 없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가면 되는 것이다.

 

녀석과의 여행은 언제나 그랬다. 대학 다니던 때 사귄 친구니, 30년도 더 되었다. 세월에도 변함이 없다. 몸에 배어 버렸다. 달렸다.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대화하는 즐거움은 매우 크다. 안갯속을 달리던 성급한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시나브로 편안해졌다.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니, 넉넉해진 것이다.

 

“야 ! 바다다.”


눈에 들어오는 파란 바닷물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말할 필요는 없었다. 방향을 그쪽으로 잡았다. 10월의 바닷가는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절 멀리 바다 가운데에 떠 있는 섬이 유난하다. 혼자 있으면 외로울 것 같아서인지 옆에 작은 섬이 하나 더 있어 고독을 채워주고 있었다. 자연의 섭리란 정말 완벽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충청남도 비이면의 비인 해수욕장이었다. 처음 찾는 곳이었지만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출렁이는 바다는 고향 바다를 생각하게 하였다. 거기에다 갈매기 한 마리 비상하는 모습이 가슴에 박힌다. 바쁠 것이 없는 한적한 바다의 모습은 편안하게 해준다. 햇살의 감미로움에 접어 묵은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은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구워진 조개의 맛이 후각을 따라 전해지니, 식욕을 자극한다. 둥그렇게 앉아서 한쪽 손에 장갑을 끼고 조개를 구어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맛을 음미하면서 묵은 녀석과 마음을 통하게 되니, 그렇게 감미로울 수가 없다.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천천히 드러나고 있었다. 감정이란 놈의 얼굴을 볼 수가 있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비인에서 출발하여 철새를 보기 위하여 금강 하굿둑으로 향하였다. 일요일이고 축제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축제장은 사람과 자동차로 넘쳐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무엇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모습이 그렇게 우뚝할 수가 없다. 자동차가 막혀 불편하기는 하였지만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철새를 보기 위해서는 한참 더 들어가야 하였다. 금강을 따라 10여분 이상 달리다 보니, 새로운 멋이 있었다. 강을 따라 펼쳐지고 있는 텅 빈 들녘의 모습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풍요로 넘치던 들녘의 바뀐 모습이 마음을 잡는다. 채우기 위해서 비워야 하는 철학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사람들로 넘치던 축제장의 모습과는 달리 철새 탐조하는 곳은 한가하였다. 철새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서 있을 뿐이었다. 강에는 물이 넘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하게 관찰을 해보니, 건너편 강가에 수많은 새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새들이 저렇게 많다니----.”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의 새들이 물 위에 떠 있었다. 거대한 함공모함을 연상할 정도로 많은 수였다. 많다는 것은 감탄하게 만든다. 한 마리가 일어서니 뒤를 따라 군무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멀리 있다는 점이었다. 새들이 점처럼 보인다.

 

“새들도 사람들이 무서운 것이지.”

친구 녀석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람들이 서 있는 곳에는 새들이 접근하지 않는다. 두려운 것이 분명하였다. 새들을 바라보면서 내 관점이 아닌, 새들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았다. 조석변이를 일삼고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발버둥을 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새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오늘 보다는 내일은 더 나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충고하지는 않을까? 부질없는 욕심일랑은 아예 털어버리고 자유를 만끽하고 말하고 있지는 않을까? 순리대로 살아가면서 이기심을 버리고 정직하게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욕심은 자유를 구속하고 삶의 여유를 앗아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새들의 몸짓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 될 것이라고 믿고 노력하라고 말한다. 좋은 습관을 몸에 배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비전을 향해 미음을 구축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새들의 이야기에 젖어 있다 보니, 시간 가는 것을 잊어버렸다.

 

새들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은 욕심이 커졌다. 좀 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보고 싶었다. 그러나 새들은 그런 마음을 외면하고 있었다. 멀리 도망만 치고 있는 새들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된다. 새들을 통해 욕심을 버리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한순간도 지나지 않아 욕심을 키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염치가 없고 어리석은지를 깨닫게 된다. 금방 전에 생각하였던 일들은 한순간에 잊어버리고 욕심을 키우고 있으니, 난감한 일이 아닌가? 알아챘으면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나기 위하여 부단없이 노력하고 수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새들이 사람들에게 접근하지 않는 이유가 분명하니, 있는 그대로 보고 즐기면 되는 일이었다.

 

묵은 친구 녀석과 헤어지는 것이 아쉽고 섭섭하였지만, 더 반가운 만남을 위하여 돌아섰다. 돌아오는 길은 뻥 뚫려 있었다. 안개는 모두 다 벗어져 앞이 환하다. 막힘없이 길을 달리는 기분은 최고였다. 욕심을 버리면 만사형통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행이어서 오래 남을 것 같다. 새들의 군무가 어른거린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충남 서천과 전북 금강 하구 둑에서 촬영

테마 여행 응모 기사


태그:#어촌, #철새, #군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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