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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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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순수하고, 순결한 존재로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영악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굉장히 낯설어 한다. 어른들 세상이 더럽고, 잔인한 세계이기에 자기와 다른 하얀 종이처럼 깨끗하기를 원한다. 이런 생각은 오늘만 아니라 우리 옛 이야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옛 이야기들은 어린이를 둘러싼 폭력성, 어른들을 능가하는 능력을 많이 보여준다. 계모의 질투, 가난한 어머니를 꾀어 떡과 옷까지 빼앗고, 어린이까지 잡아 먹는 호랑이, 나이든 부모를 위하여 어린 자식을 죽이는 일 따위를 많이 볼 수 있다. 옛 이야기들을 모아 어린이의 세계와 힘, 의미를 살펴본 책이 최기숙이 쓴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이다.

최기숙은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을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어른이, 어린이를 어떻게 규정하고 거세하였는지 말하고 있다. 거세란 말은 강제성과 폭력성이 개입되어 있음을 말한다. 그 방법이란 구전설화를 통한 설명이다.

'해와 달 오누이' '여우누이' '달래나보지' '오누이힘내기' '아기장수' 따위가 나오는데 그 중 '아기장수'를 살펴보면 아기와 장수가 어울릴 것 같은가? 대부분 어른이 장수가 된다. 아기장수라 함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아기가 어른보다 힘이 세다. 그럼 그는 제거되어야 한다. 어린이를 자기와 같은 존재, 존엄한 존재, 인격을 지닌 자로 인식하기를 거부한다.

"'아기장수'라는 단어는 '아기'와 '장수'라는 공존할 수 없는 단어의 조합을 통해 존재론적적 모순을 표상한다. 아가장수는 아기라는 현실태 속에서 장수라는 가능태를 표출하는 존재다. 이러한 아기장수는 가족들에게 위협적이며 동시에 경외로운 존재로 인지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질성은 가족과 주변인들로 하여금 그를 정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수용하지 못하도록 이끈다."(본문 32쪽)

아기장수는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한다. 어른보다 우위에 선 아기는 제거되어야 한다. 어른에 순응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어른에 종속되어야만 어린이답다. 아기장수가 기존 사회를 변혁시키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어른, 부모는 수용할 수 없다. 꿈은 사라져버리고 자기 자신을 말할 수 없게 된다. 어른이 말하는 바를 따라가야 한다. 어린이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어른이 주체가 되는 사회구조 속에 갇혀 사는 비극적 희생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 시대 어린이들도 어른, 부모가 만든 구조 속에 살도록 강요받는다. 어린이는 자기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 수 없다. 부모와 어른이 만들어 준 꿈을 이룩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어린이가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연약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꿈을 이루어가도록 하는 것인데 어른과 부모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린이는 희생당하는 어린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지혜로운 어린이가 있음을 말한다. 최기숙은 어린이는 무엇으로 지혜로운가에서 "어린이는 순진무구한 놀이를 통해 어른들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대한 열쇠를 제공하기도 한다. 어른들에게는 심각한 삶이 어린이에게서는 명쾌한 한판의 놀이로 다루어진다"고 한다.

'머슴장가노내기' '어린이가장' '아버지를 구한 아들의 지혜'를 통하여 어린들이 슬기를 통하여 어린이가 얼마나 주체적인지 말해주고 있다. 아버지를 구한 아들의 지혜는 원님이 백셍에게 한겨울에 복분자를 구해 오라고 명령한다. 복분자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뱀에 물렸다는 것이다. 원님은 한겨울에 뱀이 어디있느냐고 묻고 화가 나자 수탉이 나은 알을 사오라고 명령한다. 불합리한 일이지만 항변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는 단번에 푼다, '되묻는' 방식이다. 원님을 찾아가 아버지가 간밤에 해산을 해서 전하러 왔다고 한다. 남자가 어떻게 알을 낳느냐고 원님이 묻자 아이는 그럼 어떻게 수탉이 알을 낳느냐고 응수한다. 기만적 명령과 행동에 기만적 응수를 통하여 어린이는 문제를 해결한다.

기만과 폭력적인 어른들을 기만을 통하여 응수하는 어린이를 보여주는 지혜담 이야기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존경할 만한 어른은 없고, 연약하고 비굴한 어른 세계만이 가능할때 어린이는 어른이 되기를 두려워한다. 아예 어린이의 순수함을 벗어던지고 어른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희생담과 지혜담 이야기 모두가 어린이를 강요하고 억압하고, 영악한 어른을 영악한 방법으로 넘어선다. 어른을 중심으로 어린이는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희생담, 지혜담 둘 다에서 아직 주체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구전설화는 어린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어른이 만든 이야기다. 어른이 어린이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 의도가 숨어 있다.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구전설화에 나타난 어린이의 세계와 힘, 의미와 기대를 통하여 '어린이'와 '어린이 이야기'의 세계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최기숙은 전래민담에 대하여 생각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완전한 세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완전한 전래민담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전래민담의 어느 한 텍스트를 정전으로 채택하고 출판을 통해 그것을 고착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래민담의 세계는 현재적 의미를 창출하고 새로운 사회와 인간상에 응답할 수 있도록 재해석 되어야 한다. 절대적을 옳고 그른 세계를 전수시키기보다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관해 토론할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 전래민담의 본원적 존재방식인 것이다."(본문 174쪽)

옛 이야기는 어린이들이 끊임없이 읽을 것이다. 지금 어린이가 어른, 부모가 되었을 때 자기 아이들에게 자기가 읽었던 옛 이야기를 읽게 한다. 자신이 강제적으로 세뇌되었던 어린이 상을 또 다시 강요하는 비극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어린이가 주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새로운 인식을 통하여 어린이가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꿈을 이루어가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강요된 꿈은 또 다른 강요를 낳게 된다. 이는 비극이다. 어른과 어린이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는 존재이다.

덧붙이는 글 |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 최기숙 | 책세상 | 2001년 03월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

최기숙 지음, 책세상(2001)


태그:#어린이, #옛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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