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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박근혜 전 대표의 철학을 볼 때 역주행한다든지 갓길을 가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차를 다른 방향으로 세워놓고 언제 시동을 거느냐를 고심해 온 것으로 안다. 오늘 유정복 비서실장을 보내주시겠다고 했기 때문에 오늘 좋은 말씀을 해주시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12일 오전 10시경 대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기대와 희망이 섞인 어조로 이같이 말했다.

 

이는 강 대표만의 바램이 아니었다. 이명박 대통령후보를 비롯해 한나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이날까지 박근혜 의원의 입에 주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측, 대구·경북 선대위 출범식 대거 참석...'최악의 시나리오' 피한 한나라당

 

박 전 대표의 측근들은 "경선에서 떨어진 박 전 대표에게는 '실탄'이 한 발밖에 남지 않았다"고 강조해왔다. 박 의원이 이회창 후보를 지지할 경우 이명박-이회창의 지지율이 호각지세를 이룬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도 한나라당을 긴장시킨 대목이다.

 

그 때문에 박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 측에 계속 대립각을 세우거나 이회창 후보에 힘을 실어주는 뉘앙스의 발언을 할 경우 당 내홍이 장기화되지 않겠냐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이회창 출마'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힘에 따라 한나라당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게 됐다.

 

구미에서 열린 대구·경북지역 선대위 출범식에 모인 이 지역의 당 소속 의원 25명중 불참한 사람은 박 전 대표뿐이었고, 박 전 대표도 비서실장 격인 유정복 의원을 대리 출석시킴으로써 자신이 '정권교체'의 대세를 거스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경선 당시 박 전 대표의 측근이었던 유승민·최경환·김재원·곽성문 의원 등도 군말 없이 선대위 출범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이들은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묵묵부답이었다. 친박 진영의 '대변인' 역할을 해온 유승민 의원도 이날만은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강재섭 "원본이나 사본이나 내용은 똑같다"

 

그러나 행사에 참석한 당직자와 의원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김광원 경북도당 위원장은 "이회창 전 총재가 가는 길이 정도가 아니라고 한 박근혜 전 대표에게 박수를 보내달라"고 칭송했고, 대통령후보 경선주자였던 원희룡 의원도 "지난 여름 경선에서 '아름다운 승복'을 했던 박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을 만드는 데 앞장섬으로써 경선 승복의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해 달라"고 말했다.

 

강재섭 대표도 "박 전 대표가 유정복 비서실장도 보내고 오늘(12일)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정권창출에 매진하겠다고 했다"며 "내가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이제 나도 떫은 소리를 안 하겠다"고 기쁨을 표시했다.

 

강 대표는 일부러 유정복 의원을 연단으로 불러올린 뒤 "경기도 국회의원이지만 (박 의원의) 비서실장 자격으로 왔다. 박 전 대표를 끌어올리려고 했는데 원본이나 사본이나 내용은 똑같다"며 손을 함께 맞잡고 포옹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유 의원은 행사가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 "박 의원이 보내서 (구미에) 왔고, 선거운동은 후보 중심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박 의원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명박 "박정희 전 대통령 뜻(?) 이어 한반도 대운하 건설하겠다"

 

전날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회유책'을 내놓았던 이명박 후보도 "우리는 경선을 통해 후보를 만들고,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깨끗한 승복을 하는 정치를 만들 수 있게 됐다"면서 "나는 박 전 대표와 함께 정권을 창출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동반자가 돼서 함께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 후보는 박 전 대표의 발언에 고무된 듯 박정희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제 대한민국에 고속도로도 뚫지만, 운하를 만들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문서를 찾아냈다. 1978년 박 전 대통령이 '우리가 기술이 모자라니, 미국의 기술을 좀 빌려서 검토시켜봐 달라'고, 미국 버지니아에 있는 미 공병단에 한강과 남한강 운하용역을 의뢰했었다. '그 사업의 타당성이 있다', '운하를 만들어야겠다'는 보고서를 봤지만 그 작업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 문서도 찾아냈다.

 

박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으면 아마 한강과 낙동강이 운하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만이 아니라 낙동강의 기적도 만들어냈을 것이다. 저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약속을 하겠다. (박 전 대통령이) 못다 한 낙동강의 기적을, 저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경상북도를 꿰뚫는 낙동강의 기적을 만들어내겠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경선 당시 "총리를 지낸 분이나 관계자들로부터 (아버지가 검토했다가) 폐기한 조치라는 증언을 분명히 들었다"며 이 후보와 엇갈린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이명박 고향이 어디인지 아냐?"... 너나없이 지역감정 부추겨

 

이 후보를 포함해 강 대표와 대구시당·경북도당 위원장이 너나없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한 것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호남 유권자들이 여권 후보에 90%대의 압도적인 지지를 한 점을 들어 영남 유권자들의 '분발'을 촉구한 발언들이었지만, 정치 발전의 흐름에 저해되는 발언임은 분명했다.

 

김광원 경북도당 위원장은 "이명박 고향이 어디인지 아냐?"며 후보가 '포항 사람'임을 일부러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낙후된 대구·경북 경제 살릴 사람이 누구냐? 이명박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대선이 37일 남았는데, 할매·아지매·아저씨·제수·형수 몽땅 데리고 나가 투표율을 9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투표율 90%에 득표율 90%면 당선 안 되겠냐"며 지역 '몰표'를 주문했다.

 

박종근 대구시당 위원장도 "우리가 반성할게 하나 있다"며 "지난 대선에서 대구·경북 유권자들은 한나라당 후보에게 50%의 지지율 밖에 주지 못했다. 20%는 좌파정권에게, 30%는 투표를 안 했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재섭 "대구-경북이 (한나라당 밀어) 이제 본전을 찾아야 한다"

 

이 후보는 "지난 두 번 선거에서 대구·경북의 50%만이 (한나라당 후보에) 지지를 보냈다. 불과 30만표, 50만표 차이로 졌기 때문에 50% 지지가 아니라 70~80% 지지만 보냈어도 당선됐을 텐데, 우리는 (투표)한다고 말만 했지 지지 폭이 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는 "박종근 대구시당 위원장이 90% 투표율에 90% 지지율을 받겠다고 여러 번 공언했는데, 내가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이 되면 이것은 90%의 지지를 보낸 대구·경북의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강재섭 대표도 "지난 10년간 대구·경북이 한나라당을 밀었는데 이제 삼십 며칠을 못 밀겠냐?"며 "본전을 찾아야 한다. 승리하자"고 말했다.


태그:#이명박 , #강재섭, #김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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