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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두 번째 소개로 만난 여인, 고향 교회 목사님이 한 번만 더 만나보라는 말씀에 이끌리어 만난 여인, 그 여인은 한 눈에 들어왔다. 서른 세번째 만날 여인이 없었다. 결국 그 여인은 아내가 되었다.

 

그 여인은 당돌했다. 자기 몸속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 쉽게, 거리낌 없이 말했다. 두 번째 만남부터 “저는 B형 간염 보균자입니다”라고 한다. 무슨 말인지 몰라, “B형 간염 보균자가 무엇인데요?” 하고 물었다.

 

B형 간염에 대해서는 들어보았지만 ‘B형 간염 보균자’라는 말은 처음 들었으니. 무지함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기분도 상했다. 자기가 가진 병명을 무엇 때문에 말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참 순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여인을 말을 계속했다.

 

21살 때, 꼬막을 먹고서 급성 간염에 걸려 한 달간 병원에 입원 한 후 B형 간염 보균자가 되었으며, 한 번 보균자가 되면 치료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했다. 간암에 걸릴 확률도 높았고, 특히 아이가 태어나면 모유를 수유할 수 없다는 말도 했다.

 

듣고 보니 좀 무서운 병이라는 생각과 아직 병은 아니지만 가장 무서운 간암에 걸릴 확률이 높고, 모유 수유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로서는 멈칫했다. 하지만 그 여인을 만나면 만날수록 마음에 들었고, 얼굴과 마음까지 예쁜 사람을 B형 간염 보균자라는 이유만으로 헤어질 수는 없었다. 모유 수유를 하면 좋겠지만 분유를 먹이면 되고, 간암의 위험성은 있지만, 언젠가는 다들 죽음을 맞는다. 그 시기가 조금 빠르고 늦은 것뿐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푹 빠져버렸다.

 

늦게 한 혼인이라 아이를 빨리 가지기를 원했는데 ‘허니문 베이비’였다. 사랑스러워 아내 손을 잡았다. “나도 이제 아빠다, 나에게도 아이가 생겼다”고 마구 외치고 싶었다. 이런 생각에 젖어 있는데 느닷없이 아내가 말했다.

 

“저는 아기를 낳으면 모유를 먹이고 싶어요”라고 말입니다. 당연한 말인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아니 당연한 것을 왜 말하는 거요.” “간염 보균자 모유 수유를 못한다고 했잖아요.” 머리가 멍했다. B형간염보균자는 모유 수유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 그제 서야 생각났다. 아내의 말을 듣고 반가움과 불안이 교차했다.

 

“모유를 먹이지 못하면 분유를 먹이면 되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다들 분유를 먹이는데 무슨 상관이 있어요. 모유를 먹이지 않더라도 아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모유만이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아내의 모유 수유에 대한 생각은 매우 강했다. 정말 강했다.  엄마가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모유 수유가 B형간염보균자인 자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내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답답해하고, 마음 아파하는 아내를 설득하고자 했지만 아내의 안타까운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신의 고집 때문에 아기가 평생 간염보균자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를 생각하면 분유를 먹여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모유보다 아기의 건강한 삶이 더 중요하고 위로하면서 모유를 먹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공부하기로 했다.

 

인터넷은 궁금증을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OO 건강사이트, 간사랑동우회, 언론 건강 프로그램은 다 찾아보았다. 그 때 우리를 감격시킨 소식을 들었다. 어떤 의사 분을 통하여 모유 수유가 수직 감염 가능성이 높지만 24시간 이내에 '간염 면역글로불린'과 '간염 백신'을 맞으면 거의 예방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보, 모유 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24시간 이내에 '간염 면역글로불린'과 '간염 백신'을 맞으면 거의 예방이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알았어요?”

 

아내와 나는 환호했다. 아내의 환한 얼굴은 더욱 빛났고, 엄마로서 가졌던 죄책감을 씻은 기분인 것 같았다. “그래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방법을 알았으니, 건강하게 아기 놓고, 접종시키고, 모유 먹이면 될거에요”하며 아내를 꼭 안아 주었다.


1998년 5월 14일 아내가 진통을 시작했지만 밤새 나는 느긋하게 잠을 잔 모양이다. 새벽녘에 일어나 진통하는 아내를 보고 새벽예배에 같이 가지 않는다고 화를 내었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밥까지 차리게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진통이 끊이지 않는 아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오후 12시 17분 드디어 새 생명이 태어났다.

 

“엄마께서 B형 간염보균자이시군요.”
“간염 면역글로불린과 간염 백신을 접종하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주사해 주세요.”

 

간호사와 의사가 깜짝 놀랐다. 산모와 아빠가 별 것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유를 먹이기 위하여 얼마나 마음이 아렸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면역 주사까지 맞아서니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젖을 먹이는 아내 모습과 엄마 젖을 빠는 아이의 모습은 세상에 가장 거룩하고, 존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내에게 고통은 그 때부터였다. 어느 날 아내가 쓰고 있던 육아일기를 우연히 읽었다.


'1998년 5월 15일. 세상 의학으로는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지 못한다는 나의 건강상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인헌이에게 젖을 먹이겠습니다. 강건함을 허락하시고 인헌이가 모유를 먹음으로 더욱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아내는 자신의 건강상태 때문에 인헌이에게 끊임없는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간염 보균자라는 족쇄가 이렇게도 강한 것인가? 아내의 심적 상태가 걱정되었다. 예방 접종을 하면 된다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어떻게 아내를 위로할 것인가? 무슨 방법이 없을까? 사실 내가 해 줄 있는 방법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1998년 5월 22일. 오른쪽 유두 상처로 인해 인헌에게 젖을 먹이 못했다. 01:50~02:15 분유(50ml) 04:40~05:25(50ml) 그리고 07:30~07:50 젖 10:20~10:30 젖.'

 

찢어진 젖꼭지만큼 아내의 마음도 찢어지고 있었다. 고통을 참을 수가 없었다, 수유 시간이 되면 약을 발라 둔 양쪽 가슴을 따뜻한 수건으로 소독하고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찢어져 있는 유두를 빠는 아이의 힘은 얼마나 아픈지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을 참아야 했다. 젖을 먹이고 싶지만 젖꼭지의 상처는 마음의 상처보다 더 컸던 모양이다. 분유를 먹일 수밖에 없는 엄마의 고통, 젖을 먹이고 싶은 아내의 심적 갈등을 읽으면서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1998년7월 20일. 인헌이에게 수유한 후 피가 섞인 젖을 먹인 것을 알았다. 빈혈과 간염으로 건강하지 못해 인헌에게 좋은 모유를 먹이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

 

“여보 큰 일 났어요!”
“왜 그래요?”
“인헌이에게 젖을 먹었는데 피까지 먹은 것 같아요.”

 

그랬다. 인헌이의 입에는 피가 흥건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간염이 피를 통하여 전염될 수 있음을 알기에 아내는 당황과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여보 어떻게 해요?”
“너무 걱정 마세요. 면역 글로빈 주사도 맞았고, 피를 먹었더라고 반드시 간염에 걸리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내는 젖꼭지를 빼고, 인헌의 입술을 씻어냈다. 씻어내면 간염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인헌아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 미안해, 어떻게 해, 엄마가 미안해”


아내는 벌써 울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아내를 어떻게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인지 고민했지만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 책임이 아니다. 인헌이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여보 당신이 자꾸 그러면 더 큰 문제야. 기다려 보자고, 앞으로 간염백신도 접종 하면 되잖아. 왜 죄책감을 가져요. 자책하지 마세요.”


아내를 꼭 안아주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 마음이 이런 것일까? 아빠는 가질 수 없는 마음. 걱정되었다. 정말 인헌이에게 B형간염이 감염된다면 어떻게 하나. 괜히 모유 수유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는 그 후로 B형간염백신 접종 때만 되면 접종을 하고 항체 검사를 받으려고 했지만 나이가 어리면 항체검사를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아이가 항체검사를 할 수 있는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 2002년 12월 28일 항체검사를 했다. 43개월 11일 만에 받은 항체검사였다. 이틀 후에 오라 했다. 48시간은 길고도 길었다. 2002년 12월 30일 아침 일찍 보건소에 갔다.


“항체가 생겼습니다”, '항체' 얼마나 듣고 싶었던 단어였는지 모른다. 반가웠고 기뻤다.

 

“여보 항체가 생겼어요, 항체가 생겼어요!”
"그래요 이제 마음 편안히 가지세요."


아내의 눈은 젖었다. 아내의 마음 한 자리에 잡고 있던 묵직한 ‘B형간염 보균자’라는 고통은 사라졌다. 아내는 짐을 벗어던져 버리고 한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맑은 얼굴을 한 아내가 그날따라 예뻤다. 아내 등에는 이미 셋째 아이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태그:#B형간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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