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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티티카카 호수의 '태양의 섬'에서 만난 아이
▲ 태양의 아이 볼리비아 티티카카 호수의 '태양의 섬'에서 만난 아이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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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던 중이었다. 여행 내내 '길거리 영어' 하나와 '몸짓언어'로만 꿋꿋하게 버텨오던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로 한 건 그만큼 라틴아메리카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대륙이 하나의 언어로 소통한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볼리비아에 선교사로 계시는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선배'가 한 달 동안 집이 비니 와서 지내라는 메일이었다. 알고 지내는 스페인어 개인교사를 소개해 줄 수 있다는 내용도 덧붙여있었다.

선배가 살고 있는 코차밤바(Cochabamba)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안데스 산지 해발 2700미터에 위치한 도시의 하늘은 맑았고, 사람들의 삶은 느릿느릿했다. 산허리를 깎아 만든 달동네가 시내를 에워싸고 있었고, 어둠이 내리고 작은 불빛들이 하나둘씩 들어오면 '안데스 달동네'는 이내 별 밭이 되어 반짝거렸다. 그리고 그 끝에 십자가가 있었다.

달동네와 십자가. 또 하나의 추억이 창이 열린다. 연애시절, 아내의 집은 서울 금천구 시흥2동 달동네였다. 우리는 하룻밤에도 몇 차례씩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리곤 했었다. 버스 종점에 내려 아내를 바래다주러 언덕길을 오르고, 다시 아내가 나를 배웅한다고 그 언덕길을 내려오고… 막차 시간은 다가오고 손은 놓기 싫고….

그날처럼 코차밤바 달동네에 노란 달이 뜬 날이었다.

"띠에네 무헤르(애인 있어요)?"

(라 파스)
▲ 안데스의 달동네 (라 파스)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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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뭐예요? 나이는요? 가족은요?"

아내와 나는 아파트 경비실에서 떠듬거리는 스페인어로 묻고 있었다. 경비 총각은 쑥스러워하면서도 또박또박 알아듣기 쉽게끔 대답해준다. 그도 우리 선생님이 내준 숙제라는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이제 그만 돌아서려는데 아내가 마지막 질문을 한다.

"띠에네 무헤르(tiene mujer, 애인 있어요)?"

갑자기 그가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리곤 손사래까지 치는 것이다.

"참 순진한 사람이군!"
"그러게, 없다면 될 걸 뭐 저렇게까지 부정하지?"


우린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날의 숙제를 만족스럽게 끝냈다. 그런데 다 이유가 있었다. 다음날, 아내와 나의 스페인어 개인교사 안나(Anna Maria Franco)가 까르르르 배꼽을 잡고 뒤집혔다.

"'띠에네 무헤르'라고 할 땐 '숨겨둔 애인'을 뜻하죠! 보통은 노비아(novia)라고 하거든요. 혹시, 그 총각 진짜 숨겨둔 애인이 있는 건 아닐까요?"

그리곤 안나는 재미난 해프닝 하나를 얘기해 줬다. 코차밤바에 한국인 수녀님이 와서 처음 말을 배울 때였다고 한다. 하루는 수녀님이 배가 고픈데 사람들은 회의만 하고 밥 먹을 생각을 안 하더란다. 그래서 그동안 배운 스페인어로 '나 배고파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수녀님을 쳐다보더라는 것이다. 사연인즉, "요 땡고 암브레(hambre)"라고 해야 할 걸 "요 땡고 옴브레(hombre)"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암브레는 '배고픔'이지만, 옴브레는 '남자'다. 결국 수녀님이 큰 소리로 '나 남자 고파요'라고 말한 셈이 된 것이다. 그 얘기를 듣는 동안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수녀님의 코믹한 얼굴과 무진장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생각나서 한참을 웃었다.

(코파카바나)
▲ 볼리비아의 새하얀 성당 (코파카바나)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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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언어를 배우는 일이 이렇게 신날 줄 몰랐었다. 아내와 난 수업시간을 빼고도 하루 꼬박 3시간씩이나 공부했다. 그리고도 틈만 나면 '대화훈련'에 나섰다. 그렇다고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동네를 순찰(?)하며 공원을 어슬렁거리다 아이스크림이나 사먹고 비디오대여점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그 짓도 자꾸 하다 보니 어느새 단골 슈퍼마켓, 단골 식당, 단골 비디오점, 단골 아이스크림가게가 생겨났다. 처음에는 겨우 물건 이름만 대던 것이, 날씨가 어떻다는 둥 인사를 건네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신통찮은 농담까지 하고 있었다. 놀라운 진보였다. 아마 학창시절에 이렇게 공부했다면 누구 말처럼 밤하늘의 별이라도 따지 않았을까.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그러던 어느 날, 안나가 아내와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현지인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보고 식사를 같이하는 일,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아니던가. 안나의 집은 2층이었지만 아래층은 창고로 방치되어 있고 위층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원도 집안도 사람의 손길이 부족한 듯 어수선하고 낡아 있었다.

둘째 아들 디에고(Diego)와 막내딸 다니엘라(Daniela)가 우릴 환영해주었다. 그들은 대학 1, 2학년이라는데 엄마만큼 큰 키에 희고 갸름한 예쁜 얼굴이었다. 첫째 아들은 대학 4학년이라 늦을 거라 했다. 안나가 볼리비아 남부요리를 보여주겠다며 냄비에 호박 넣은 수프를 끓이고 다른 쪽 가스불에 채소·소고기를 한꺼번에 볶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가만히 도와주던 다니엘라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며 엄마 품에 안긴다.

"얘가 키만 컸지 아직 애라니까요."

다니엘라가 아침에 버스사고를 당했는데 갑자기 그 기억이 난 모양이었다. 안나는 딸을 토닥거려 주고는 다시 뚝딱뚝딱 요리를 시작하면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현지인의 살림살이를 들여다 보는 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 안나와 다니엘라 현지인의 살림살이를 들여다 보는 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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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녀석보다도 어린 나이에 쿠바로 망명가야 했죠."

길고 느린 요리시간만큼 그녀의 살아온 이야기도 길었다. 물론 아내와 내가 알아듣게끔 천천히, 쉬운 단어만 찾아서, 그리고 자주 반복해서 설명하느라 더 그랬겠지만.

볼리비아 군사정권시절이었다. 아마 안나의 아버지는 반정부인사였던 것 같다. 그녀는 아버지를 찾아오던 청년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레 모임에도 참석하게 되고 시위에도 나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국에 피바람이 몰아쳤고 16살의 어린 안나는 홀로 쿠바로 떠나야했다. 그곳에서 무려 3년을 지내야했고, 모스크바에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군사정권이 무너졌을 때 그녀는 돌아와 교사가 되었다. 곧 스페인 청년과 결혼해서 세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세 아이가 네 살, 다섯 살, 일곱 살 때 이혼했고, 전 남편은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그땐 참 힘들었죠. 학교는 나가야하고 애들은 어리고…. 이 녀석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아왔는데, 어느 날 보니 내 나이가 마흔여덟이 되어있는 거예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그리곤 덧붙였다.

(코차밤바)
▲ 축제 (코차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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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정도만 더 일해서 이 아이들 다 졸업시키고 나면,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바로, 여행. 미겔과 데보라(볼리비아에서의 우리 이름)처럼 말이에요."

그날 이후 안나와 우리 부부는 문법공부보다 얘기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안나는 우리 여행이야기를 듣고 싶어했고, 우린 안나의 만만치 않았던 삶 이야기를 듣길 좋아했다. 그리고 그녀 가족과 함께 밀림지역의 '차파레(Chapare)'에 낚시여행을 가서 '이'에 잔뜩 물려오기도 했고, 아이들이 우리 아파트로 놀러 오기도 했다.

드디어 안나 선생님의 생일날... "디오스 미오!"

그러던 어느 날, 우린 안나의 생일을 알게 되어 아이들에게 깜짝 파티(sorpresa fiesta)를 제안했다. 파티 음식은 아내와 내가 준비하고 아이들은 미리 와서 풍선이랑 축하카드를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드디어 안나 선생님의 생일날. 오후 내내 지지고 볶아서 김밥, 불고기, 잡채, 호박전, 상치겉절이, 된장국… 한 상 가득 생일상을 차려놓았다. 그런데 수업시간 1시간 전에 오기로 한 아이들은 감감무소식이다. 안나만 정시에 와서 수업을 시작했다.

"미겔! 오는 무슨 일 있어요? 왜 자꾸 시계만 보며 딴생각이죠?"

아무것도 모르는 안나에게 야단을 맞으면서도 연방 시계를 쳐다보지만, 결국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은 오지 않는다. '무슨 일일까?' 아이들은 연락도 없고 안나는 가방을 챙긴다. 하는 수 없다. 아내가 방에서 "Feliz Cumpleanos!(Happy Birthday)"라고 종이로 만든 플랜카드를 들고 나와 '짠'하고 펼쳐보였다.

"디오스 미오!!(Dios mio, 오 마이 갓!)"

안나는 동양의 낯선 요리들로 한 상 가득 차려진 생일상을 보더니 눈물이 그렁 맺혔다.

깜짝파티를 열다.
▲ 안나의 생일 깜짝파티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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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때 부모님이 차려준 생일파티 이후에 처음이에요. 고마워요, 미겔! 정말 고마워요, 데보라!"

예상보다 훨씬 더 감격하는 그녀를 보자 우린 오히려 머쓱해진다. 크고 시원하게 생긴 그녀의 눈에 맺힌 물방울에서 얼핏 시간의 무게가 스쳤던 것이다. 곧 그녀는 쾌활한 얼굴로 돌아왔다. 아내가 수업시간 내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디에고와 다니엘라가 오기로 했었는데, 무슨 일 있나요?"
"글쎄? 아이들은 지금 아르바이트할 시간인데."


이런, 황당한 일이! 다른 일도 아니고 자기네 엄마의 생일파티잖아! 연락조차 없이 빵구를 내다니! 게다가 갑자기 생긴 아르바이트도 아니라는데. 흔쾌히 약속한 배포는 또 뭐람! 아무튼 볼리비아 사람들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아무튼 볼리비아 사람들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사실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니었다. 한번은 티티카카(Titicaca) 호수의 '태양의 섬(Isla del Sol)'에 갔다가 돌아오는 날이었다. 전날 여행사에 들렀더니 새벽 6시부터 버스가 다닌다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그래서 직접 확인했었다.

"지금은 비수긴데, 저희 두 사람뿐이라도 출발하나요?"
"시, 끌라로!(Si, claro! 그럼, 당연하지!)"


굳이 확인한 건 라파스(La Paz)에서 12인승 버스의 손님이 4명뿐이라서 막차가 취소됐던 경험 때문이었다. 여행사 직원의 말을 믿고 새벽 5시부터 부지런 떨며 깜깜한 거리를 나섰다. 그러나 새벽 6시가 지나도록 버스는커녕 여행사 문자체가 닫혀있었다. 황당한 마음에 터벅터벅 큰길로 나서는데 "빵빵" 버스 하나가 달려와서 우리 앞에 멈춰 섰다.

보름달이 떠오른 날, 태양의 섬에서 하룻밤을 묵다.
▲ 티티카카 호수 보름달이 떠오른 날, 태양의 섬에서 하룻밤을 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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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자 야마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태양의 섬)
▲ 야마와 소년 해가 지자 야마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태양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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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스 가나요?"
"시, 끌라로!"


차장이 얼른 타라고 손짓했다. 그런데 올라타려고 보니 좌석이 하나뿐이었다. 결국 우린 오전 7시까지 여행사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바들바들 추위에 떨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전날 얘기를 나눴던 직원이 나와서 사무실 문을 열었다. 난 조금 화가 났다.

"어제 당신이 6시에 버스 있다고 했잖아요!"
"지금은 비수긴데? 6시에는 버스가 없어!"


"네? 어제는 비수기라도 간다 했잖아요! 그리고 다른 여행사 버스는 6시에 다니던데요?"
"아∼ 그거, 융구요(Yunguyo) 가는 거야!"
"네? 읍… 푸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좌석이 없길 망정이지. 융구요는 라파스와 전혀 다른 방향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못 말리는 볼리비아노다. 이런 말이 있다.

'볼리비아노에겐 길을 묻지 말라! 묻더라도 세 명 이상 확인할 것!'

그들은 몰라도 모른다고 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일단 "시, 끌라로!"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볼리비아노였다.

안나는 아내와 나의 무용담을 듣고서 먼저 큰 소리로 웃어댔다. 그리곤 사뭇 진지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미겔과 데보라에게는 황당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여기 원주민들은 당신들의 직선적인 세계관과는 다르죠. 음…, 처음과 끝이 서로 맞물려있는 '원형적인' 세계관이라고 할까요. 시간도 직선에 놓인 어떤 '특정한 몇 시'가 아니라, 그때쯤이 되는 거죠. 일에 대해서도 언제까지 하기로 한 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때까지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아요. '둥근 원'에는 시작과 끝이 없잖아요?"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라파즈)
▲ 공원의 사진사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라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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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약속인데…."
"물론 내가 옳다거나 좋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다르다는 거죠."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데에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데에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지난 두 달 동안 우리에게 볼리비아 사람들은 황당하고 답답했지만, 그들 눈에 비친 두 이방인은 매사에 안달하고 조급해하는 존재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말처럼 다름을 받아들이는 순간 서로 이해하게 되는 것인지도.

안나는 불고기를 가장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내가 만들었다는 말을 듣자 호박전도 그런 대도 먹을 만하다며 너스레를 떨어줬다. 아이들은 아침에 눈곱도 덜 땐 얼굴로 "엄마 생일 축하해요" 말 뿐이었는데, 역시 친구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마흔아홉 번째 생일을 결코 잊지 못할 거라고 덧붙였다.

그건 아내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 배웠던 스페인어, 그리고 그녀가 보여줬던 언어 너머의 세상 볼리비아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언젠가 한국을 여행하고 싶다고 했고, 우린 꼭 그리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내가 덧붙였다.

"그땐 우리 부부가 당신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겠어요!"

덧붙이는 글 | 양학용 & 김향미 부부는 결혼 10년째이던 해에 길을 떠나 2년 8개월 동안(2003년 10월 16일~2006년 6월 4일) 아시아·유럽·북미·중남미·아프리카·중동·러시아 등 세계 47개국을 여행했다.
기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wetravelin



태그:#여행, #볼리비아, #코차밤바, #스페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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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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